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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박찬주 "공관병 갑질은 부덕…영창서 이순신 심정 알았다"

중앙일보 2018.11.16 00:05 종합 27면 지면보기
[논설위원이 간다] 박찬주 전 대장 적폐 수사가 남긴 후유증 
 지난해 5월 촛불혁명을 발판삼아 등극한 신정부의 칼바람은 거셌다. 집권 일주일 뒤 이른바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이 터지자 대통령이 직접 감찰을 지시했고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면직됐다. 7월 말 군 인권센터의 폭로로 '공관병 갑질' 사건이 불거졌다. 박찬주 당시 육군 대장은 만고의 역적 수준으로 이미 여론의 낙인이 찍힌 뒤 수사가 시작됐다. 이영렬과 박찬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군과 검찰에 대대적 인사 태풍이 몰아쳤지만 누구도 찍소리를 내지 못했다. 두 사건의 법적 결론이 최근 나왔다. 요약하자면 명분은 거창했고 파장은 엄청났으나 실체는 부실했다. 해외 출장 중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시작된 '계엄령 문건'수사는 어떤가. 엄청난 인력과 물량을 투입하고도 단 한 명의 해외 도피로 결론 없이 올스톱이라니…. 적폐 수사의 결정판인 사법부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는 가운데 기관·생활 적폐 청산 수사의 태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를 톺아봤다.  
육군 기갑 병과 최초로 대장에 진급했던 박찬주(60) 전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이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안의 위패실을 둘러보고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전쟁에 나가 숨졌으나 시신을 못 찾아 위패로만 모신 전사자 4만 1200여명과 안장된 8만 6300여명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12만 7600여명(10월31일 기준)이 잠들어있다.[프리랜서 김성태]

육군 기갑 병과 최초로 대장에 진급했던 박찬주(60) 전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이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안의 위패실을 둘러보고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전쟁에 나가 숨졌으나 시신을 못 찾아 위패로만 모신 전사자 4만 1200여명과 안장된 8만 6300여명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12만 7600여명(10월31일 기준)이 잠들어있다.[프리랜서 김성태]

  

1심 선고 후 입 연 박찬주 대장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심정 알듯"
대통령은 평화를 말해도 되지만
군 통수권자는 전쟁 대비 지시해야
군 경시, 정치적 이용 의도 위험
사드배치, 참수계획 수립 지휘

 지난 13일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박창배 집례관의 안내를 받아 초로의 신사가 세 번 분향을 한 뒤 묵념을 했다. 분향함 앞 비석엔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곧이어 위패실로 향했다. 전쟁터에서 숨졌지만 시신조차 못 찾은 4만1200여명의 호국영령이 이름만으로 영면해 있는 곳이다. 신사는 육군 사병과 민간 종군자  위패판을 어루만지더니 '너무 차갑네~'라고 나지막이 되뇌었다. 벽면에 빼곡히 들어찬 사병들 이름 위에 검은 테이프가 붙은 게 눈에 띄었다. 뒤늦게나마 시신을 찾은 경우 표시한 것이라는 데 1~2개에 불과했다. 참배를 마친 신사가 방명록에 이름을 썼다. '박찬주, 계룡시 두마면, 감사.존경.다짐'
현충탑 앞 비석에 적힌 글귀

현충탑 앞 비석에 적힌 글귀

 현역 대장으로는 13년 만에 구속되는 수모를 겪으며 창졸간에 '급전직하 인생추락' 스토리의 대표 격이 된 박찬주(60·육사 37기·천안) 전 육군 대장은 이날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제 나도 병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현역대장이 국방부 헌병대 지하 영창에 사병들과 나란히 갇혀 3개월을 지냈다. 충격으로 폐인이 됐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사건 초기엔 너무나 개탄스러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지구의 종말이 오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선조를 만나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졸지에 흰옷 입고 군마(軍馬)의 똥을 치우는 사병으로 백의종군하지 않았나. 건방진 말일지 모르나 그 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공관병 갑질 사건 이후 그의 궤적은 롤러코스터처럼 어지럽다. 현역 육군 대장(영호남과 충청을 관할하는 제2작전사령관)에서 '육군 인사사령부 정책연수' 발령→별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군 검찰)→국방부 헌병대 영창 3개월→군사재판 회부→민간인 신분 인정받아 수원구치소 이감→보석 석방→1심에서 향응 184만원 등만 인정,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항소심 진행 중.  

