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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새롬의 글로벌 J카페] 美 기업들이 ‘닌자’나 ‘록스타’를 찾는 이유

중앙일보 2018.11.19 11:30
 ‘데이터 조련사(Data wranglers) 구인.’
 

WSJ, 새 직함 유행하는 세태 소개
젊은 인재 찾기 위해 '튀는' 명칭 도입

금융위기 직후 '직함 인플레'와 비슷
실업률 낮고 반응 좋아 당분간 지속 전망

 미국 인디애나에 본사를 둔 ‘원 아메리카(One America)’는 은퇴설계 및 보험을 다루는 금융회사다. 1877년 문을 연 이 회사는 최근 ‘데이터 분석가(data analyst)’를 ‘데이터 조련사’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했다. 채용시장에서 젊은 지원자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원 아메리카의 데이터 분석 담당 부사장인 토드 쇼크는 “젊은 구직자들은 은퇴나 보험 산업이 짜증 나고 구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새 직함 도입 배경을 밝혔다. “누군가는 ‘데이터 조련사’라는 타이틀에 매력을 느끼고 이곳에 와서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 채용 시장에 ‘새 직함’ 바람이 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용환경 변화 속에서 능력 있는 젊은이를 채용하기 위해 참신한 직함을 도입한 회사들을 지난 14일 소개했다. 원 아메리카는 보수적 금융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민첩하고 도전적인 느낌의 단어를 차용했다. ‘조련사(wrangler)’는 옛 서부 카우보이들을 일컫던 말이다. 스타트업 기업에서나 찾아볼 법한 엉뚱한 직함이다.
 
 이외에도 ‘닌자(ninja)’나 ‘록스타(rock Star)’, ‘전도사(evangelist)’ 같은 단어들이 공식 직함에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새 직함들에는 주로 창의적이고 엉뚱하지만 일에 열중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미국 대형 구인·구직 사이트 중 하나인 ‘인디드닷컴(indeed.com)’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닌자’와 ‘록스타’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이 3~4배가량 급증했다. ‘고객 서비스 닌자(customer service ninja)’나 ‘판매 록스타(sales rock star)’가 대표적이다.
 
'록스타'와 '닌자' 포함 구인구직 게시물 수 변화. [자료: WSJ]

'록스타'와 '닌자' 포함 구인구직 게시물 수 변화. [자료: WSJ]

 
 채용자들의 반응은 일단 나쁘지 않다. 버지니아의 한 앱 개발 회사에서 ‘개발 전도사(developer evangelist)’로 일하고 있는 조 힐(39)은 “한때 성직자가 되려고 했는데 이 직함을 받게 돼 스스로도 많이 웃었다”면서 “단순 직업 대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직함에 반영돼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간혹 새 직함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고를 유도하는 순기능도 한다. 필라델피아의 한 구두 광택 회사는 직원들에게 ‘구두공’ 대신 ‘샤인 아티스트(shine artist)’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한 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WSJ는 이 같은 변화의 이면에는 최소비용으로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으려는 기업 의도가 반영돼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높은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이른바 ‘직함 인플레’를 일으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미국 고용시장에는 ‘중역(executive)’이나 ‘부회장(vice president)’ 같은 명칭이 넘쳤다. 높은 연봉을 줄 수 없는 대신 높은 자리를 주려는 기업들의 의도가 반영된 현상이었다.
 
 뉴욕 소재 경영 자문회사인 펄 메이어의 설문조사 담당 임원인 레베카 토만은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젊은 직원들을 뽑기 위해 영향력이 크다거나, 변화를 주도한다는 의미의 직함을 사용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실제 펄 메이어가 올해 진행한 조사 결과 미국 기업의 40% 이상이 “인재 채용을 위해 직함을 활용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응답 비율(31%)보다 30%가량 높아진 수치다.
 
 구직자가 쉽사리 튀는 직함에 이끌렸다가는 다음 이직이 힘들어질 우려가 있다. 구직사이트 인디드닷컴 인사 담당자인 폴 울프는 “이력서에 이례적인 직함을 넣어 둔 근로자는 새 고용주에게 자신의 경력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도 새로운 ‘닌자’나 ‘록스타’를 찾는 미국 기업들의 러브콜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고용시장에서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서다.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3.7%로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젊은이들의 만족도도 높다. 최근 미네소타의 한 게임 회사에 ‘PR 닌자’로 취업한 크리스 팔레이(43)는 “누군가와 첫 대화를 시작할 때 내 직함이 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면서 “나는 항상 (닌자처럼)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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