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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갑작스런 불행을 대처하는 마음

중앙일보 2018.11.14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대중강연이 끝나면 몇 분께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날은 미리 준비한 듯 손을 번쩍 드는 한 젊은 여성 모습이 보였다. 최근에 고민이 생겨 힘드신 분에게 부족하지만 저의 짧은 소견이라도 나누고 싶다는 말에 그녀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번쩍 손을 올린 것이다. 손에 마이크가 쥐어지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고 이내 울먹였다. 분명 무슨 힘든 일이 그녀 삶에 불현듯 찾아온 것 같았다. 마음을 잠시 진정한 후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만해서 감사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

“스님,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최근까지 큰 어려움이나 고생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두 달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로 몸에 화상을 입고 나서 큰 충격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만히 혼자 있으면 사고를 피하지 못한 제 스스로에게 화가 나다가도, 나는 아무 잘못 한 게 없는데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겼나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지금까지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다가도 나도 모르게 막 우울해지면서 나쁜 생각까지 합니다. 지금 제가 어떤 마음을 먹어야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녀의 옆에는 그녀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아마도 딸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불행을 딸이 잘 이겨내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내 강연에 함께 오신 것 같았다. 순간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 삶의 연륜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질문자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래도 되어 드리고 싶었다. 이 아픔을 잘 이겨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점점 차오르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우선 그런 큰 사고를 겪으셔서 얼마나 많이 힘이 드셨어요? 많이 놀라고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울기도 하고 많이 무섭기도 하고 그러셨지요. 피해의 억울함과 부모님한테 미안함도 충분히 이해가 되어요. 부모님께 심려를 끼친 것도 죄송하고, 하지만 내 마음 한쪽에서 화가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먼저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 사고들은 우리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무리 그 생각을 되뇌면서 후회하고 잘잘못을 따져도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어요.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

하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그 일에 관한 해석을 잘 내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을 내가 부정적으로 내려버리면 견딜 수 없는 억울한 삶의 피해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사건에 대한 의미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잘 살펴보고, 더불어 이번 일을 삶에 대한 큰 배움과 영혼의 성숙이 오는 기회로 삼는다면 지금과 같은 사고를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수행자의 삶을 택했을 때 들은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천상에 태어난 천신들은 부처가 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천상의 삶은 큰 즐거움들로 가득해서 깊은 진리를 찾는 어려운 수행을 하려는 마음이 잘 올라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우리 인간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을 때는 그 속에서 배우는 것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땐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을 잠시 멈추고 비로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삶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성찰해보게 되고 인생의 음과 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지혜가 열리게 됩니다.
 
특히 인생의 어려움을 모르고 산 경우, 타인의 고통을 봐도 마음속에서 자비한 마음이 크게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어떤 문제나 잘못이 있었겠지 하며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픈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그 일이 남 일 같지 않고 마음이 열립니다. 즉 과거 자신의 아픔이 세상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고 자비한 마음이 올라오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더불어 내 마음을 추스르시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의 불행이 그나마 이만 했으니 다행이다, 감사하다’라고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빴을 수도 있었잖아요. 감사한 마음이 쉽게 올라오진 않겠지만 그냥 나를 위해서 속으로 한번 되뇌어보세요. ‘이만해서 감사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 사람은 남에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불행을 하나씩 안고 살고 있어요. 그것이 지병이 될 수도 있고 가족 문제일 수도 있고 좌절된 소망일 수도 있습니다. 부디 이번 일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내 영혼이 성숙하는 기회로 발전되길 바라겠습니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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