 
박 전 대장이 국립대전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글                        [조강수 기자]

박 전 대장이 국립대전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글 [조강수 기자]

 그의 입을 여는 건 쉽지 않았다. 2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다 자칫 주제넘게 비칠 수 있다며 경계했다. 군심(軍心)을 자극한 게 주효했다. 군·검 합동수사본부의 계엄령 문건에 대한 잠정 수사 중단 발표(7일)와 굴착기를 동원한 비무장지대 10개 감시초소(GP) 철거 시작(12일)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자 말이 나왔다.  
 
GP 철거를 본 심정은.
"최근 체결된 남북군사합의서를 보면 '평화의 시대가 오는데 군이 좀 손해 좀 보면 어떠냐'는 지휘부의 인식이 보인다. 군이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견인해야 한다는 위험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군은 앞에서 끄는 집단이 아니다. 뒤에서 힘으로 뒷받침하는 조직이다. 남북 화해 무드는 좋은데 이런 때일수록 군은 오히려 경계심을 갖고 대비태세를 굳건히 해야 한다. 강군을 만드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무너트리는 건 하루아침의 얘기다."
 
남북간 안보 상황을 어떻게 보나.
"지금 이 나라에는 대통령은 보이는데 군 통수권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과 군 통수권자는 역할이 다르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평화의 시대가 왔고 전쟁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통수권자는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가 군으로부터 '만약','가정(假定)'이라는 단어를 빼앗아 간다면 식물군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군에 대한 시각이 어떤가.
"건군 70주년 행사의 의도적인 축소, 계엄령 문건 파동, 육군과 육사 출신을 배제하는 기이한 인사 정책 등을 보면 군을 경시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위험한 일이다. 장성들은 모두 '똥별'이 됐다. 현역 대장의 명예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이용하려는 분들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나."
 
 박 전 대장은 군대 통합 및 전쟁기획 분야 전문가다. 그는 육사 38기인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기소중지)이 연루된 계엄령 문건 수사와 관련해선 "매년 미군과 합동으로 두 번, 한국군 독자적으로 한번 전국급 전시 훈련을 하는데 그때  계엄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한다"며 "문건이 그 수준이라고 보이는데도 그렇게 요란스럽게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수사지시까지 했어야 할 성격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반역죄든 내란죄든 걸 수가 없는 사안"이라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수사로 옮겨갔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제복과 계급의 명예를 지키지 못해 괴로웠다. 사실은 그 명예는 군 통수권자가 보호해 줬어야 한다. 선진국에선 군 고위장성의 비위가 발견되면 전역시켜 처벌하는 게 관례다.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 규정상 군복과 계급장을 달고 법정에 나가야 한다. 군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법적 투쟁에 나섰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13일 국립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13일 국립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어떤 소송인가.
"국방부가 내게 '육사 정책연수'라는 보직을 부여했는데 그건 위법한 조치였다. 대장이 보직만료 후 다른 보직을 받지 못하면 전역한다는 군 인사법 제20조 3항을 피해 현역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대장의 보직은 군인사법 상 9개의 직책에 한정돼 있다. 합참의장과 합참 1차장, 연합사부사령관, 육·해·공군 참모총장, 육군 1·2·3군사령관 등이다. 결국 내 신분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결정해 달라는 관할권 신청을 대법원에 냈다. 대법원 판결이 지난해 12월 나왔다. 내가 제2작전사령관의 직책에서 물러난 그해 8월 9일부로 민간인 신분이 됐고 군사법원은 재판관할권이 없다는 거였다. 해당 판결이 나오자 국방부가 취한 유일한 조치는 8~12월까지 5개월간 대장 봉급을 회수해 간 것뿐이다. "
 
