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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난민 7000만 시대, 아시아·남미도 극우 정치 광풍 휩싸여

중앙선데이 2018.11.17 00:20 610호 29면 지면보기
유엔 난민기구(UNHCR)가 발행하는 소식지 글로벌 포커스는 최근 전 세계 난민이 3000만 명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UNHCR이 직접 관리하는 난민 2540만 명에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 사업기구(UNRWA)가 관리를 대행하는 난민 580만을 합치면 3120만 명에 이른다. 등록·미등록 난민과 망명 신청자, 거주지에서 쫓겨나 국내를 떠도는 사람을 합친 전 세계 실향민은 6850만 명~7149만 명으로 추산된다. 박해·분쟁·폭력·인권유린 등으로 사는 곳을 떠나야 했던 모든 사람의 숫자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난민은 구호나 지원 문제를 넘어 각국 정치를 좌우하는 ‘거대한 괴물’로 변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종·종교·문화 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하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난민 집단이 시리아 난민들이다. 출신국 별로 따지면 가장 큰 규모다. 2011년 3월부터 지금까지 7년 8개월째 계속된 시리아 내전은 21세기 최악의 살상극 속에 최대 규모의 난민을 양산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올해 8월까지 11만613명의 민간인을 포함해 모두 36만437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인 ‘시리아 인권 관측기구’의 집계를 인용했다. 이 단체는 장기 행방불명된 15만6900명에 보고·관측 없이 숨진 것으로 짐작되는 10만 명을 더할 경우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시리아 7년 넘는 내전 최대 규모 난민 발생
 
중남미 국가 출신의 이주 희망자로 이뤄진 캐러밴 행렬이 13일 멕시코 중부를 지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경제 난민이다(아래 사진). [AFP=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중남미 국가 출신의 이주 희망자로 이뤄진 캐러밴 행렬이 13일 멕시코 중부를 지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경제 난민이다(아래 사진). [AFP=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UNHCR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은 등록자만 540만 명에 이르며, 유엔은 등록·비등록을 합쳐 모두 630만 명으로 추산한다. 시리아 난민은 국경을 맞댄 터키에 354만 명(등록 난민), 레바논에 220만 명(등록 난민 100만 명), 요르단에 126만 명(등록 난민 66만 명)이 각각 머물면서 지속해서 유럽으로 이주해왔다.
 
이러한 시리아 난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 난민의 유입은 유럽 정치의 지형도를 급격하게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이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유럽연합(EU) 국가로 대거 유입되면서 각국 여론이 첨예하게 갈려 정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활용해 난민 반대를 외쳐온 극우정당들이 독일·스웨덴·헝가리 등에서 약진하면서 기존의 중도 좌우 대결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북유럽의 ‘온정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유지해온 스웨덴에선 9월 9일 치른 총선에서 ‘반난민’을 부르짖어온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17.7%를 득표해 제3당으로 부상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스웨덴은 지난해 연말까지 시리아 난민 12만2000명을 포함해 16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이고 난민들이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꼽혔지만, 국내 정치는 격동기에 접어들었다.
 
중동유럽 국가인 헝가리에선 올해 4월 총선에서 오르반 빅토르(헝가리인은 성을 앞에 쓴다) 총리가 이끄는 반난민 극우정당인 피에스(청년민주동맹)가 48% 득표를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으로 물려온 시리아·이라크 난민 등 무슬림 난민에 대해 “유럽 기독교 문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해왔다. 체코에선 올해 1월 이슬람 난민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 왔던 밀로시 제만 대통령이 대선에서 연임됐다. 폴란드는 민족주의를 앞세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법과 정의’가 2015년 총선에 승리해 집권 중이며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대표는 유럽 반난민의 선봉장으로 통한다. 이들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이 할당한 난민을 받기를 거부해왔다.
 
사정은 서유럽도 마찬가지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선 3월 총선에서 반난민·반이슬람을 외친 극우정당 ‘동맹’이 17.4%의 지지율을 얻어 우파 연정의 핵심이 됐다. 타임지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렸던 극우 정치인 메테오살비니는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았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이 26% 득표로 제3당이 되면서 중도유파 국민당과 연정을 이루고 외교·국방·내무 등 정부 요직을 맡았다.
 
