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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대기 도박을 스포츠로, 당구의 전설 ‘칙칙폭폭’ 이상천

중앙선데이 2018.11.17 00:02 610호 22면 지면보기
[스포츠 다큐 - 죽은 철인의 사회] 50세에 요절한 스리쿠션 황제
왼손잡이 이상천은 ‘책에 없는 기술’을 만들어서 칠 정도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당구를 구사했다. 이상천의 생전 경기 모습. [사진 대한당구연맹]

왼손잡이 이상천은 ‘책에 없는 기술’을 만들어서 칠 정도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당구를 구사했다. 이상천의 생전 경기 모습. [사진 대한당구연맹]

이상천(1954~2004)은 한국 당구 사상 첫 세계챔피언이 된 선수다. 당구 선수들이 ‘양아치’ ‘작대기’로 불리던 시대, 이상천은 홀로 우뚝 서 새로운 영토를 개척했다.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국내로 돌아온 그는 당구판의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대한당구연맹 회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당선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미 다리를 절뚝이며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리고 4개월 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쿠션 몰아치기 달인 ‘서울대 꼬마’
교련복 차림으로 당구장 휩쓸어
‘똘이장군’ 김정규와 2박3일 대결도

미국 건너가 94년 월드컵 챔프 등극
귀국 뒤 내기 당구 안 하기 등 이끌어
연맹 회장 당선 직후 암으로 별세

 
서울 출신인 이상천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 응용수학과에 입학한 수재였다. 고3 겨울방학 때 당구 큐를 처음 잡아 석 달 만에 300점(4구 기준)을 쳤다고 한다. 서울대 교련복을 입고 당구장에 나타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무너뜨리는 그를 사람들은 ‘서울대 꼬마’라고 불렀다. ‘전주 꼬마’ ‘부산 꼬마’ 처럼 꼬마는 특정 지역의 당구 최고수를 가리키는 애칭이었다.
 
왼손잡이 이상천은 몰아치기의 달인이었다. 한 번에 스리쿠션 7개, 8개를 손쉽게 쳐 ‘칙칙폭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한 뒤 치질로 귀향 조치를 당한 74년부터 이상천은 당구의 세계에 깊이 몸을 담갔다. 당시 당구 고수들은 예외없이 ‘직방’이라고 하는 즉석 돈내기 당구를 쳤다. 워낙 실력이 출중한 이상천을 모두가 슬슬 피하자 그는 말도 안 되는 핸디캡을 주면서 상대를 끌어들였다.
 
국내 대회를 휩쓴 이상천은 87년 10월,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갔다. 무일푼의 불법 체류자였던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에 정착했고, 미국 스리쿠션계를 평정했다. 94년 1월에는 벨기에 겐트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세계당구월드컵(BWA) 종합 챔피언에 등극한다. 상 리(Sang Lee)라는 이름으로 활약한 그는 뉴욕에서 대형 당구장을 운영하는 등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상천이 국내에서 활동할 때 유일하게 그와 맞상대 할 수 있는 선수가 ‘똘이장군’ 김정규(60·대한당구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였다. 그는 서울 경찰병원 근처 김정규당구스쿨에서 후학을 키우고 있다. 김 위원장과 당구계 원로들의 말을 토대로 이상천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주머니 돈 다 떨어질 때까지 무한대결
 
국내에서 이상천과 유일하게 맞대결을 했던 김정규 대한당구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 [정영재 기자]

국내에서 이상천과 유일하게 맞대결을 했던 김정규 대한당구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 [정영재 기자]

전북 익산 출신인 김정규는 전라도에서 ‘똘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최고수였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자신보다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이상천을 찾았다.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김정규도 이상천의 정확한 플레이에 틈을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상천이 미국으로 떠나기 2년 전부터 급속히 가까워졌다. 이상천은 “10년 만에 나와 맞대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김정규를 반겼다. 두 선수 모두 치기 전에 큐를 쥔 손을 몇 차례 흔드는 습관이 있었다. 손목의 힘을 빼는, 골프의 왜글과 비슷한 동작이었다. 당시는 국제식 테이블인 대대(大臺·284×142cm)가 거의 없어 중대(中臺·254×127cm)에서 쳤는데 한번에 스리쿠션 30개까지 몰아치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 붙으면 1박2일은 기본이고, 이틀밤을 새기도 했다. 끼니는 게임 중간중간 짜장면으로 때웠다. 당시에는 ‘1점에 얼마’ 식으로 돈이 오갔고, 둘 중 한 명의 돈이 다 떨어져 ‘올인’을 불러야 대결이 끝났다. 김정규는 혼자였지만 이상천은 지인들을 몰고 다녔다. 이상천이 올인 되면 옆의 지인들이 돈을 쥐여주며 다시 시합을 붙였다. 김정규 위원장은 “10번 붙으면 2~3번은 내가 이겼을 겁니다. 키도 작고 볼품없는 사람이 잘 치니까 상천 형이 ‘똘이’에다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죠. 우리 둘 다 연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상천 형은 당구장에서는 절대 큐를 놓는 법이 없었어요”라고 회고했다.
 
