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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누가 촛불을 들었나

중앙일보 2018.11.12 00:3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실감 난다. 상황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사람도 따라 변한다. 광화문에서 시청, 삼청동까지 물결치던 촛불은 과거로 밀려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 말마따나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필요하지만, 어떤 이는 문제의식에 짓눌리고, 또 어떤 이는 현실 속 단물에 취해 있다.
 

국민·국회 80% 탄핵 찬성했는데
정치인은 촛불로 우상 만들어
집권세력은 촛불을 독점하고
계파로 망한 야당 다시 반복
선거법, 증오의 양극화 부추겨
합리적 의견 박수 받게 고쳐야

시작은 촛불이었다. 거기서 모두 시작됐다. 그러나 너무 멀리 왔다. 촛불을 함께 들 때를 잊어버렸다. 그 덕분에 권력을 잡은 쪽이나, 견제세력으로 자리 잡은 쪽이나. 국민은 그냥 그 자리를 지키는데, 정치인은 촛불로 자기들만의 우상을 만들었다.
 
촛불은 국민의 요구였다. ‘제왕’이 된 대통령, 권력의 사유화, 공조직을 무시하고 사조직을 이용한 통치, ‘듣보잡’ 측근들의 특권화, 국민의 아우성에 귀를 닫은 불통, 편을 가르는 진영 정치…. 가슴을 치던 통한의 깨우침이었지만 남은 것은 제각각 자기식으로 변조한 해석뿐이다.
 
집권세력은 촛불을 독점한다. 스스로 ‘촛불 정권’이라 부른다. 촛불을 후광으로 다른 사람, 다른 세력을 심판한다. 정권의 이익, 권력 핵심 소수집단의 이익이라도 촛불의 영광으로 축복된다. 촛불로 얻은 칼자루를 독점적으로 쥐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은 넥타이 부대와 함께 승리했다. 재야 양심세력의 저항,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이 오랫동안 희생의 제물로 쌓였다. 그렇지만 야당 정치인과 넥타이 부대의 가세가 없었다면 더 오랜 고난의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촛불도 그런 길을 걸었다.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찬성 234(78%) 대 반대 56(19%). 이때 국민 여론도 탄핵 찬성이 80%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121명)·국민의당(38명)·정의당(6명)·무소속(7명)을 모두 합쳐도 172명. 새누리당 의원(128명)의 참여 없이는 어려웠다. 대통령선거는 달랐다. 문재인 후보가 얻은 표는 41.1%. 촛불 찬성 여론의 절반 정도다. 촛불이 가짜뉴스에 속은 것은 아니다. 국민은 현명했다.
 
문 대통령도 인정했다. 취임사에서 그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취임한 지 1년6개월. 분열과 증오와 독단의 정치가 넘친다. 촛불을 반대한 사람만이 아니다. 촛불에 앞장서고, 당을 함께한 사람까지 쪼개고 있다. 국민은 당으로, 당은 정파로, 정파는 인맥으로….
 
자유한국당에서도 탄핵을 다시 따지자고 한다. 탄핵 찬성자들을 ‘배신자’라고 한다. 국민 80%를 배신자로 낙인 찍겠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정부 때 민주당 사람은 데려다 써도 반대파 사람은 솎아내겠다고 핏발을 세웠다. 그렇게 망하고도 다시 그 시절로 가려 한다. 책임을 지는 시기를 지나 역풍을 탈 시기라고 판단한 정치적 영악함이다.
 
공기 탓이다. 현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흔들린다. 떡고물 탓이다. 벌써 다음 총선 지역구를 챙긴다. 한국당은 한 것이 없다. 반성도 없었다. 개혁이니 쇄신이란 말이 낯설다. ‘비상’이 부끄러운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 되고, 남은 부스러기를 차지하려는 일상의 행태가 되었다.
 
그런데도 무능한 정권 탓에 정치 지형이 움직인다. 경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가면 18대 총선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한 의석을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243개 선거구 중 129곳을 이겼다. 그러나 18대 때는 245개 선거구 가운데 이긴 곳이 66곳에 불과하다.
 
바람이란 그런 것이다. 이대로 가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적어도 제1야당이 푸짐한 떡고물을 차지할 것이라 계산한다. 집권세력은 집권세력대로, 한국당은 한국당대로 양극화하는 이유다. 합리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다 투표할 때만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기를 쓴다.
 
정치적 의견은 다양하다. 최저임금과 입시제도와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의견이 한 묶음으로 양분될 순 없다. 각자 판단이 있고, 자기 목소리가 있다. 지금은 하나라도 의견이 다르면 ‘배신자’라 비난한다. 외교 문제마저 국익보다 진영논리가 우선한다. 선거 때면 상대 후보에 대한 증오의 연대를 만든다. 가짜뉴스, 가짜 클릭이 동원된다.
 
선거법은 증오의 양극화를 부추긴다. 이제 합리적 목소리가 박수를 받도록 고쳐야 한다. 그런 후보를 찍어도 사표(死票)가 안 되게 보장해야 한다. 눈·귀 막은 진영 싸움은 그만둬야 한다. 국민은 졸(卒)이 아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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