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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집밥을 그대로 살린 주점

중앙선데이 2018.11.10 02:00 609호 28면 지면보기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62> 서울 압구정동 ‘멜시보끔’
서울시 인구 978만 명 중에 1인 가구 구성비가 무려 30% 이상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대충 계산해도 300만 명이 1인 가구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1인 식사 메뉴·간편 가정식·테이크아웃 메뉴·편의점 음식이 빠르게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허전하기만 하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이다. 그 어떤 음식도 엄마가 해주는 집밥의 따스함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엄마가 생각날 때 달려가 한잔하기 좋은 곳이다. SNS의 후기는 “어떤 메뉴든 주문해 맛을 보면 엄마가 보고 싶은, 엄마가 느껴지는 맛! 집밥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자리잡은 이곳은 옥호가 독특하다. ‘멜시보끔’. 불어로 ‘대단히 고맙습니다’ 라는 뜻의 ‘Merci beaucoup’에 대표 반찬인 ‘멸치볶음’의 경상도식 발음을 섞어 지은 이름이다. 독특한 이름이라 한번 들으면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공간은 아담한 편. 실내 테라스와 주방을 낀 내부 공간으로 나뉘는데, 벽을 장식하고 있는 철골이나 독특한 소품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공간을 나눠서 운영하고 있는 건 어머니와 네 아들이다. 각자의 역할 분담이 아주 잘 되어 있다.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이렇다. 요리를 맡고 있는 어머니 김경자(61) 씨, 주점 운영을 맡고 있는 큰아들 김부용(본명 김현용·41) 씨, 주방에서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고 있는 둘째 아들 김현석(39) 씨, 홀을 맡고 있는 막내 아들 김현준(36) 씨 그리고 손님을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 덩치 크고 순한 프렌치 불독 ‘레옹(8)’. (막내 아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레옹은 가게의 마스코트로 손님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매거진 화보 촬영도 종종 할 정도로 포토제닉하다)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함께하고 있는 곳이라는 곳이라니! 형제간의 우애도 유난히 돈독하다는데,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느 집이나 가계의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가족도 큰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을 겪었다.  
 
큰아들 김부용씨는 1996년 ‘풍요속의 빈곤’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90년대 추억의 가수다. 가수 생활을 하다 군 제대 이후 연예계 생활을 포기했다. 인터넷 쇼핑몰·포장마차·주점·레스토랑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는데, 크게 성공한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 사업에서 큰 실패를 겪었다. 큰 돈을 잃었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곧 동생들과 의기투합해 주점을 오픈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다음 도전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꼭 필요했다.  
 
“저희 가족은 외식을 거의 하질 않았어요. 아버지 입맛이 워낙 까다롭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손맛이 정말 좋았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 가도 어머니 음식보다 맛이 없었어요. 치킨이나 탕수육, 피자 같은 걸 빼놓고는 무조건 집에서 식사를 했죠. 매 식사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진수성찬으로 나왔어요. 반찬 가짓수만 20여 종이 넘을 정도였으니까요. 남편과 아들들 먹이느라 어머니는 집에서 온종일 음식을 했어요. 이런 어머니의 음식이라면 손님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도와달라고 설득했습니다.”  
 
세 아들을 이길 어머니가 어디에 있으랴. “평소 집에서 해주는 것처럼 똑같이 요리해주면 된다”는 요청에 집에서 즐겨 먹던 음식들을 고스란히 메뉴로 옮겨 담았다.  
 
대표 요리는 LA갈비찜·LA갈비구이·LA바싹갈비다. “집에서 하던대로 똑같이 해요. 자식들에게 먹이는 마음으로 재료도 좋은 것만 씁니다. LA갈비는 육수 내는 데만 7~8시간이 걸려요. 프라임 등급의 좋은 고기를 쓰고 있고, 생강·월계수·통후추 등을 넣고 삶은 뒤 양념조리해서 냅니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멸치 볶음은 가락시장에서 국산 멸치를 사다가 매일 볶아요. 깍두기도 직접 담그고 있고요. 술 드시러 오는 분들이 많은데, 속 풀고 가라는 생각에서 미역국·북엇국·콩나물국·바지락국 등 국을 매일 바꿔서 내요.”  
 
듣고 있던 아들들이 거들었다. “오랜만에 엄마 밥 먹어서 든든하다고 감사인사 하고 가는 손님들이 많고요. 단골들은 어머니에게 꼭 인사하고 갑니다. 음식이 맛있다고 거래처 접대하러 오는 손님들도 있고, 단체로 몰려와 메뉴판의 음식들을 싹 다 시켜서 무섭게 먹어 치우는 남자 손님들도 있지요.”  
 
며칠 뒤 회사 식구들을 데리고 회식을 하러 이곳을 다시 찾았다. 이날 나온 기본 반찬은 멸치볶음·깍두기·무말랭이 그리고 우거지국. 먹성 좋은 남자들이 많아 LA갈비 3종 세트를 모두 시켰다. LA갈비찜은 살코기가 보들보들하고 뼈에서 쉽게 떨어져 나가 먹기가 편하다. 양념이 잘 배어 있어 밥과 함께 먹기도 좋다. 레드 와인과 아주 찰떡 궁합인데, 과일 향이 풍부하고 스파이스한 풍미의 호주 쉬라즈 품종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추천받은 와인은 그랜트 버지 와이너리의 벤치마크 쉬라즈. 살짝 달큰한 갈비 양념과 만나 조화를 이룬다.  
 
코다리 조림은 식사와 술안주로 동시에 맛보기 좋다. 꾸덕꾸덕 말린 명태살이 전혀 퍽퍽하지 않고, 쫄깃하다. 자작하게 담겨 나오는 매콤한 양념이 입에 착착 붙는다. 먹다 남은 양념을 버리기가 아쉬워 밥을 시켜 비벼 먹게 된다. 소주를 곁들여 먹는 분들이 많다. 법성포에서 공수하는 보리굴비는 가게에서 한번 더 말려서 찐 뒤 살짝 튀겨서 낸다. 3000원에 녹차밥을 추가할 수 있다. 주점에서 보리굴비? 하는 분들도 있지만, 1인 1보리굴비 하는 손님들이 많다.  
 
옥돔구이, 가자미구이부터 꽁치김치찌개까지! 와인부터 소주, 맥주까지 시켜서 메뉴를 거의 다 훑고 나서야 식사가 마무리 되었다. 과하게 먹었지만 속은 그저 편하고 따뜻하다. 혼자 사는 회사 PD님은 이날 어머님이 챙겨준 멸치볶음을 품에 꼬옥 안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 멜시보끔
한식주점, LA갈비 전문점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6길 5-10, 02-514-2481
평일~토요일 18:00 - 02:00, 일요일 휴무
 
추천 메뉴
LA갈비찜(中 3만 8000원, 大 5만원), LA갈비구이 3만 4000원
코다리조림 2만 4000원, 보리굴비 2만 5000원(녹차밥 3000원 별도)
 
추천 술
일품진로 3만원, 스텔라생맥주 9000원
마르케스 데 레케나 크리안자 5만원(하우스 와인),
그랜트 버지 벤치마크 쉬라즈 5만원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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