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1만2000V 넘어 탈출한 원숭이, 살아 있다는데...일주일째 행방 묘연

중앙일보 2018.11.13 05:00
탈출한 붉은털원숭이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 6일 오후 3시쯤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에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영장류 자원지원센터에서 달아난 원숭이의 행방이 일주일째 묘연하다. 나이는 4살. 무게 4~5㎏, 키 60~70㎝의 이 원숭이는 높이 7m, 상단에 최대 1만2000V의 전류가 1초 간격으로 흐르는 울타리를 넘어 사라졌다. 탈출 이튿날인 7일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었다. 이틀간 비도 왔다. 과연 아열대 중국 윈난성(雲南省)이 고향인 원숭이가 한국 늦가을 추위 속에 생존해 있긴 한 걸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준공식을 하루앞둔 5일 오후 전북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사육동에서 본 붉은털 원숭이.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준공식을 하루앞둔 5일 오후 전북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사육동에서 본 붉은털 원숭이.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4년간 총 185억원들인 ‘영장류 자원지원센터’...완공 당일 탈출한 원숭이 
 
생명연 원숭이 탈출 사건은 그 시기 때문에 관계자들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 지난 4년간 총 18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건설한 영장류 자원지원센터의 준공식 행사가 열린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생명연 관계자는 “오후 3시쯤 원숭이 한 마리가 탈출한 것을 확인했고,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경찰ㆍ소방당국에 신고했다”며 “행사를 마무리하고 있던 만큼 센터 내부가 혼란스러웠다”고 해명했다. 지역 시민단체인 정읍시민행동은 "탈출한 원숭이가 인수 공통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고, 실험약품 등에 의해 감염되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모든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지수 센터장은 “시민단체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원숭이는 엄격한 검역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감염 우려 등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다만 멸종위기종인 만큼 반드시 생포해야 하고 만약 추위에 동사하더라도 사체라도 꼭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동쪽 해발 763m 내장산 국립공원..."대나무 우거져 수색 난항" 
생명연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위치한 정읍시 입암면은 인근 제령봉ㆍ우릉정골 등 야산이 있으며 멀리는 삼성산ㆍ내장산 국립공원 등 숲이 우거져 있다. 사진은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 쌍계루.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생명연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위치한 정읍시 입암면은 인근 제령봉ㆍ우릉정골 등 야산이 있으며 멀리는 삼성산ㆍ내장산 국립공원 등 숲이 우거져 있다. 사진은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 쌍계루.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수색은 얼마만큼 진행됐을까. 생명연 측은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수색하고 있지만, 센터를 둘러싼 야산의 대나무 숲이 우거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영장류 자원지원센터가 위치한 입암면은 동쪽에 제령봉ㆍ우릉정골 등 야산이 있으며, 이 고개를 넘으면 동남쪽에 해발 547m의 삼성산, 763m의 내장산 국립공원 등 깊은 숲으로 이어진다. 만약 원숭이가 산을 타고 이동할 경우 사실상 수색은 불가능하다는 예측이 나온다.
 
전북소방본부는 “원숭이처럼 몸집이 작고 빠른 동물의 경우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사건 당일 50여명의 인력과 소방차 7대를 투입하는 등 4일 연속으로 수색을 벌였으나 아직 원숭이의 발자국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몸집이 빠른 만큼 인근 주민의 눈에 띌 가능성도 적다. 더욱이 인명 구조 활동에 투입돼야 할 소방인력과 장비가 원숭이를 찾는 데만 쓰일 수 없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억력 뛰어난 영장류인 붉은털원숭이, 민가로 내려올까... "생명연으로는 다시 안 올 것" 
 
영장류자원지원센터에서 6일 탈출한 붉은털 원숭이. 최저 16~18도의 기온이 유지돼야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에서 6일 탈출한 붉은털 원숭이. 최저 16~18도의 기온이 유지돼야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숭이는 과연 살아있을까. 생명연에 따르면 원숭이는 최근까지 센터 인근 마을에서 수차례 목격됐다. 아침 저녁으로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따먹는 것을 발견한 주민들이 소방당국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국내 1호 야생 영장류학 박사인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42)은 “붉은털 원숭이는 중국 남부와 파키스탄 등에 널리 분포하고 적응성도 높은 종이지만, 주로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특성상 추위에 매우 약하다”며 “특히 갑자기 바뀐 환경에서 먹이를 찾는 게 쉽지 않아 곧 민가로 내려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그때까지 생존해 있어야 한다. 특히 탈출한 붉은털원숭이는 약 8개월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됐으며 평생 인간의 손을 거의 벗어난 적이 없어 외부 환경 적응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스스로 먹이를 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으로 내려올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김산하 박사는 “지능이 높은 원숭이의 특성상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지원센터로는 다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준공식 하루 전 만난 김지수 영장류 자원지원센터장도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을 한 번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 할 만큼 지능이 높다”고 말했다.
 
추위 약한 붉은털 원숭이...정읍 현재 기온 ‘3℃’
생명연 관계자는 "야산에 감ㆍ도토리 등을 먹으며 생존하고 있을 수 있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급격한 환경 변화로 원숭이의 먹이 활동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대전 성북동에서 촬영된 감나무[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생명연 관계자는 "야산에 감ㆍ도토리 등을 먹으며 생존하고 있을 수 있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급격한 환경 변화로 원숭이의 먹이 활동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대전 성북동에서 촬영된 감나무[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만일 원숭이가 다시 민가로 내려온다 하더라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2일 오전 6시 기준 정읍의 온도는 최저 3℃까지 떨어진 상태여서 수색이 늦을 경우 생존율이 더욱 떨어진다. 김 센터장 역시 “해당 종은 아무리 추워도 영상 16~18℃의 온도가 유지돼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사육동 내부에는 온돌과 히터도 설치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숭이의 정확한 탈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원형 모양의 캐슬동 내부 벽이 7m나 되는 점을 참작할 때 중간의 구조물을 밟고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캐슬동은 영장류 행동분석과 관찰, 일반인을 위한 교육 기회 제공 등을 위해 만들어진 제한된 시설이지만, 6일 사건 이후 즉각 폐쇄됐다. 남은 원숭이들은 바로 옆 일반 사육동으로 옮겨졌다. 영장류 자원지원센터에는 현재 붉은털원숭이 등 영장류 550여 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기자 정보
허정원 허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