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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8만 대 수출 맞먹는 BTS의 봉변

중앙일보 2018.11.13 00:38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영국의 록그룹 퀸(Queen)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로 새삼 70, 80년대 팝송이 화제다. 왕년에 음악 좀 들은 중년이라면 이들 못지않게 이름을 떨쳤던 스웨덴 출신의 혼성그룹 아바(ABBA)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바는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3억7000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웠다. 심지어 소련 공연 때에는 서방 제재로 루블화 결제가 힘들자 석유 채굴권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그러기에 인기가 절정이던 1970년대 말에는 볼보에 이어 스웨덴의 두 번째 수출 품목이었다.
 

강제징용 판결로 일본 진출에 차질
한·일 관계, 경제적 시각에서 풀어야

하지만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방탄소년단(BTS)이 있지 않은가. 아이돌 그룹이 벌면 얼마나 벌겠느냐고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올 BTS의 예상 수입과 영업이익은 2300억원과 830억원. 지난 7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현대차의 대당 이익은 101만원으로 조사됐다. 결국 청년 7명이 현대차 8만 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외화벌이를 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후방 효과까지 생각하면 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골수팬들이 BTS 멤버들이 연습했던 스튜디오, 심지어 점심을 먹었던 식당까지 둘러보기 위해 입국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차가 마음에 든다고 한국을 찾는 경우는 없다.
 
이런 BTS의 일본 TV 출연이 전날 갑자기 취소됐다. 매진을 기록한 콘서트는 예정대로 열린다지만 TV에 못 나오면 인기몰이에 지장이 있을 게 분명하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 때문이다. 논란이 많지만 최고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그렇다고 이에 따른 한·일 간 갈등을 내버려 둬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권은 고작 “일본의 편협한 문화 상대주의” “전범 국가임을 전 세계에 홍보하는 일”이라고 볼멘소리나 하고 있다.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가뜩이나 경제가 말라가는 판에 이런 ‘캐시카우(cash cow, 수익 창출원)’를 방치해선 안 된다.
 
만약 한국산 자동차의 유럽 수출이 막혔다 치자.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한다고 난리가 났을 게 틀림없다. BTS의 일본 진출에 지장이 생기면 외교부가 아닌 경제부처가 뛰쳐나가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안부 협의에 이어 일제 징용자 배상 문제도 과거사뿐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은 K팝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지금은 BTS의 방송 출연이 물거품이 됐지만 다음엔 뭐가 올지 모른다. 그러니 일본 측 감정을 다독일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일본 회사가 함께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에게 보상하든, 독일식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만들어 풀든 미적거릴 틈이 없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 10월 8일)이 발표된 지 딱 20년 만에 나왔다. 이 선언이 나오게 된 데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IMF 경제위기로 그해 경제성장률이 -5.5%를 기록한 상황에서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을 통한 돌파구가 절실했던 것이다. 바람대로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한국 경제호의 순항에 큰 도움을 줬다. 일본의 한국 투자가 1998년 5억 달러에서 2002년 14억 달러로 3배가량 늘어난 게 양국 간 협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위안부 합의 파기에 이어 강제징용 판결로 악화될 대로 악화된 일본과의 갈등을 푸는 게 우리 경제의 숨통을 틔워줄 첩경임을 잊어선 안 된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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