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 노조에 미움받을 용기없다" 벼랑끝 광주형 일자리

중앙일보 2018.11.14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지난 1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광주형 일자리’ 현대차 투자협상 관련 원탁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과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곤 기아자동차 노조 전 지회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의장, 이 시장, 박병규 원탁회의 의장, 이병훈 광주 문화경제 부시장. [뉴시스]

지난 1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광주형 일자리’ 현대차 투자협상 관련 원탁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과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곤 기아자동차 노조 전 지회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의장, 이 시장, 박병규 원탁회의 의장, 이병훈 광주 문화경제 부시장. [뉴시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3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광주시와 현대자동차, 노동계가 막판 협상 중인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 “협상만 타결되면 당이 나서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필요한 재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려면 국회의 예산심의 시한 안에 문제들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가세했다. 또 이해찬 대표는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경제수석, 이용섭 광주시장을 비공개로 만나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당·정·청이 광주형 일자리 성사에 총력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신 상생모델 계속 꼬이는 이유
노조 “기존 직원 임금 하락” 주장
현대차, 노조 반발에 협상만 계속
광주시, 산업 키울 대안 없어 고민
정부, 현대차 노조 뒤 민노총 눈치

민주당과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가 기존 자동차 업계 평균보다 절반가량 낮은 임금(3500만원 안팎)으로 노동자를 고용해 일자리를 늘리고 정부와 지자체가 근로자 복지를 지원하는 ‘좋은 일자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연간 10만 대의 1000㏄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생산공장이 들어서면 일자리 1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의 열쇠를 쥔 현대차 노사는 이날도 물밑 협상을 이어갔으나 성과가 없었다. 정치권에선 광주형 일자리가 문재인 정부 성공의 시금석이 될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광주형 일자리가 갖는 세 가지 정치·사회적 의미 때문이다.
 
◆정부-민주노총 관계 분수령=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 노조의 양해가 있어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 노조가 민주노총의 주력부대이기 때문에 현대차 노조를 설득할 수 있느냐는 결국 민주노총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틀에 포섭할 수 있느냐와 마찬가지 의미다. 정부가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GM 사태 등 노동 현안을 원만히 해결하려면 민주노총의 협조가 절실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조차 거부하는 실정이다.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가 소득주도 성장에 역행하는 정책이며, 오히려 다른 지역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기존 자동차 업체 임금 하락을 유도하는 ‘나쁜 일자리’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광주형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경차·소형 SUV 국내 시장이 연간 14만 대로 포화 상태여서 사업 자체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현대차 사측과 14일 최종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차 노조는 회사가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 동의하면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노총이나 전교조가 더 이상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나누는 결단도 함께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친노조가 아닌 친노동”이라며 “당내에선 이번 기회에서 강성 노조와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결국 대통령이 특정 지지층인 강성 노조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때”라고 진단했다.
 
◆새로운 상생 모델 창출=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인 노사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협상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첫 차례인 만큼 반드시 연착륙시켜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대표 모델로 만들겠다는 게 여권의 목표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협상만 타결되면 민주당과 중앙정부가 광주형 일자리에 필요한 공공주택, 생활편의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총리도 국무회의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와 상생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노동혁신의 모델이자 노사상생의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가 자리를 잡으면 다른 지역에서도 새로운 노사상생 일자리 모델이 가능해진다. 반대로 광주형 일자리가 좌초하면 문재인 정부의 노사·일자리 정책은 큰 상처를 받게 될 전망이다.
 
◆호남 민심의 향배=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2012년 대선 때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모두 지역 공약으로 ‘광주 자동차 100 만대 생산도시 구축’을 발표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를 거쳐 이용섭 시장이 이를 발전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구상이 자리를 잡았다.
 
특히 여권에선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호남 민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달 24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광주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광주는 산업이 아주 빈약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떠난다. 젊은이들이 떠나는 도시가 아니고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젠 광주형 일자리를 매듭지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도 “세 분의 민주당 대통령을 세웠지만 광주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춥고 외롭다”며 “광주는 민주당의 심장이다. 광주 시민들이 ‘우리 정권이 들어섰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부탁한다”고 거들었다. 현지에선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여부가 2020년 총선 때 호남 민심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광주형 일자리 원조 폴크스바겐 … 노조·시민 양보로 일자리 확대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

‘광주형 일자리’의 아이디어는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유래했다. 이 소도시는 인구 12만 명 중 5만 명이 폴크스바겐과 그 협력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경영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기 침체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 해외 이전을 검토하게 된다.  
 
노조가 반발하자 경영진은 “공장을 옮기지 않는다면 노조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화두를 던졌고, 노조와 시민들은 양보를 택했다. 2001년 본사와 분리된 유한회사 ‘아우토(Auto) 5000’을 세워 실업자 5000명을 채용하고 월급은 5000마르크(연봉으로는 3500만~4000만원) 수준에 맞추는 타협이었다. 본사보다 20% 낮은 임금이었지만 노조는 안정된 고용을 택했다. 이후 아우토 5000은 좋은 실적을 내 2009년 본사와 합병했다.
 
현일훈·윤정민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