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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한 스푼]南은 남초 北은 여초… 성비도 ‘남남북녀’

중앙일보 2018.11.17 11:00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은 조선 말 실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능화가 1927년에 쓴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시중에 떠돌던 남자는 남쪽 지방 사람이 잘나고, 여자는 북쪽 지방 사람이 곱다는 속설을 기록한 것이다.
 
남남북녀는 조선 시대 미(美)의 기준이 반영됐다. 당시에는 피부가 희고 얼굴이 갸름하며 외꺼풀 눈을 가진 여성을 미인으로 꼽았는데, 기후의 영향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이런 여성이 많았다. 반대로 남자는 얼굴이 넓적하고 피부색이 건강한 남쪽 남자들을 선호했다. 유럽에서 금발에 피부가 하얀 북구 계통이 미녀로, 검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지중해 연안 남성이 미남으로 꼽히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통계진흥원 ‘대한민국을 즐겨라, 통계로 본 한국 60년’ 참고) 
2000년대 초반 ‘북녀 신드롬’을 몰고 왔던 북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조명애(오른쪽). 2002년 8ㆍ15 남북통일대회 때한국에 온 이후 온라인 팬클럽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조명애는 당시 최고 인기가수 이효리와 광고까지 찍었다. [중앙포토]

2000년대 초반 ‘북녀 신드롬’을 몰고 왔던 북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조명애(오른쪽). 2002년 8ㆍ15 남북통일대회 때한국에 온 이후 온라인 팬클럽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조명애는 당시 최고 인기가수 이효리와 광고까지 찍었다. [중앙포토]

‘남남북녀’라는 말을 더욱 퍼뜨린 데는 대중문화의 힘도 크다. 원조는 한국 영화계의 '큰 별' 고(故) 신성일과 1960년대 여자 배우 트로이카의 한 명이었던 고은아가 열연한 1967년 영화 ‘남남북녀’다. 경상도 총각 이형기와 평안도 처녀 강순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정재ㆍ진희경이 남남북녀로 나온 1998년 SBS 드라마 ‘백야 3.98’, 조인성ㆍ김사랑 주연의 2003년 영화 ‘남남북녀’도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북한 얘기를 할 때면 “남남은 맞는 말인지 잘 모르지만, 북녀는 틀림없다”고 대답하곤 했다. 북한 여성 미모에 대한 유 청장의 평가는 이렇다.
 
“북한에선 평양과 강계에 미인이 많다고 한다. 남한에서 대구와 순천이 미인으로 이름 높은 것과 같다. 그런데 대구와 평양은 미인의 유형이 다르다. 대구 미인은 이목구비의 윤곽선이 또렷해 현대적 내지 서구적 미감에 잘 들어맞는다. 그래서 미스코리아의 반이 대구 출신이다. 이에 반해 평양 미인은 평면감이 강하다. 마치 혜원(蕙園)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케 하는 조용한 아름다움이 있다. 대구 미인이 신라 토기 같다면 평양 미인은 가야 토기 같다.” (중앙일보 1998년 5월27일 11면 참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남남북녀라는 말을 계속 썼지만 이는 주관이 많이 개입된 말이다.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검증된 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남북한 성비(性比)를 비교할 때에는 이말이 꼭 들어맞는다. 남한에는 남자가, 북한에는 여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남한의 성비는 100.5, 북한의 성비는 95.4다.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를 뜻한다. 남한은 여성 100명당 남성이 100.5명으로 남성이 더 많고(남성 2579만명, 여성 2565만6000명), 북한은 95.4명으로 여성이 더 많다(남성 1221만5000명, 여성 1279만9000명)는 얘기다.  
 
이는 의료수준이 낙후된 북한에서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고된 노동으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태아 성감별을 통한 임신중절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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