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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자동차 공장을 휘젓는 검은 코끼리

중앙일보 2018.11.14 00:18 종합 29면 지면보기
문희철 산업팀 기자

문희철 산업팀 기자

“민주노총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들 생각을 100% 강요해서 말이 안 통한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민주노총 한국GM지부는 8일부터 인천 부평구 소재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 중이다. 이를 두고 홍 의원은 “노조와 대화를 거부한 적도 없는데 사무실 점거부터 했다”고 비판했다. 국회에서 제시한 마감시한(15일·예산심의 종료일)을 앞두고 막판 협상 중인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도 민주노총 반대로 좌초할 분위기다. 민주노총 현대차지부는 “사측이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하면 즉시 총파업”이라며 13일 현대차그룹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민주노총 한국GM 비정규직지회는 실직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12일부터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을 불법 점거 중이다. 이들은 지난 7월에도 16일 동안 한국GM 사장 집무실 점거했다. 민주노총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도 지난달 20일 동안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점거농성을 벌였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불법점거를 통상적인 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강성 노조는 자동차 업계의 ‘검은 코끼리(Black Elephant)’다. 검은 코끼리는 모두가 존재를 인지하고 있지만 너무 중대한 사안이라 다루기를 기피하거나 애써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는 문제를 뜻한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노사 갈등이 검은 코끼리라고 누누이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간 노사 갈등이 유발하는 문제를 애써 기피했다. 불법행위가 발생하더라도 노사 합의를 유도·압박하며 확산 방지에 급급했다.
 
정부가 혼란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청와대는 묵묵히 복직·채용 순서를 기다리던 희망퇴직자·신입사원 보다 쌍용차 해고자부터 전원 우선 복직을 추진했다. 덕분에 재계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야 혜택받는다는 학습효과를 경험했다.
 
3분기 현대차(2889억원)·기아차(1173억원) 영업이익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국신용평가는 12일 현대차·기아차 신용등급 전망(안정적→부정적)을 하향 조정했다. 한국GM·쌍용차는 아예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관성·부정·두려움으로 존재를 부정하는 동안 검은 코끼리는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던 프리드먼의 설명대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검은 코끼리의 존재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검은 코끼리가 더 이상 시장을 맘대로 휘젓고 돌아다니 않도록 고삐를 좨야 한다. 
 
문희철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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