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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잔술 문화' 만들고 '심야 택시' 줄였다

중앙일보 2018.11.13 16:34
“요새는 회식이 많이 줄었죠. 일이 끝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와인이나 맥주를 딱 한 잔씩만 하고 일찍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5년 차 직장인 김인수(31)씨 얘기다. 김씨는 지난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직장 내 회식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한다. 어쩌다 술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친한 사람들끼리 ‘딱 한 잔’씩만 마신다고 한다.
 
와인을 한 잔 단위로 파는 OO 와인집의 메뉴판. 정용환 기자.

와인을 한 잔 단위로 파는 OO 와인집의 메뉴판. 정용환 기자.

‘잔술 문화’는 하나의 소비 트렌드가 됐다. 한 잔에 3000원 내외를 받고 와인을 내주는 잔술 가게들이 최근 늘어나는 것도 그 영향이다. 주점에서의 결제 금액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고객의 결제데이터 등을 분석해 신 소비 트렌드를 연구하는 신한카드 마켓센싱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월~9월) 주류업종에서 평균 545억원을 사용한 신한카드 고객들은 올해 3분기 평균 495억원을 사용하는 데 그쳤다.
 
자료 신한카드

자료 신한카드

주 52시간제로 인한 소비 트렌드 변화가 포착되는 업종은 주류업종 뿐 아니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계기로 집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찬 시장도 커지고 있다. 배민 프레쉬ㆍ마켓컬리ㆍ헬로네이처 등 주요 온라인 반찬 배달 서비스 가맹점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한카드 마켓센싱셀에 따르면 올해 10월 신한카드 고객들이 반찬 가게(상호명에 ‘반찬’이 들어간 가맹점, 주요 온라인 반찬 배달 서비스 가맹점 등)에서 소비한 금액은 지난해 10월보다 77.4% 더 커졌다.
 
김효정 신한카드 빅데이터사업본부장은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주류업종에서의 결제 금액이 적어지고 반찬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건 ‘저녁 있는 삶’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숫자로만 이뤄진 데이터 속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트렌드를 발견한 것은 신한카드뿐이 아니다. 카카오택시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 2018’을 통해 종로구 종로1ㆍ2ㆍ3ㆍ4가동, 서초구 서초2동, 영등포구 여의동,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등 대기업 밀집지역의 택시 호출 시간을 분석했다.
 자료 카카오모빌리티

자료 카카오모빌리티

 
분석 결과 이들 지역에서의 심야시간(오후 11시부터 12시까지) 택시 호출 점유율은 전년 대비 크게 내려갔지만 퇴근시간(오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택시 호출 점유율은 크게 올랐다. 서초2동의 경우 심야시간 점유율은 20.4%에서 15.9%로 4.5%포인트 감소했지만 퇴근시간 점유율은 4.1%에서 5.8%로 1.7%포인트 증가했다.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호출 목적지도 달라졌다. 지난 7~8월 중 카카오택시 호출 목적지를 분석한 결과 영화관(118%), 박물관(101%), 미술관(234%), 전시관(167%) 등 문화시설과 체육관(138%), 헬스클럽(159%), 테니스장(159%) 등 체육시설로 향하는 택시 호출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자료 카카오모빌리티

자료 카카오모빌리티

이런 변화는 결제 데이터로도 나타난다. 신한카드 마켓센싱셀에 따르면 신한카드 고객들은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 1분기(1월~3월) 영화/공연ㆍ여가/놀이ㆍ헬스 등에 각각 185억원ㆍ426억원ㆍ282억원을 소비했지만 주52시간제가 시행된 직후인 지난 3분기(7월~9월)엔 227억원ㆍ454억원ㆍ299억원으로 소비금액을 늘렸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퇴근을 제때 못 하고 회사에 묶여있다가 회식에 끌려가기까지 ‘직장에 매인 삶’을 살던 회사원들이 인제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조금씩 찾아가게 됐다”면서 “지금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까지 확대되면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 전체로 퍼지고 결과적으로 보다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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