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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애초 최저임금 이하 제안했다 …광주가 그르친 광주형 일자리

중앙일보 2018.11.20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광주형 일자리에 숨은 진실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난항이다. 임금 등을 두고 광주시와 현대차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경기도 화성 공장. [사진 현대차]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난항이다. 임금 등을 두고 광주시와 현대차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경기도 화성 공장. [사진 현대차]

첫 단추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반값 임금의 완성차 업체를 세우려는 ‘광주형 일자리’ 얘기다. 애초 광주광역시가 현대자동차에 내민 투자 제안이 문제였다. 평균 초임 등 각종 조건에 무리가 있었다. 완성차 업체의 임금 기준을 너무 낮게 제시하는 바람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는 최저임금만큼도 줄 수 없을 정도였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광주형 일자리’ 협상의 숨은 진실이다. 문제를 깨달은 광주시는 부랴부랴 임금을 높이는 등 수정안을 현대차에 내밀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바뀐 조건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투자 협상은 표류 중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말을 짚어본다.

광주형 일자리 임금 조건으로
야근·특근 포함 3000만원 내밀어

시간외 수당 빼면 2000만원 초반
협력사는 최저임금도 못줄 판

광주시, 잘못 깨닫고 수정안 제시
현대차는 "이사회 재검토 어렵다"

현대차 노조 "투자하면 총파업"
군산시는 "이리 와라" 제안 나서

 
광주시가 현대차에 내민 투자 제안은 두 버전이 있다. 애초 현대차에 제시한 1차안과, 지난 14일 현대차와 재차 협상을 진행하며 제시한 수정안이다.
 
1차안에서 광주시는 임금 조건으로 ‘기본급·직무급·법정수당과 시간 외 근로를 포함해 3000만원’ 카드를 내밀었다. 광주시가 만든 ‘완성차 사업 투자 협약서(안)’의 내용이다. 이게 문제였다. 최저임금에 걸린다. 계산은 이렇다. 최저임금과 비교하려면 3000만원에서 평일 야근과 주말 특근 수당 등을 빼야 한다. 현재 완성차 업체는 연봉의 25~30%가 이런 수당이다. 총연봉 3000만원 가운데 최저임금과 비교하는 임금은 2100만~2250만원이라는 소리다. 내년 최저임금인 ‘주 40시간 근무 기준 연봉 2094만원’과 별 차이가 없다. 더구나 광주시가 제시한 임금은 완성차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는 2021년에 적용된다. 그때면 잘해야 최저임금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완성차 업체보다 보수가 적은 1, 2, 3차 협력업체에는 대놓고 최저임금을 어기라는 것과 다름없다.
 
광주시는 또 1차 제안에서 ‘5년간 임금협상·단체협상을 유예하고, 임금인상률은 직전 3년간 물가상승을 평균해 적용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물가보다 빠르게 오르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얼마 안 가 실제 임금이 최저임금에 따라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을 지켰다가는 범법자가 될 판이다. ‘단협 5년 유예’ 역시 2년을 넘길 수 없도록 한 노동조합법 위반이다.
 
광주시 투자유치추진단. [사진 광주광역시]

광주시 투자유치추진단. [사진 광주광역시]

광주지역 노동계는 애초에 이런 투자 제안 내용을 몰랐다. 그래서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낸 직후 환영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러다 이상한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사실을 확인했고, 결국 지난 6월 광주형 일자리 추진을 위한 협의체를 박차고 나왔다. 이로 인해 6월 19일 대통령을 초청해 하려던 투자 협약식이 무산됐다.
 
최초 협상안에 하자가 있었음은 광주시도 인정한다. 올 7월 부임한 이병훈 경제부시장은 “서두르다 보니 법에 맞지 않는 안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광주시는 다시 노동계와 논의해 이달 13일 수정 협상안을 만들었다. 수정안은 ‘주 40~44시간에 연봉 3500만원’이다. 이 정도는 돼야 3차 협력사도 최저임금법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40~44시간’이란 40시간 3500만원을 기본 입장으로 하되, 44시간 3500만원까지는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또 임·단협은 5년 유예에서 매년 논의로 바꿨다. 지난 16일 광주시에서 만난 윤종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대부분 노사가 매년 임·단협을 논의하는 현실을 반영해 협상안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윤 의장과의 문답이다.
 
수정안에서 ‘노동이사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책임경영’을  얘기한 게 와전됐다. 노동 이사는 능력도, 생각도 없다. 자리도 없을 거다. 광주시와 현대차, 재무 전문가 등이 들어가면 이사 자리가 꽉 찰 테니까. 그리고 솔직히 회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노사책임경영은 무슨 의미로 거론한 것인가.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 분규의 소지를 없애자는 거다. 완성차와 부품사 간에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뜻도 있다. 협력업체에도 이익이 돌아가 임금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경영 참여 목표다. 덜 받고 나누는 게 광주형 일자리의 취지다.”
 
