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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힙한 투표

중앙선데이 2018.11.10 02:00 609호 29면 지면보기
슈퍼 모델 지지 하디드의 일상복은 스타일 교과서다. 트레이닝복부터 슬리퍼까지, 별별 패션이 화제가 된다. 그런 그가 이번 주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른바 ‘선거 패션’이다.  
 
미국 중간 선거를 이틀 앞둔 4일(현지시간), 그는 찢어진 청바지, 검은 양말 부츠, 오버사이즈 네이비 재킷을 툭 걸치고 나타났다(사진). 역시나, 멋스러웠다. 그런데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투표하라(Vote)’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였다. 디자이너 프라발 구룽이 2019 봄/여름 컬렉션에 피날레로 입고 나온 옷이기도 하다.  
 
하디드의 패션은 그저 흔한 스트리트 패션이 아닌, 이번 선거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를 대변했다. 정치와 패션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이번 선거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부여되면서, 각계각층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그 속에서 패션은 정치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강력하게 녹아들었다.  
 
메시지를 담기 좋은 티셔츠는 기본 중 기본이었다. 프라발 구룽만이 아니라 토리 버치부터 캐롤리나 헤레나,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잇따라 투표 독려 티셔츠를 제작했다.  
 
독립 업체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디자이너 작 포센이 합류한 ‘레지스탕스 바이 디자인’이라는 업체는 민주당 여성 후보들의 얼굴을 새긴 실크 스카프를 만들었고, 링귀어 프랭크는 ‘투표로 힘을(power to the polls)’이라는 자수를 새긴 캐시미어 니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에코백(진보단체 ‘스윙 레프트’), 야구 모자(디자인업체 ‘더 라이어트 오피셜’) 등 액세서리도 대거 등장했다.  
 
‘투표 굿즈’가 제품이라면, 창작 콘텐트로서의 선거 패션도 전에 없이 반짝거렸다. 인스타그램에서는 “vote” 해시태그(#)를 단 포스팅이 수만 개씩 올라왔다. 상당수는 ‘반(反) 트럼프’를 나타냈지만, 정치적 의도와 상관없이 포스팅 자체가 마치 패션지 화보에서나 볼 법한 사진과 영상이었다.  
 
스타일리스트인 미카엘라 에르랭거는 멋쟁이 여성들이 투표 용지를 들고 있는 일러스트를 그렸고, 패션 유통업체인 조바니는 공식 계정에 푸른 벽을 배경으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성조기를 흩날리는 동영상을 내보냈다. 그밖에 ‘Vote’ 문구를 청바지 엉덩이 부분 전면에 찍는다거나, 손톱 하나하나에 네 글자 알파벳을 그려 꾸민 사진들도 시선을 끌었다. 투표 독려 스티커로 머리 전체를 감싼 ‘작품’도 등장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치적 패션’ 역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데다, 더 자유롭고, 무엇보다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캠페인이라기보다 실험과 놀이에 가깝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지지자들이 바지 정장을 입고 투표장에 나타났다거나, 여성 인권을 주장하며 핑크 모자를 쓰고 행진했던 사례에 비하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 모든 것이 소비보다 경험을, 긴 글보다 단 한장의 사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젊은 표심의 파워 아닐까. 선거라는 묵직한 이슈를 더 재미있게, 더 멋스럽게 전하고픈 이들의 무기가 바로 패션일 터다. “투표란 늘 패션 안에 있다”는 새로운 명제를 남기면서.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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