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펜스 “전례없는 압박 계속” … 북한 “현상 유지 땐 대화 없다”

중앙일보 2018.11.12 00:18 종합 6면 지면보기
펜스(左), 폼페이오(右)

펜스(左), 폼페이오(右)

북·미 비핵화 협상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예정됐던 뉴욕 북·미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뒤 미국은 ‘압박 계속’으로, 북한은 ‘그러면 대화 불필요’로 충돌하면서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지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중간선거를 끝낸 백악관은 대북 압박 때마다 내세웠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재등장시켰다. 펜스 부통령은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례 없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포함한 압박 캠페인을 유지할 것을 모든 인도·태평양 국가들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올초부터 이어진 북·미 협상 국면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일관되게 대북 압박을 강조해온 ‘배드 캅’이다.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때 펜스 부통령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을 외면했던 게 대표적이다. 백악관이 이번에 펜스 부통령을 내세운 건 북한이 반발할 경우에 대비한 ‘플랜B’까지 염두에 뒀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 4월 대북 압박을 거론했던 펜스 부통령에 대해 “아둔한 얼뜨기”라고 맹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백악관은 펜스 부통령을 통해 북핵 협상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에 선(先)비핵화를 양보할 수 없음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번 기고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순방을 앞두고 나왔다. 그는 11~1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일본·싱가포르·호주·파푸아뉴기니를 순방하며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에 참석한다. 북한과 연관성이 높은 다자회의 참석에 앞서 대북 압박 기조를 다시 천명한 셈이다. 백악관도 보도자료를 내고 펜스 부통령의 순방에 대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한반도의 비핵화(FFVD)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재확인할 것”이라고 뒷받침했다. 싱가포르 ASEAN 정상회의와 파푸아뉴기니 APEC 정상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관련기사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미국과 협상을 시작한 뒤 금칙어였던 ‘협상 중단, 핵개발 재개’ 주장을 공개적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0일 “미국이 ‘서두르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이행이 아닌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면 구태여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위협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직후 북한 문제를 놓고 “서두를 것 없다”고 말한 데 대한 입장 표명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특히 조선신보는 핵개발 재개를 의미하는 병진노선 부활을 또 거론했다. 조선신보는 이달 2일 북한 외무성이 권정근 미국연구소장 명의로 발표했던 논평에 핵·경제 병진노선 부활 가능성이 담겼던 점을 언급하며 “연구소 소장 개인의 판단으로 써낼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고 밝혔다. 북한 지도부, 즉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까지 담겼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제재 일변도로 나온다면 다시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며 “최근 대내 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자력갱생’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재개할 경우 한반도엔 군사적 위기설이 다시 불거진다. 그만큼 파장이 엄청나다. 이를 의식한 듯 북한은 ‘협상 파탄’ 위협을 하면서도 수위는 조절했다. 조선신보는 북한의 공식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나 공식 당국인 외무성이 아니라 외곽단체인 조총련 산하다. 조선신보는 10일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은 삼갔다. 조선신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수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며 “대통령과 동상이몽하는 보좌진이 있다. 조선(북한)은 공동성명 이행 과정에 별의별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고위급회담이 다시 열렸을 때 미국이 보따리를 들고 올 것을 요구했다. 조선신보는 “조미(북·미) 고위급회담이 판별의 기회로 될 수 있다”며 “미국이 조선 측의 우려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수뇌분들의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협상 중단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북·미가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과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와 핵시설 신고를 놓고 마치 ‘닭이 먼저, 계란이 먼저’처럼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상태다. 미국은 숨겨놓은 핵시설 신고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할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여기는데,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가 미국이 북한 체제보장을 해줄지를 판가름할 신호로 간주하고 있다고 한다.
 
북·미 협상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은 한국을 향해선 ‘어디에 설지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11일 “최근 남조선 당국이 유엔의 북인권결의안 채택 놀음에 가담하려는 동향이 나타나 온 겨레의 격분을 자아내고 있다”며 “그러한 망동이 차후 어떤 파국적인 후과를 불러오겠는가 하는 데 대해 남조선 당국은 심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과 일본이 지난달 31일 유엔 총회에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에 정부가 참여의 뜻을 밝힌 데 대한 반발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작년 입장을 기본으로 하겠다”며 기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굿캅·배드캅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기 위해 비핵화 협상에 활용하는 전략. 외교 소식통들은 “워싱턴에서 펜스 부통령,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배드캅들이 북한을 믿어선 안 된다는 경고를 발신할수록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굿캅이 협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넓어진다”고 분석한다.

 
전수진·권유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