새로 제안한 ‘근로시간저축 계좌제’도 말이 많다. 더 일한 시간을 저축해 놨다가 한꺼번에 돈을 요구할 거라고들 한다.
“아니다. 추가로 일한 시간을 저축해 놓았다가 나중에 휴가로 쓰자는 게 근로시간 계좌제다. 그렇게 해야 일자리 나누기가 된다.”
 
광주형 일자리는 현 노조원의 이익에 관련된 일이 아니다. 왜 이렇게 나서나.
“광주에 젊은이들 일자리가 절대 부족하다. 지역 청년들의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윤 의장은 스물여덟 살 난 자신의 딸과 스물일곱 아들도 현재 취직 준비 중이라고 털어놨다.)
 
수정안에 대해 현대차는 단호하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이미 초기 투자안을 이사회가 검토해 결정했다. 그런데 영판 다른 조건을 어떻게 다시 이사회에 올리겠나. 어느 기업 이사회도 이렇게 바뀐 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직접 광주 노동계를 만나 이견을 조율하라고 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라 투자 권유를 받는 입장”이라며 “투자를 유치하려는 광주시가 노동계와 논의해 조건을 제시하고, 현대차는 그 조건을 검토해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게 적절한 수순”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완성차 회사에는 광주시가 지분 21%, 현대차가 19%, 그리고 금융권과 시민 펀드 등이 참여한다는 게 광주시의 복안이다.
 
현대차는 확 바뀐 투자 조건 말고 또 다른 부담이 있다. 광주시와의 협약에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가 극력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협약을 맺으면 총파업하겠다”고까지 하고 있다. 반값 임금 불똥이 자신들의 임금·근로 조건에 튈까 봐 걱정해서다. 보다 못해 208개 단체로 이뤄진 광주시민단체총연합이 지난 6일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아 협조를 호소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을 면담하려 했으나 만나지 못한 채 공장 문 앞에서 호소문만 읽고 돌아섰다. 당시 울산을 찾아간 총연합 김용배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매년 대졸자 6000명이 일자리를 찾아 광주에서 나간다. 있는 일자리도 보수가 변변찮다. 공무원·은행·기아자동차·금호타이어를 빼면 최저임금에 가깝다.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에 목마르다. 그래서 울산까지 찾아갔다. 광주형 일자리는 앞으로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꼭 성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정 임금이 실현되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돌아와 국내에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에 활력이 돌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이 점을 생각해줬으면 한다. 노조도 한국 경제의 주인 아닌가.”
 
광주시에서는 시민단체 청년 대표들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찾아가 호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기아차 노조가 강경 노선을 철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칫 세력이 크게 움츠러들 수 있어서다. 현재 현대차 노조원 약 5만 명 가운데 앞으로 10년 새 2만 명이 정년퇴직한다. 충원을 않고 임금이 낮은 광주 등으로 일자리와 일감을 돌리면 현대차 노조는 세가 급속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이리저리 꼬인 가운데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경쟁자가 나타났다. 조선·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으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진 전북 군산시다. 문 닫은 한국GM 공장을 인수해 다시 돌릴 투자자를 찾고 있다. 전북도가 중심이 돼 완성차 업체 등에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공식 제안 단계는 아니고 물밑 접촉 중이라고 한다.
 
전북도는 특히 시설과 인력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광주시와 달리 도로 같은 인프라와 건물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고, 자동차 전용부두 등 물류 환경을 갖췄으며, 한국GM에서 일하던 숙련 인력을 바로 구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도 나석훈 경제산업국장은 “임금을 낮추는 데 대해서도 지역사회와 노동계에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아직 평균임금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투자자에게 합리적인 수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이래저래 힘겨운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필요성은 인정받고 있다. 고임금·저생산성에서 벗어날 시금석이 될 수 있어서다. 일자리 나누기의 기반인 ‘적정임금·적정근로’가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범사업 성격도 있다. 일자리에 목맨 정부와 여당이 적극 지원을 약속하는 이유다.
 
국내에 비슷한 모델도 있다. 충남 서산시의 완성차 위탁생산업체 동희오토다. 기아자동차의 경차인 ‘모닝’과 ‘레이’를 만든다. 자동차 부품사인 동희산업과 기아차가 공동 투자해 2002년에 설립했다. 고임금으로 경차를 만들어서는 수지가 맞지 않아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업체를 별도로 세웠다. 이 회사의 직원 평균 연봉은 4500만원(성과금 포함) 정도로 기아차(930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다만, 이 회사는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 근로자로 공장을 돌린다.
 
광주시는 동희오토와 비슷한 모델을 채택하되 직원은 100% 정규직으로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임금을 낮추는 대신 시는 주거와 복지 등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하지만 협상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매다시피 하고 있다. 이병훈 부시장은 “지난 4년간 시민·노동계·산업계와 꾸준히 대화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하나하나 만들어 왔다”며 “현대차와의 협상도 노동계와의 이견을 한 걸음씩 차근차근 좁혀 가겠다”고 말했다.
 
권혁주 논설위원
 
※이 기사는 내셔널팀 최경호 기자가 함께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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