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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휴대폰 감찰

중앙일보 2018.11.14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핸드폰이 문제야. 인생의 블랙박스….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게 들어 있어.”
 
상영 중인 영화 ‘완벽한 타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의 내용은 30여 년 친구들이 집들이에서 벌이는 일종의 ‘진실게임’이다. 식사하는 동안 모두 휴대전화를 식탁에 올려놓고,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카톡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이 한 명을 왕따시키려 했던 사실이 들통나고, 딸의 고민이 드러나며, 불륜이 발각되는 등 온갖 소동이 일어난다. 그러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다시 말한다. “이 핸드폰은 너무 많은 걸 갖고 있어요.”
 
그 말 그대로다. 휴대전화에는 개인 생활 대부분이 담겨 있다.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지부터 시작해 일상생활의 사진·동영상, 온갖 약속, 금융거래, 전자상거래, 신용카드 사용 명세에 인터넷 검색 기록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가족·친구·동료와 나눈 메신저 대화 중에는 불평불만과 내밀한 얘기가 수두룩할 터다. 그야말로 사생활 저장고다. 그래서 수사할 때도 휴대전화는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했다. 압수수색 영장은 기본이다. 또한 범죄 혐의와 관련한 정보 말고는 수사 과정에서도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끔 해놓았다.
 
지난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정책국장과 정책과장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조사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국민연금 개혁안이 보도돼 유출자를 찾아내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휴대전화까지 가져간 건 도를 벗어난 조치였다. 법학자들에 따르면 행정 감찰에서 조사할 수 있는 대상은 사무용 PC·전화·인터넷 등 공적으로 받은 기기와 공문서 등이다. 사생활이 가득한 개인 휴대전화를 뒤질 권한은 없다. 수사가 아니어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을 수도 없다. 청와대는 “본인 동의를 얻었다”지만, 그걸 진짜 ‘동의’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실 청와대가 공무원 휴대전화를 뒤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휴대전화·e메일·복사목록은 청와대 감찰의 3종 세트’란 말이 관가에 나돌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휴대전화 조사는 감찰 권한을 넘어서 ‘직권남용’ 소리를 들을 적폐임이 틀림없다. 청산 리스트에 올라 마땅하다. 인권을 중히 여기는 이 정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이 적폐를 즉시 없앨 의지가 있을까. 청와대 경호처 직원이 술집에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시민과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뉴스를 떠올리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맛 들인 권력을 쉽사리 내려놓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괜스레 씁쓸하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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