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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나가라? 유치원 ‘폐원 꼼수’에 “애들 볼모로 협박하냐”

중앙일보 2018.11.09 06:00
지난 7일 A 유치원이 학부모에게 보낸 진급 신청서. [온라인 카페 캡쳐]

지난 7일 A 유치원이 학부모에게 보낸 진급 신청서. [온라인 카페 캡쳐]

종합감사에서 비위 사실이 적발된 울산의 한 사립유치원이 진급 신청 직전 갑작스럽게 수업 시간을 변경하는 등 기존에 없던 재원 조건을 제시해 학부모들이 ‘편법 폐업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유치원은 2015년 시설관리·행정일반 분야에서 주의를 받은 데 이어 대표가 함께 운영하는 자매 유치원이 지난해 감사에서 예산·회계, 행정일반 분야에서 경고를 받았다. 
 
지난 7일 울산 지역 온라인 카페에 ‘○○유치원 진급 신청서 배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울산 북구 A 유치원이 학부모에게 보낸 진급 신청서가 첨부됐다. 이 유치원 원장은 신청서에서 “최근 ○○2유치원(○○유치원의 자매 유치원)의 정기 감사 결과가 비리 유치원으로 과대 포장돼 조울증, 편두통, 대인기피증 초기 증상으로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다”며 “내년 2월 28일 자로 유치원을 폐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치원은 내년도 교육 변경을 알렸다. 바뀐 수업시간은 오전 8시 40분부터 낮 12시 40분까지 4시간이다. 점심 도시락은 원아가 따로 지참해야 하며 등 하원 버스 없이 알아서 등 하원 해야 한다. 이 유치원의 학부모에 따르면 현재는 원아 대부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받고 있다. 점심과 등 하원 차량도 제공된다. 여름·겨울 방학은 각각 2주지만 유치원은 내년 이를 5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교육당국에서 유치원에 지원하는 누리과정비 22만원을 학부모가 국가에서 직접 수령해 납부하라는 조건도 붙였다. 유치원 측은 “진급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진급 의사 없음으로 집계하겠다”고 명시하며 신청서 말미에 “공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공립 유치원에 지원해 당당한 혜택을 누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A 유치원 학부모가 올린 국민 청원. [청와대 국민 청원 캡쳐]

A 유치원 학부모가 올린 국민 청원. [청와대 국민 청원 캡쳐]

글 게시자는 “원장이 감사 적발과 관련해 설명이나 사과 한 번 없이 폐원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4시간 데리고 있을 테니 점심 싸 오고 등 하원 알아서 시키라는, 이게 말로만 듣던 폐원 동의서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사립 유치원이 폐업하려면 학부모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 설득이 필요한 폐업 동의를 받는 대신 진급 신청을 최소화해 정원 미달로 폐업하겠다는 꼼수라는 주장이다. 

 
이 글에는 “엄마들이 알아서 나가게끔 하는 것”, “공짜라서 국공립 좋아한다니 학부모를 거지 취급하냐”, “애들 볼모로 협박하는 꼴”, “재원 거부해서 인원 모자라면 벌금 없이 폐원 절차 순조롭게 밟게 되는 건데 그렇게 둘 순 없다” 등 성토하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학부모들은 “유치원 원아 모집이 대부분 끝난 시점에 갑자기 신청서를 보내 다른 유치원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더욱 반발했다. 학부모들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 8일 오후 현재 1300여 명이 동의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울산 강북교육지원청은 A 유치원의 진급 신청서를 반협박성 동의서라고 표현하면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제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육부 규정상 각 유치원은 누리과정을 참고해 1일 4~5시간만 수업하면 된다. A 유치원 측은 “할 말이 없다”는 입장만 내놨다. 
 
울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6일 기준 38개 사립유치원이 관할 교육청에 폐원 신청을 하거나 학부모들에게 폐원 안내를 해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충북 청주의 E유치원에서는 지난달 31일 긴급 학부모 설명회를 열고 폐원을 알리자 학부모들이 “일방적 통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7일 경기도 하남시청 앞에서는 한 사립유치원 폐원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학부모들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요’, ‘하남시에 사시려면 아이 낳지 마세요’ 등의 손팻말을 들고 대책을 촉구하며 하남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사립유치원 비리 공개에 따른 파장이 커지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1일 “유치원의 일방적 폐원, 원아 모집 중지 등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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