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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트럭시위, 뒷짐 진 경찰···기업 42년 신뢰 잃었다"

중앙일보 2018.11.19 00:06 종합 3면 지면보기
민주노총 화물연대 울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5일 경남 양산 성우하이텍 공장 인근 도로를 11t 대형트럭으로 가로막고 있다. [사진 국제신문]

민주노총 화물연대 울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5일 경남 양산 성우하이텍 공장 인근 도로를 11t 대형트럭으로 가로막고 있다. [사진 국제신문]

“화물연대 17시간 봉쇄, 경찰은 뒷짐 … 기업 42년 신뢰 잃었다”
지난 5일 오전 6시쯤 경남 양산의 성우하이텍 공장 인근 도로를 11t 트럭 수십 대가 막아섰다. 큰 도로로 통하는 길도, 인근 공장으로 이어진 길도 사실상 모두 봉쇄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울산지부 소속 조합원 130여 명이 차를 동원해 길을 가로막은 채 집회를 벌였기 때문이다.
 

창사 첫 납기 못 맞춘 성우하이텍
11t 트럭 수십대가 공장도로 막아
납품 지연에 거래처 공장도 멈춰
경찰 200명 있었지만 적극 조치 안해

화물연대에 일감 몰아달라 요구
명분도 법 근거도 없지만 수용

자동차 부품 생산 회사인 성우하이텍은 물류사 3곳과 계약하고 물건을 운송한다. 이들 물류사와 계약한 화물차주 43명 중 30여 명이 화물연대 소속이다. 화물연대는 성우하이텍이 계약 당사자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물량 및 차량 배정과 관련한 결정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하며 공장 주변을 에워쌌다. 집회는 오전 6시부터 17시간 이상 계속됐다. 이날 회사가 출고해야 할 차체 등 자동차 부품은 트럭 170대 분량이었지만 실제로 납품한 건 단 13대분에 불과했다. 현대차를 비롯한 거래처에선 물건이 없어 한동안 생산라인을 멈춰세워야 했다.
 
이문용 성우하이텍 대표는 “트럭 시위가 있던 날 새벽 5시에 출근해 종일 뛰어다녔지만 제품을 출고할 방법이 없어 무력감을 넘어 자괴감이 들었다”며 “납품 지연으로 거래처 공장이 멈춰선 것은 42년 회사 역사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하필 신입사원 면접 날 시위가 벌어졌다. 봉쇄된 공장과 뒷짐진 경찰, 당황한 지원자들을 보며 ‘이 나라에서 직원을 뽑고 기업을 일구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덧붙였다.
 
성우하이텍은 최근 자동차 업계 전반이 침체된 탓에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은 전년보다 3000억원 줄어든 3조3000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14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올해 실적은 지난해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회사 측은 전망했다.
 
회사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 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위기 상황인데 이번 사건으로 신뢰까지 잃게 생겼다”며 “납품 지연으로 인한 거래처 손해까지 우리가 떠안아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화물연대가 요구한 것은 계약이 해지돼 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는 조합원들을 원래대로 일하게 하고, 화물연대와 합의 없이 늘어난 차량을 일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또한 기존에 계약된 물류사 3곳과 재계약하지 말고 거래 물류업체를 하나로 단일화하라는 요구도 했다.
 
화물연대 울산지부 관계자는 “차를 늘릴 때 화물연대와 사전 합의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이를 어겼고, 또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부당하게 물량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해고됐다”며 “약속한 물량을 보장받고 부당 해고를 바로잡기 위해 정당하게 집회를 연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우하이텍이 그날 밤 결국 합의서에 사인한 것도 우리 요구가 정당하며, 스스로 잘못을 시인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회사 입장은 정반대다. 화물연대의 요구 내용이나 요구 방식 모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요구였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체 물량이 줄어든 건 경기가 안 좋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일부 조합원이 일감을 받지 못한 건 해당 기사들이 물류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다른 물류사와 새로 계약하려 했기 때문에 물류사가 조치한 것일 뿐 성우하이텍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 측은 물류사 단일화 요구도 비조합원들을 최대한 배제해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모든 물량을 독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물량이 적어진 상황에서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만이라도 물량을 안정적으로 받고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소속 기사들을 배제해야 하며, 이에 조합원들이 다수인 물류사 한 곳으로 일거리를 몰기 위해 단일화 등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결국 화물연대가 진짜 원하는 건 자신들에게 물량을 몰아주고 이를 위해 비화물연대 기사들에겐 아예 일을 주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판단에도 성우하이텍은 화물연대의 요구를 모두 받아줬다. 더 이상 납품을 지연할 수 없었고, 공장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도 경찰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아 합의서를 써주고 봉쇄를 풀 수밖에 없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당시 현장엔 경찰 병력 200여 명이 투입돼 있었다.
 
이 대표는 “화물연대에만 물량을 몰아달란 요구를 받아줄 명분도 없었고, 화물차 기사는 우리가 아닌 물류사와 계약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며 “그러나 길이 다 막히고 경찰마저 그들을 방치하는 상황이라 요구를 다 들어줘야만 했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일보가 확인한 양측 합의서엔 화물연대 측의 요구가 그대로 담겼다. 화물연대 소속 기사 4명에게 원래대로 물량을 배정하되, 비화물연대 소속 기사 4명은 계약을 해지하고 업무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또 성우하이텍이 현재 계약 중인 물류사 3곳과는 계약하지 않고, 추후 화물연대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도 합의사항에 포함됐다.
 
회사 측은 “들어줄 이유도, 들어줄 수도 없는 내용이지만 결국 백기를 들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화물연대 측은 “조합원 4명 복직과 비조합원 4명 배제 내용은 그런 결정이 이뤄진 과정 자체가 부당했기 때문에 바로잡은 것이고, 화물연대가 물량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기사를 배제하거나 물류사 통합을 요구했다는 건 회사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화물연대
정식 명칭은 ‘화물운송 특수고용직 연대본부’. 화물차주들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2002년 10월 출범해 이후 민주노총에 가입했고 2006년 11월 투표를 통해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산하 산별조직으로 전환했다. 같은 해 12월 표준요율제와 주선료상한제 등의 도입을 포함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고 2008, 2009, 2012년에도 각각 총파업을 진행했다. 화물차주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물류회사와 계약을 맺어 거래하는 형태라 노조가 아닌 연대 단체로 활동한다. 국내 전체 화물차주 35만 명 중 약 1만4000명이 가입해 있다. 가입률이 높지 않지만 국내 화물운송이 대부분 육지 도로를 통해 이뤄지므로 파업 등으로 인한 여파가 크다.

 
양산=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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