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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총, 3년 전 합의한 탄력근로 확대 저지 왜

중앙일보 2018.11.13 00:11 종합 5면 지면보기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9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확대 등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9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확대 등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탄력근로제의 적용 기간 확대 여부를 놓고 정부·정치권과 노동계의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에 전통적인 우군이던 노동계와의 갈등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사회적 대타협 땐 기간 연장 동의
이제 와서 민노총과 공동 투쟁
“이슈마다 노동계 소외” 주장 속
대정부 영향력 확대 노림수 관측

탄력근로제 확대는 근로시간 단축(주당 최대 52시간)에 따른 후속 조치다. 고용대란 상황에서 정부·여당으로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고용시장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 그래서 올해 안에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9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공동 대응 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법 개정을 강행하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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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방안에 대해 노동계가 이미 찬성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2015년 9월 1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하면서다. 한국노총은 당시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이제 와서 ‘노동 개악’이라는 논리로 비판하는 것과 배치된다.
 
그래서 노동계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투쟁은 대정부·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린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저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는 제도 개선에 이어 탄력근로제마저 밀리면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판단이 투쟁 전선으로 이끈 배경이라는 해석이다. 노동존중을 표방하던 정부의 정책 기조가 경제 활력 회복으로 옮겨가면서 나타난 미세한 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얘기다.
 
2015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의결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중앙포토]

2015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의결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중앙포토]

9·15 사회적 대타협 당시 노사정은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되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은 1개월(취업규칙), 6개월(노사합의)로 한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현재는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이 취업규칙으로 할 경우 2주, 노사합의로 시행하면 3개월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면서 이 합의 내용을 뺐다.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이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면서 노동계에 유리한 항목만 법에 담고, 노동계가 껄끄러워하는 사안은 제외한 게 이번 노정 갈등의 발단이었던 셈이다. “법을 개정하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지킬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그런데 산업현장의 근간인 노사 자율성마저 부정하고 있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이렇게 되자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했다. 일감이 없는 시기에도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주문량이 많을 때는 일을 더 하는 유연한 근로체계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다.
 
독일과 일본은 노사합의가 있으면 1년을 적용 단위로 할 수 있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적용기간을 6개월~1년으로 정하고 있다.
 
현재 유력하게 검토되는 방안은 취업규칙으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적용기간은 1개월, 노사합의로 적용하면 6개월이다. 대신 탄력근로제를 하더라도 하루 휴게시간 11시간을 보장하는 방향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시행하고 있다. 탄력근로 적용기간 동안 특정 기간에 과도하게 장시간 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예컨대 6개월간 탄력근로를 실시할 경우 3개월간은 주당 70시간 넘게 일을 하고, 나머지 3개월은 주당 30시간 근무하는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법정 근로시간을 맞출 수는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최초 3개월 동안의 초과 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노동계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임금 저하와 건강권 침해다. 이런 이의제기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모색되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업종에 대해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것에도 여야 간에 의견 차가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든 걸(업종을) 다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고용노동부에서 탄력근로제가 필요한 업종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 본격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해 전면적인 탄력근로제 확대는 안 하겠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노동계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계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이나 국민연금 개혁과 같은 향후 일정에서 노동계가 소외될 수 있다”는 노동계 내부의 분석도 더해졌다.
 
하지만 두 노총의 공동 대응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발전노동위원회 복귀를 종용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 힘을 모으자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투쟁을 통한 쟁취를 고수하고 있다. 뜻은 같지만 실행 방안을 두고 노동계 내에 미세한 균열이 있는 셈이다. 고용과 소비, 투자 등이 급전직하하는 현 경제상황도 노동계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투쟁의 날만 세웠다가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탄력근로, 일 많을 때 더 하고 적을 때 덜 하기
탄력근로제는 일정한 기간 내에 근로시간을 신축적으로 운영하되 해당 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이 주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위법으로 보지 않는 제도다.  
 
현재 탄력근로 적용 기간은 취업규칙으로 할 경우 2주, 노사가 합의해 시행하면 3개월 단위로 할 수 있다.  
 
2주 단위 탄력기간을 적용하면 업무가 많은 첫 주에는 58시간 일하고, 업무가 줄어든 그 다음주는 46시간 일해 주당 평균 52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  
 
이때 첫 주 근로시간은 법 위반이 아니다. 다만 법정 근로시간(주당 40시간)을 2주분 합산(80시간)해서 초과한 근로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에 해당하는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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