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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물고 뜯고 할퀴는… 따뜻하지 않은 가족 영화

중앙일보 2018.11.17 09:00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46)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가족(家族).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만 봤을 때 오늘 영화는 가족 영화입니다. 분명히 가족인데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이라는 단어로 말하기 좀 껄끄러운 가족 이야기가 오늘의 영화입니다.
 
바이올렛(메릴 스트립 분)은 구강암 환자에 약물중독입니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고 남편 비벌리(샘 쉐퍼드 분)와 함께 오세이지 카운티에 단둘이 살고 있는데요. 며칠이 지나 이 문제적 가족의 구성원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모여듭니다.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아버지 때문이죠.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숨겨왔던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온갖 비난과 폭언이 난무하는 '아름다운' 식사 장면이 연출된다. [중앙포토]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숨겨왔던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온갖 비난과 폭언이 난무하는 '아름다운' 식사 장면이 연출된다. [중앙포토]

 
어떠한 언급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그의 전적(예전에도 말도 없이 훌쩍 떠났다가 훌쩍 돌아온)이 있기 때문에 또 슬쩍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죽은 상태로 말이죠.
 
영화의 제목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에서 '초상'이 사람이 죽었을 때의 그 초상(初喪)인지, 아니면 비치거나 생각되는 모습을 나타낼 때의 그 초상(肖像)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엔 아마 중의적인 의미로 쓰였을 거라 봅니다. 한 사람의 초상(初喪)을 통해 벌어지는 그 가족의 초상(肖像)을 그려냈으니까요.
 
장례식이 끝나고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주며 가족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겠지 생각하시겠지만 이 가족에게는 그런 훈훈함은 허락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무시와 조롱, 경멸 등 온갖 비난과 폭언이 난무하는 '아름다운' 식사 장면이 연출되는데요.
 
영화에서 바이올렛의 세 딸로 등장하는 (왼쪽부터)바바라 역의 줄리아 로버츠, 캐런 역의 줄리엣 루이스, 아이비 역의 줄리안 니콜슨. [중앙포토]

영화에서 바이올렛의 세 딸로 등장하는 (왼쪽부터)바바라 역의 줄리아 로버츠, 캐런 역의 줄리엣 루이스, 아이비 역의 줄리안 니콜슨. [중앙포토]

 
먼저 가족 구성원을 살펴보죠. 대마초를 피우는 중2병 딸에 젊은 여자와 바람난 남편을 둔 첫째 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 분), 사촌오빠와 사랑에 빠져 가족들로부터 도피를 꿈꾸는 둘째 딸 아이비(줄리안  니콜슨 분), 자기보다 열 살이나 많고 여자라면 다 좋아할 것 같은 바람둥이에 이혼 경력까지 있는 약혼자와 행복을 꿈꾸는 막내딸 캐런(줄리엣 루이스 분)까지. 이 밖에도 바이올렛의 여동생네 가족이 있죠.
 
딸, 사위, 손녀 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독설을 퍼부어 대던 바이올렛과 엄마의 독설에 폭발한 바바라는 급기야 육탄전까지 벌입니다. 바이올렛이 가지고 있던 약물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고 병원에 데려가는데 설상가상으로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 불편하고 따뜻하지 않는 가족영화의 중심은 바이올렛 역의 메릴 스트립이다.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림 현예슬]

이 불편하고 따뜻하지 않는 가족영화의 중심은 바이올렛 역의 메릴 스트립이다.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림 현예슬]

 
이 불편하고 따뜻하지 않은 가족영화의 중심은 바이올렛 역의 메릴 스트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원맨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영화에서의 대사나 역할의 비중이 큰데요. 특히 앞서 언급했던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에선 그녀 한명과 다수(가족)가 서로 대화하며 대사를 이어가는데, 약 20분간 이어지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메릴 스트립은 첫 장면부터 다소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항암 치료로 인해 듬성듬성 비어있는 머리카락, 약인지 술인지 아님 둘 다인지에 취해있는 목소리와 몸짓, 한손에는 담배를 들고 2층에서 비틀비틀 걸어 내려오죠. 이러한 모습은 그녀가 다른 영화에서 보여줬던 세련되고 지적인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주죠.
 
이러한 연기로 그 해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에게 돌아갔습니다. 첫째 딸 바바라 역의 줄리아 로버츠도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노예 12년'의 루피타 뇽오가 수상했죠). 그렇지만 저는 두 여배우가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는 훌륭한 연기로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중앙포토]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는 훌륭한 연기로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중앙포토]

 
이 밖에도 이 가족에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알고 나면 경악을 금치 못할 비밀들은 영화를 볼 분들을 위해 이 자리에선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가족은 또 다른 사건과 숨겨왔던 비밀이 공개되면서 하나둘씩 집을 떠나버립니다.
 
결말은 어떨까요? 저처럼 '그래도 가족이니까 결국엔 모든 갈등이 마무리되며 끝나겠지'라고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바바라 마저도 결국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마니까요. 이후 가족들이 각자 잘 사는지 아니면 끝내 해체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에게 남은 건 지울 수 없는 상처뿐이겠죠.
 
매번 눈물 콧물 짜내는 가족 이야기가 지겨우셨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드립니다. 보다 보면 '아! 우리 가족은 그래도 양반이네' 하실 수 있습니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포스터.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포스터.

원작·각본: 트레이시 레츠
감독: 존 웰스
출연: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완 맥그리거
촬영: 아드리아노 골드맨
미술: 데이빗 그롭먼, 낸시 하이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1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4년 4월 3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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