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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종전선언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했다

중앙일보 2018.11.15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역사의 장엄한 순간이 있다. 지도자는 그 장면을 생산한다. 그 풍광은 프랑스에서 진행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펼쳐졌다. 결정적인 모습은 콩피에뉴(Compiègne)에서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공동 행사다. 그곳은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80㎞ 떨어져 있다. 거기서 4년4개월간 전쟁(1914~1918)의 마감 선언이 있었다. 그날은 한 세기 전 1918년 11월 11일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승패가 갈린 날이다. 독일은 항복했다.
 

1차대전 휴전, 콩피에뉴에서
마크롱과 메르켈, 화해로
장엄한 역사의 순간을 연출
“평화는 행복과 같아서
사라지는 소리에 깨달아”
무장 평화론, 북한 비핵화 유도

마크롱과 메르켈은 종전 기념 전날 그곳을 찾았다. 그곳 기념물들에 칠해진 기억의 색채는 강렬하다. 박물관에 ‘휴전 객차’가 전시돼 있다. 종전식은 그 안에서 있었다. 객차는 연합군사령관 포슈(Foch·프랑스군 원수)의 이동 사무실이었다. 포슈는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지난 10일 BBC방송은 두 사람의 만남을 중계했다. 나는 오래전에 그곳에 가봤다. 화면은 흥미롭게 전개됐다. 콩피에뉴는 거친 반전(反轉)의 드라마다. 거기에 승자와 패자, 희열과 절망, 복수와 원한이 얽혀 있다. 1918년 11월의 장면은 프랑스의 환희다. 그 속에 47년 만의 설욕이 담겨 있다. 1871년 보·불(프러시아·프랑스)전쟁에서 프랑스는 완패했다. 프러시아는 독일연방의 핵심이다.
 
그 22년 뒤 상황은 역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1940년 5월. 나치 독일의 전격전에 프랑스는 6주 만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역사를 복제했다. 그는 휴전 객차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그곳에서 극렬한 복수의 미학을 과시했다. 같은 장소와 현장, 같은 의식(儀式)이다. 프랑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히틀러는 22년 전 포슈의 자리에 착석했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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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프랑스는 그곳에 1차대전 기념물을 복원했다. 객차는 복제품이다. ‘알자스-로렌 기념 조각상’도 새로 단장됐다. 그 조각상은 긴 칼(프랑스)로 독일제국의 독수리를 찌른다. 독수리는 거꾸로 처박힌 채 쓰러진 형상이다. 그것은 경멸과 앙갚음의 격렬한 표출이다.
 
행사 때 마크롱은 메르켈의 도착을 기다렸다. 마크롱이 서 있던 곳이 그 거대한 조각상 앞이다. 78년 전에 히틀러가 방문했을 때 조각상은 덮어졌다. 나치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로 가려졌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예전의 기념물을 의식하지 않았다. 숲속 공간을 편하게 걸었다. 휴전 객차에 들어갔다. 과거 두 차례 조인식 때 양측은 마주 보았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았다. 그 자세는 화해와 평화의 결속을 과시한다. 그것은 두 나라 리더십의 용기와 지혜의 유산이다. 1962년 프랑스 대통령 드골과 독일 총리 아데나워는 숙명의 동반자로 새출발했다.
 
1차대전은 한국인에게 낯설다. 그 시절은 일제 강점기다. 전선의 대부분은 유럽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교훈은 공간을 뛰어넘는다. 1차대전은 낭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전선은 인간 도살장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땅의 베르됭과 솜 강의 전투는 최악의 참극이다. 1차대전 죽음의 무게(승·패전국 전체 1000만 명)는 충격적이다.
 
11일 오전 11시 파리 개선문의 종전 기념식에 80여 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행사는 프랑스적 역사의식과 문화적 감성이 돋보였다.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바흐의 사라방드)는 희생자의 넋으로 다가갔다. 베냉(서아프리카)의 싱어송라이터 앙젤리크 키조의 노래가 이어졌다.
 
마크롱의 연설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의 단선적 언어는 긴장감을 높였다. “애국심은 민족주의의 정반대다. 민족주의는 그것의 배신이다.” 그 말은 그 자리에 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은 마크롱의 다자주의와 충돌한다. 하지만 그 말의 파괴력은 유지하기 힘들다. 국제정치의 동력은 힘이다.
 
마크롱의 회고는 선언적이다. “100년 전 종전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종전은 평화가 아니었다.” 전쟁은 통치자의 야심과 의지로 작동한다. 2차대전은 히틀러의 광기를 더해 폭발했다.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으로 시작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곡절과 파란의 여정이다. 14일 북한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 운용 논란은 그런 사례다. 평화는 힘으로 유지된다. 한쪽이 허약하면 다른 쪽은 파기의 유혹을 받는다. ‘무장(武裝)평화론’은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 것이다.
 
마크롱의 언어(파리 오르세 미술관 만찬)는 시적 감수성을 동원한다. 그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인용했다. “평화(paix)는 행복(bonheur)과 같아서 사라질 때 나는 소리(bruit)를 듣고서야 그것을 깨닫게 된다.” 전쟁세대 프레베르는 고엽(枯葉)의 작가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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