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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 경제, 사회주의화해도 되나

중앙일보 2018.11.16 00:35 종합 31면 지면보기
남윤호 도쿄 총국장

남윤호 도쿄 총국장

“이거 계속하면 사회주의로 가는 거 아닙니까.” 2009년 4월 9일 일본 참의원 재정금융위에서 다이몬 미키시(大門實紀史) 의원이 일본은행 총재에게 던진 말이다. 제1차 아베 정권의 부양책에 따라 일은이 회사채·기업어음을 과도하게 사들인다고 비판하면서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개입이 시장경제를 위축시킨다는 뜻이었다. 다이몬은 다른 정당도 아닌, 사회주의 건설을 지향하는 일본공산당 소속이다. 지금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며 공산당원이 시비를 붙었다고 해 화제였다.
 

경제의 재정의존도 높아진 건
정부가 시장개입 강화한 탓
생산성 향상엔 되레 걸림돌
대기업 향한 거부반응 털고
민간주도 성장 나서는 게 답

그가 한국 경제지표를 보면 아마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의 재정 의존도가 급상승한 탓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0.8%포인트였다. 성장률이 3.1%였으니 4분의 1 이상을 정부의 완력으로 메웠다는 뜻이다. 올해엔 더 높아진다. 성장률은 낮아지는데 재정지출은 더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불황 때 재정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선을 넘으니 문제다. 별 효과도 못 내면서 국민의 돈을 소진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오진과 오처방이 이어진 결과다. 근본 원인은 시장에 대한 무지와 불신, 대기업에 대한 적개심 아닐까. 눈치 빠른 관료들은 열심히 장단 맞추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이 정권의 거부반응은 유별나다. 대통령부터 그렇다. 지난주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선 대기업이 곧 불공정·불평등의 주범이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뿐인가. 재벌은 암세포라는 분, 재벌 혼내느라 늦었다는 분들이 이미 각료로 활약 중이다. 여기에다 이번에 터져 나온 삼성바이오 분식 의혹이 법적 결론과 관계없이 그런 기류를 강화시킬까 걱정이다.
 
남윤호칼럼

남윤호칼럼

아무리 대기업이 미워도 무작정 때리기만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 없이 성장과 고용 확대가 가능한가. 정부도 알 것이다. 불편해서 인정하지 않을 따름이다. 대북 투자 역시 대기업 아니고선 곤란하기에 남북 정상회담 때 총수들을 대동한 것 아닌가. 그뿐인가. 한편으론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기업의 투자 확대를 종용한다. 이중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권 정치인 친인척 중에서 대기업에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느 장관 표현을 빌리면 이들도 암세포 증식에 기여한 건가.
 
이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대기업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사회 도처에서 나타난다. 평소 대기업 욕하다가도 취업 때가 되면 대기업에 입사하려 한다. 먹을 것 하나를 사도 대기업 제품이 믿을 만하다는 소비자도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재벌 빵집’으로 규탄하던 아티제를 중소기업회관에 입점시켜준 것도 웃지 못할 일이다. 가끔 불거지는 재벌가의 갑질도 그들만의 유전병은 아니다. 직원 뺨 때리는 중소기업인·자영업주도 있고, 알바생에게 음식 집어던지거나 무릎 꿇리는 갑질 고객도 있다.
 
누구 손가락질할 수가 없다. 기업·기업인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이 그렇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칭송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기업가로 나서긴 망설인다. 미·영 연구진이 공동 설립한 국제기업가정신모니터(GEM)의 최근 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기업가를 훌륭한 직업선택이라고 보는 응답자의 비율에서 한국은 52개국 중 49위다. 세계 12위권 경제에 어울리는 순위인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세인트 앤드루스대 학장 취임사에서 경제학을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는 학문’이라 했다. 우리에게 와 닿는 말 아닌가. 이제야말로 경제적 견지에서 불편한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대기업의 역할을 인정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정부도 힘들다. 경제가 안 좋으면 정부가 열심히 대책을 내놓는데, 정부의 개입이 세질수록 기업 중심의 시장 활력은 떨어진다. 민간부문의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가 성장해야 할 텐데, 그게 안 된다. 급해진 정부는 또 추가대책을 내놓는다. 이게 생산성 증가세를 더 위축시켜 성장을 억누른다. 경제의 사회주의화와 저성장의 악순환이다. 나빠진 경제지표에서 그런 증상을 읽을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다시 대책을 내놓겠다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정부가 추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 담겠다”고 했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정부의 오진으로 병이 깊어졌는데 뭘 더 손대겠다는 건가. 차라리 안 할 수 있는 게, 발을 뺄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찾아보라. 뭘 더 안 함으로써 남는 에너지를 반기업 정서 불식에 쏟으면 금상첨화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까, 홍 후보자를 경제사령탑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가 뭘 잘못 말해도 큰 임팩트는 없어 보인다.
 
남윤호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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