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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뉴욕공대 첫 박사 제자는 동갑내기 대만계 … 당수 10단, 선수로도 활약

중앙일보 2018.11.12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KAIST 교수로서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총장으로도 봉사한 심상철 (1937년~2002년)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 공대 교수로 일하다 귀국해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사진 중앙포토]

KAIST 교수로서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총장으로도 봉사한 심상철 (1937년~2002년)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 공대 교수로 일하다 귀국해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사진 중앙포토]

나는 ‘과학기술은 곧 인재양성’이라고 믿는다. 내 인생의 확고한 신념이다. 1963년 박사학위 취득 뒤 지난 55년 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교수 직함을 놓지 않은 이유다. 지금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아주대의 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건 바로 이 일이 내 일생의 소명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81)
<33> 미국서 만난 다양한 인재들
뉴욕 공대서 과학자 양성 보람
첫 박사 제자 대만 출신 황광쯔
귀국해 이공대 총장까지 지내
뉴욕 공대 한인 제자들 맹활약
나도 지난 55년간 교수 맡아와
인재 양성은 내 인생의 소명

뉴욕 공대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부분도 바로 이공계 인재 육성이다. 과학기술자이자 교육자로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과학재단과 원자력 위원회에서 받은 연구비 덕분에 많은 대학원생에게 충분한 연구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을 능력 있는 과학자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교육자로서 보람이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한국 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주면서 도미 유학의 길을 터 줄 수 있었다. 이는 한국인 교육자로서 나의 긍지다.  
수많은 한국인 과학기술자를 배출한 뉴욕 공대. 현재는 뉴욕대 탠덤 이공대로 불린다. [사진 뉴욕대]

수많은 한국인 과학기술자를 배출한 뉴욕 공대. 현재는 뉴욕대 탠덤 이공대로 불린다. [사진 뉴욕대]

KAIST 전기전자공학과 ‘1호 교수’인 나정웅 전 광주과기원(GIST) 원장, 은희준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 김성년 전 원자력연구원장, 신상영 전 KAIST 부총장,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수영 KAIST 뇌과학 연구센터장, 명정수 전 유한대 총장을 비롯한 쟁쟁한 과학기술 인재들이 뉴욕 공대에서 공부하고 귀국했다. 미국에서 충실하게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초기의 열악한 연구 조건을 탓하지 않고 의지와 열정으로 이 땅의 과학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들의 헌신적인 연구·교육은 한국에서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발전을 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69~71년 뉴욕 공대 조교수로 가르치고 연구했던 심상철(37년~2002년) 박사는 KAIST 교수로 귀국해 한국의 과학자들을 길렀고 총장으로도 봉사했다. 심 총장은 전주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캘텍)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만난 인재들은 내 인생의 조력자이기도 했다. 사실 뉴욕 공대에서 새로운 핵융합 연구소를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동료 교수들의 적극적인 응원에다 미국과 한국에서 온 우수한 학생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과학기술 발전은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정근모 박사의 뉴욕 공대 첫 박사과정 제자인 대만인 황광즈 박사. 귀국 뒤 가오슝 응용과학대(현재 가오슝 과기대) 총장을 지냈다. 당수도를 연마해 10단에 이른 문무겸비의 인물이다. [사진 가오슝 과기대]

정근모 박사의 뉴욕 공대 첫 박사과정 제자인 대만인 황광즈 박사. 귀국 뒤 가오슝 응용과학대(현재 가오슝 과기대) 총장을 지냈다. 당수도를 연마해 10단에 이른 문무겸비의 인물이다. [사진 가오슝 과기대]

뉴욕 공대에서 나의 첫 박사 학위 제자는 대만 출신의 황광쯔(黃廣志) 박사다. 내 연구실에 들어와 새로운 플라스마 장치를 개발했고 70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했다. 대만에선 국립자오퉁(交通)대와 국립중산(中山)대 교수로 일하다 92~2001년 국립 가오슝(高雄) 응용과기대 총장을 지냈다. 그는 대만 최고의 당수도 선수로 나중에 10단까지 올랐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다. 황 박사는 동갑인 나를 스승으로 깍듯이 대우했다.  
이처럼 뉴욕 공대에서 일에 파묻혀 지내던 69년 초, 뉴욕 타임스를 읽다가 깜짝 놀랄 기사와 마주쳤다. 내 운명의 물줄기를 돌린 소식이었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방향을 바꾼 변곡점이기도 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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