‘멘털’이나 ‘루틴’이라는 말도 없었던 그 시절에 이상천은 자신만의 멘털 게임을 했다. 다른 선수들이 오로지 공에만 집중했을 때 이상천은 전체 판을 읽을 줄 알았고, 경기가 잘 안 풀리면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나오는 등 자신만의 루틴을 가졌다고 한다.
 
 
장례 4개월 뒤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 승인
 
2007년 미국당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상천. [중앙포토]

2007년 미국당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상천. [중앙포토]

이상천의 귀국 후 행적은 한국 당구가 게임에서 스포츠로 도약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2003년 귀국한 이상천은 ‘월간당구’에 후배들에게 주는 글을 기고한다. 당구 선수는 ‘작대기’에서 진정한 스포츠인이 돼야 한다며 이상천은 ‘공 좀 열심히 치자’ ‘당구장에서 도박이나 도박 얘기를 하지 말자’ ‘선수끼리 예의를 지키자’ 같은 주장을 한다. 그리고 후배들을 이끌고 지방 투어 대회를 다니며 당구 붐 조성에 앞장섰다. 2004년 6월 대한당구연맹 회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당구연맹의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 승인은 2005년 2월 이뤄진다.
 
이러한 이상천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당구인들도 많았다. “직방을 누구보다 많이 치고, 당구인들 호주머니를 털어먹던 사람이 갑자기 깨끗한 척한다” “이상천이 당구계를 사분오열시키고 연맹 회장에 당선됐다”는 말들이 돌았다.
 
이에 대해 김정규 위원장은 “당구를 치고 싶은데 상대가 없어서 못 치는 심정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파격적인 핸디캡을 줘도 안 하겠다고 하니 자존심을 긁어버린 경우가 많았어요. 당한 사람은 상처가 남는 거죠. 사실 상천 형이 대단한 이상과 사명감으로 나선 건 아니죠. 그러나 음지에 있던 당구를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고 봅니다”고 말했다.
 
박태호 대한당구연맹 수석부회장도 “골프든 바둑이든 국내로 들어오면서 ‘독특한 토착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당구도 일본에서 넘어와 일제 잔재를 벗겨내고 국민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 진통이 따랐죠. 그 길을 가장 뚜렷하고 외롭게 걸어간 사람이 바로 이상천입니다”고 말했다.
 
이상천이 가장 아꼈던 김경률, 2015년 의문의 추락사
김경률

김경률

이상천이 국내에 돌아와 가장 아낀 선수가 고(故) 김경률(1980~2015·사진)이다. 김경률은 2010년 2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3쿠션 월드컵에서 딕 야스퍼스(당시 세계랭킹 1위·네덜란드)를 꺾고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챔피언이 됐다. 이상천은 막 데뷔를 하고 조금씩 두각을 나타낸 김경률에게 ‘개구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개구리 어디 갔니? 개굴아, 밥 먹자”라며 김경률을 챙겼다. 이 회장은 “연습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라”며 김경률에게 조언을 했다.
 
김정규 대한당구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이상천 회장만이 김경률을 좋아한 건 아니다. 당구인이라면 누구든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경률이는 싹싹하고 노력하는 선수였다”고 회고했다.
 
세계 정상에서 승승장구하던 김경률은 2015년 2월, 경기도 고양시 자신의 아파트(11층) 베란다에서 추락사했다. 갑작스런 비보에 당구계는 충격에 빠졌고 “자살이다” “사고사다” 말들이 많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당구인들은 “김경률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고,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럼에도 “세계 정상권 선수가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국내 당구 선수의 현실과 처우가 열악한가”하는 웅성거림이 있었다.
 
한국 당구계는 봄날을 맞았다. TV를 켜면 당구 경기가 나오고, 대기업이 스폰서를 하는 대회도 늘어났다. 톱 클래스 선수들은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 국내 캐롬(스리쿠션)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유진희 서울당구연맹 부회장은 “선수들의 노력과 뛰어난 기량으로 시장이 커진 만큼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과 수입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구의 프로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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