유입 난민을 둘러싸고 온정주의와 배타주의가 서로 충돌하면서 정치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가 독일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독일에선 10월 29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2월로 예정된 기독교민주당(CDU) 당 대회에서 당대표직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는 메르켈이 현 임기가 끝나는 3년 뒤 총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미다. 2000년부터 18년간 당 대표를, 2005년부터 13년간 총리를 맡아온 거물 정치인 메르켈이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난민 문제를 둘러싼 국론 분열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 기독교 문명에 대한 위협” 노골적 반감
 
지난해 9월 총선에서 반난민을 외치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표율 13%로 제3당에 오르자 메르켈은 이들을 배제하고 우파 기민당·기사당(CSU)과 좌파 사회민주당을 포함하는 좌우 대연정을 구성했다. 문제는 대연정 내부에서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난민에게 비판적인 기사당의 대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난민에게 우호적인 메르켈과 계속 충돌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14일 치러진 바이에른주 지방선거에서 CSU가 35.6%의 득표율로 패배하고 10월 28일 열린 헤센주 선거에선 CDU도 지지율 28%로 무너지자 유럽 맹주로 불린 ‘거인’ 메르켈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비롯한 국제 인도주의 기구의 지원으로 세운 가설 주택으로 가득찼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비롯한 국제 인도주의 기구의 지원으로 세운 가설 주택으로 가득찼다. 우상조 기자

미얀마에 거주하다 추방당해 이웃 방글라데시와 태국 등지로 피신한 120만 로힝야족 중 72만 명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에서도 난민이 정치적 변수가 되고 있다. 최근 이들이 몰려 사는 동남부 콕스바자르 주변 현장을 찾았더니 난민촌은 국제인도주의기구의 물질적 지원과 방글라데시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의 노동력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로힝야 난민의 일부인 485가족, 2260명이 15일부터 송환되기 시작됐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이를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영국의 가디언은 지난해 추방 과정에서 1만 명 정도의 로힝야족이 사망했음을 지적하며 일부 난민이 송환을 우려해 난민촌을 탈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상당수 난민이 지난해 미얀마에서 추방되기 직전 학살·강간·방화·학대 등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상 명목금액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1602달러에 불과한 방글라데시는 난민을 품을 여력이 없다고 계속 호소해왔다. 특히 12월 30일 총선을 눈앞에 둔 셰이흐 하시나 총리는 9월부터 미얀마 정부에 난민 귀환을 강하게 요구해왔다고 일본 NHK 방송이 보도했다. 난민 문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봐 서둘러 난민 송환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남미도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UNHCR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1999년부터 3150만 명의 인구 중 300만~400만 명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에 이르는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벌어진 실업·빈곤·물자부족·물가폭등·영양실조·범죄·인권유린 등 총체적인 경제·사회 붕괴가 원인으로 꼽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통계상 원유 매장량 세계 2위의 산유국이지만 정권의 포퓰리즘·무능·부패를 감당할 수 없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특히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에 100만 명, 페루에 40만 명, 브라질에 7만 명이 각각 몰려있다.
 
경제 난민인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눈길은 그리 곱지 않다. 특히 브라질에선 10월 치른 대선에서 이슈가 됐다. 극우 성향의 사회자유당 소속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난민·여성·인종·동성애자·원주민 차별을 주장하며 과거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을 다시 위대하게’ ‘브라질인 우선주의’ 등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배타주의적인 구호를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다는 데 주목했다. 그가 당선한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난민에 대한 반감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미국 난민 출신 2명 하원의원 당선이 희망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선 반이민 정책을 펼쳐왔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옐로카드’가 나왔다. 6일 중간선거에서 난민 출신을 포함한 무슬림 여성 2명이 처음으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소말리아 이민자들이 몰려 사는 미니애폴리스를 포함한 미네소타주 제5 선거구에서 당선한 일한 오마르(37)는 첫 난민 출신 연방하원의원으로 기록된다. 오마르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태어나 소말리아 내전이 확대된 91년 부모와 함께 이웃 나라인 케냐로 탈출해 난민촌에서 살다 9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시간주에서 당선한 라시다틀레입(42)은 부모가 팔레스타인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둘 다 주류 정당인 공화당이나 민주당에서 공천받지 못하고 오마르는 미네소타 민주 농민노동자당, 틀레입은민주 사회주의자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물론 이들이 지역 주민을 대표할 만한 능력이 있기에 당선했겠지만,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저항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국의 긍정적인 사례는 여전히 ‘찻잔 속의 촛불’ 수준일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난민 발생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쟁·기아·가난·인권유린의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가능성이 여전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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