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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설익은 선진국 함정’

중앙일보 2018.11.13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설익은 밥은 씁쓸한 기억을 남긴다. “뜸 들 때까지 기다릴걸….”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돌아가고 있는 경제정책을 보면 딱 설익은 밥을 먹는 꼴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선진국도 아니면서 선진국 뺨치는 복지정책을 추구하면서 경제가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한국의 이런 처지를 ‘설익은 선진국 함정’이라고 명명했다. 이 정부가 성장보다 분배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내년 예산만 봐도 그렇다. ‘파이 키우기’는 뒷전이고 ‘파이 나누기’만 앞세운다. 전체 470조원 중 복지 예산은 35%(162조원)에 달한다. 나라 곳간을 지키는 기획재정부는 정권 코드 맞추기인지 “5년간 세수 초과 60조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각종 수당을 늘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한 우려는 접으라는 얘기다.
 
파이를 나눠주는 건 국가의 기본 역할이 맞다. 시장경제로 인해 발생한 부(富)의 편중을 완화하고 낙오자를 보호하는 기능이다. 이를 위한 재분배 장치도 있다. 돈을 벌면 소득세·법인세를 내고 소비를 하면 부가가치세, 재산을 보유·처분하면 재산세·양도소득세를 낸다. 상속·증여에도 최고세율 50%가 부과된다. 정부가 가만히 있어도 세금이 쑥쑥 들어온다.
 
문제는 소는 누가 키우냐는 점이다. 우리 경제는 주력 산업이 활력을 잃고 4차 산업혁명에선 중국에도 뒷덜미를 잡히면서 급속히 하강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연평균 2%대 성장률이 고착화하고 있다. 그나마 반도체를 빼면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외양간에 있는 소 다 잡아먹고 나면 먹을 소가 없는 암울한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약속한 파이 나누기는 돌이키기 어렵다. 그래도 설익은 선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속도 조절이라도 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현실화는 기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이 정부 들어 끝없이 진행되는 ‘기업 배싱(때리기)’이 함께 중단돼야 한다.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그리스 등은 어설픈 선진국 흉내를 내다 경제를 망쳤다. 한번 망가지면 복구가 어렵다. 반면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강대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노동개혁과 규제 혁파가 그 원동력이다. 2%대 저성장의 늪에 빠졌는데도 “위기가 아니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더 길고 더 넓은 안목으로 경제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 나눠줄 파이도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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