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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까지 최규호 8년, 이대우 25일…거물과 잡범의 너무 다른 도피행각

중앙일보 2018.11.09 11:04
8년 잠적 끝에 검거된 최규호 전 전북도교육감이 9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주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검찰은 8일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뉴스1]

8년 잠적 끝에 검거된 최규호 전 전북도교육감이 9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주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검찰은 8일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뉴스1]

 
"도주범 세계에서도 거물(巨物)과 잡범(雜犯)은 소위 '클래스(수준)'가 다르더라."

최규호(71) 전 전북도교육감이 8년 2개월 만에 검거되면서 사건을 담당한 전주지검 주변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같은 관내에서 일어나 전국적인 관심을 모은 도주 사건인데도 이대우(2013년 검거 당시 46세)의 초라한 도피 행각과 한 달도 안 돼 신속히 검거된 과정이 새삼 대비돼서다.

최 전 교육감은 골프장 확장 사업을 도와주고 3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로 검찰 수사를 받다 2010년 9월 잠적 후 최근 붙잡혔다. 이대우는 지난 2013년 5월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상습절도(104건)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도주했다 25일 만에 검거됐다.  
 
두 사람은 똑같이 검찰 수사를 피해 잠적했으나, 검거 기간부터 도피 생활, 조력자 규모, 도피 자금, 검거 장소, 체포 직후 모습, 검찰 대응까지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의 차이를 보였다. 지난 6일 인천시 동춘동 한 식당에서 체포된 최 전 교육감은 제3자 명의의 휴대전화·체크카드를 쓰며 수억원대 아파트(24평)에서 산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로 도주했거나 국내에 있어도 이곳저곳을 전전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그는 2012년부터 대도시 인천에 장기간 머물렀다. 호화 생활은 아니지만, 병원과 식당 등을 다니며 일반인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렸다. 체포 장소도 그가 자주 다니던 단골 식당이었다.  
 
검거 이튿날인 7일 전주지검 청사 밖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염색한 까만 머리에 검정 뿔테 안경을 썼다. 만 71세 노인인데도 녹색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면 말끔한 '노신사'의 모습이었다. 그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도 친·인척을 비롯해 교육 관계자 등 다수였다. 친동생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3선 국회의원(김제·완주)을 지낸 최규성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다. 그가 형의 도피를 도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검찰은 현재 시인도 부인도 않고 있다. 최 전 사장 부인 이경숙씨도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최씨 집안은 전주에서 '로열 패밀리(royal family)'로 꼽힌다.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이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7일 전주지검에서 교도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이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7일 전주지검에서 교도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대 교수 출신으로 전북교육감을 두 번 지낸 최씨 본인도 현역 시절 여야 불문하고 각계각층 유력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마당발'로 불렸다. 특히 익산 남성고 출신인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현 청계재단 이사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남성고 인맥이 탄탄했다. 그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던 당시는 MB 정부 시절이었다. 송 전 장관은 그가 검찰에 나가기로 한 2010년 9월 12일 종적을 감췄을 때 그의 변호인이었다. 송 전 장관은 당시 정동민 전주지검장과는 고려대 법학과 선·후배 사이였다. 둘 다 최 전 교육감이 사라지자 "우리도 그럴 줄 몰랐다"며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석연치 않다"는 얘기가 많았다.  

 
전주지검은 최 전 교육감이 증발한 뒤 8년여간 검사장이 10명이나 바뀌었지만,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밀항설·사망설·권력비호설 등 온갖 억측만 난무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최규호를 못 잡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잡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전주지검 수뇌부가 바뀌고 지난 8월 '최규호 찾기'에 나선 검찰은 석 달 만에 그를 체포했다. 하지만 신병을 확보한 뒤에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검거 경위 등 개괄적 내용 외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무려 8년이 넘는 동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고, 어떤 이들의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2013년 5월 '탈주범' 이대우 수배 전단. [사진 블로그 캡처]

2013년 5월 '탈주범' 이대우 수배 전단. [사진 블로그 캡처]

8년 전 검찰은 "최 전 교육감에게 뇌물을 줬다"는 공범들의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지역 유력 인사를 일반 잡범처럼 잡아들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소환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놓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문책론이 대두됐지만, 이 문제로 징계를 당한 검사나 수사관은 없다. 최 전 교육감은 최근 민주당 국회의원(진안·무주·장수·임실) 출신 박민수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 윤웅걸 전주지검장, 김관정 차장검사와는 고대 동문이다.  
 
반면 '탈주범' 이대우의 도피 생활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대우는 2013년 5월 20일 수갑을 찬 채 도주한 직후 전국에 공개 수배됐다. 전주지검은 이례적으로 사흘 뒤 "피의자 관리가 허술했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전북경찰청과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전국 검·경 인력을 동원해 이대우 검거에 매달렸다. 이대우는 도주 25일 만인 그해 6월 14일 부산 해운대 거리를 홀로 배회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검찰은 검거 하루 만에 중간 수사 브리핑을 열어 이대우의 도주 경로부터 도피 자금 규모 및 출처 등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자세히 공개했다. 이대우의 도피 자금은 총 310만원이었다. 어머니·친동생·교도소 동기에게서 받은 돈이었다. 거처도 들쑥날쑥했다. 모텔에도 묵었지만, 주로 인적이 드문 빈집과 폐가·공사장 등에서 숨어 지냈다.  
 
최규성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수뢰 혐의를 받는 최규호 전 전북도교육감이 친형이다. [연합뉴스]

최규성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수뢰 혐의를 받는 최규호 전 전북도교육감이 친형이다. [연합뉴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대전·수원·울산 등 전국 9개 지역을 전전했다. 이동할 때는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대머리인 그는 가발과 모자를 바꿔가며 수시로 변장했다. 도피 자금이 떨어지면 빈집을 털려고 가방에 늘 장갑과 공구 등을 가지고 다녔다. 서울 가리봉동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7만원짜리 월세방도 얻었지만, 실제 살지는 않았다. 체포 당시 그는 "자포자기 심정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쫓기는 삶'을 살았다. 전주지검 압송 당시 취재진 앞에 선 그의 몰골은 초췌한 '도망자' 모습 그대로였다. 검찰은 검거 이후에도 수사 상황을 매일 브리핑했다. 이대우 도주 책임을 물어 당시 남원지청 수사관은 물론 수사검사와 지청장도 징계 또는 경고를 받았다.
 
최 전 교육감은 본인 뇌물죄에 대해 자백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 김제 스파힐스 골프장이 9홀에서 18홀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교육청 소유인 자영고 부지를 골프장 측이 매입하는 데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3억원을 받은 혐의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기존에 드러난 뇌물죄 말고도 범죄로 볼 만한 혐의 몇 개가 더 있다"고 말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그는 9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는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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