 1심 재판에서 박 전 대장 측 변호인들은 "군 검찰이 민간인을 압수수색하고 구속해 군사법원에 기소한 것은 위법"이라며 공소기각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군 검찰이 전역한 줄 알면서도 고의로 수사를 계속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인 측은  군 검찰이 전역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여럿 있다며 이를 항소심에서 집중 부각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 전 대장은 "문 대통령은 취임식 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내 사건 처리 과정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간 검찰에 넘겨 조사하면 될 텐데 수사권과 재판권을 갖기 위해 불법으로 전역을 막은 것은 사법농단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수사 대상이 된 것을 두고는 제2작전사령관 재직 시 미8군 사령관과 사드 배치 현장 지휘를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김정은 참수작전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박지만씨와 육사 37기 동기생이며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같은 독사파(독일육사파) 출신이라는 분석 등이 다양하게 제기됐다. 실제로 박 전 대장은 1977~2003년 사이 7년간 독일에서 군사학을 배웠다.  
 
독사파가 존재하나.
 "육사 생도의 독일 유학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 방문 시 양국정상이 합의해 시작된 한·독 군사교류의 상징이다. 300여명의 동기생 중 한 명씩 가기에 다 합쳐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다. 전체 모임도 군 생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
 
박 전 대장이 몰고 나온 경차. 독일에서 7년을 살아 경차가 편하다고 했다.         [조강수 기자]

박 전 대장이 몰고 나온 경차. 독일에서 7년을 살아 경차가 편하다고 했다. [조강수 기자]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박 전 대장을 추락시킨 직접 계기는 공관병 갑질 사건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조사 후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혐의로 종결해 법정에선 다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계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10대의 공관 냉장고 절도, 공관병들에 전자팔찌 채워 인신 구속, 말 안 듣는 공관병 GOP에 유배 등이다. 수사 결론은 뭔가.
"공관 냉장고 열대 중  세대(냉장고, 딤채, 냉동고)는 개인 구매품이다. 2004년, 2009년에 산 것 증명하느라고 고생했다. 당시 영업점 추적해서 입증했다. 나머지 7개는 공관 비품으로 군 수사 기관에서 확인했다. 전자팔찌는 단순한 호출벨이다. 위치추적 기능도 없다. 고정벨은 항시 대기해야 한다. 병사들 편의를 위해 손목에 차는 것으로 바꿔준 것이다. GOP에 보낸 것은 분단 현실을 경험해 보라는 취지였다."    
 
공관병 갑질 파문에 대한 입장은.
"병사들에게 잘해준 것도 있지만 위생관리 등과 관련해 나무란 적도 있다. 모든 게 병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제 부덕의 소치다."
 
  박 전 대장에 앞서 차기 육군참모총장감으로 꼽혔던 육사 38기 위승호 국방부 정책실장(중장)은 지난해 6월초 사드 4기 반입 사실에 대한 보고 누락 주도 혐의로 육군 정책연구관으로 전보조치됐다. 육군 내 대표적인 전략·정책통으로 분류되는 그는 2개월 뒤 전역했다. 내달 6일 면직취소소송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외부 접촉을 삼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4월 17일 자신이 본부장으로 지휘한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나흘 뒤 법무부 간부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과장 2명에게 돈봉투를 건넸다가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한 법조계 인사는 "막상 대통령의 감찰 지시, 면직 처분 등의 일련의 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은 담담하게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할 때 누군가의 손에는 피를 묻혀야 했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나니 토사구팽당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벌이 과하거나 매가 앞서도 안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엔 실제 법정보다 여론의 법정에서 먼저 중형선고가 내려지는 일이 잦아졌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넘어 자기주장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생각할 때 아닌가,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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