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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노회찬이 통곡할 청와대·국정원의 특활비 ‘마이웨이’

중앙일보 2018.11.08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 8월 어느 날. 국가정보원의 내년도 예산 초안을 입수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고양갑·3선)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보비’로 이름만 바꾼 특수활동비가 전년 대비 970억원 이상 늘어난 5609억원으로 계상돼 있었다. 특활비 폐지를 부르짖으며 원내대표 재직 중 받은 석 달 치 전액을 반납하고 생을 마감한 동지 노회찬의 상을 치른 지 달포도 안된 때였다. 정의당은 노회찬의 뜻을 기려 그가 숨진 뒤 입금된 한 달 치 특활비 1000만원도 반납했을 정도였다. 이런 마당에 국정원이 특활비를 이름만 바꿔 1000억원 가까이 늘려 편성했으니 심상정의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안보비의 ‘용처’였다. 과거 국정원 특활비는 ‘기밀이 요구되는 정보 수사와 이에 준하는 활동에 직접 사용되는 경비’에만 쓰이게 돼 있었다. 한데 안보비는 여기다 ‘기관 운영(인건·운영·사업)에 필요한 제반 경비’를 추가했다.
 

국정원, 특활비보다 더한 ‘안보비’ 신설 꼼수 … 정의당마저 분개
청와대, 국회도 줄인 특활비 그대로 유지 … 대통령 다짐 어디 갔나

“국정원 특활비 사용권에 무한정 날개를 달아준 독소조항의 극치다. 이러면 국정원이 특활비를 권력 실세에 상납해도, 댓글 공작 비용으로 써도 죄다 면죄부를 받을 우려가 있다. ‘기관 운영 원활화 목적으로 쓴 경비’라고 발뺌하면 그만이라서다.” 심상정 측 한 관계자의 탄식이다. 심상정은 이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질의서를 기획재정부에 보냈지만 두 달 넘게 답변다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어쩌다 이런 괴물 같은 돈이 탄생했을까.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나 친박 실세에게 상납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폐지론이 거세게 일자 국정원은 특활비를 없애는 대신 안보비를 신설했다. 이를 문제 삼은 한국당 추경호(달성·초선)등 의원들에겐 “안보비는 특활비와 달리 기밀이 아닌 비용은 증빙서류를 갖춰 일반예산에 준해 처리할 방침”이라고 설명해 예봉을 피해갔다.
 
그러나 안보비의 내역을 보면 특활비보다 더한 ‘눈먼 돈’의 전형이다. 직·간접 소요경비를 총액으로 뭉뚱그려 요구하고, 편성 지침과 모니터링도 국정원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안보비 도입 1년이 지난 지금, 그 사용 내역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좌우지간 국정원의 꼼수 실력은 알아줘야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더욱 어이가 없는 곳이 청와대다. 청와대의 내년도 특활비는 비서·안보실 96억5000만원, 경호처 85억원으로 올해 대비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 국정원이나 검·경 등 안보·사법기관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액수다. 검·경 조차도 내년도 특활비를 15~20% 줄였고 국회는 84%를 쳐냈다. 대법원 등 5개 기관은 아예 특활비를 없앴다. 청와대만 거꾸로 갔다.
 
지난해로 돌아가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보름만인 5월 25일 대통령 특활비와 특정업무경비(127억원)를 42%(53억원) 줄이기로 결정했다. 또 그 기준을 2018년도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특활·특경비 예산을 31% 줄이겠다고 밝혔다. 남은 돈은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에 쓴다고 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가족 식사와 조·중·만찬 및 간식 한 달 치 추정 비용을 대통령 월급에서 빼겠다고까지 했다. 이랬던 사람들이 한 해 만에 태도가 싹 달라진 것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8월 25일 국회에서 “청와대 특활비를 반납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대통령의 외교·안보 활동에 꼭 필요한 비용”이라며 일축했다. “특활비는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꼭 필요한 돈”이란 한마디로 넘어갔던 박근혜 청와대와 싱크로율 100%다. 특활비 사용 내역 공개를 꺼리는 것도 박근혜 청와대 뺨친다. 시민단체 ‘납세자 연맹’이 지난 6월 문 대통령의 1년간 특활비 내역 공개를 청구하자 청와대는 “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 포함돼 공개 시 국익을 현저히 해칠 것”이라며 거부했다. (들리는 말로는 청와대는 매달 8억원가량을 특활비로 쓴다고 한다.)
 
특활비는 원래 수사 등 기밀이 필요한 활동에만 쓰는 비용이다. 따라서 국정원과 검·경 빼고는 특활비가 필요 없다. 혹여 청와대가 기밀이 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면 국회에서 비공개로 결산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특활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기재부 차관 출신 예산통인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김천·초선)의 말이다. “지금 청와대는 야당 시절 ‘특활비 없애라’고 목청을 높였던 사람들 아닌가. 그래서 지난해 집권 직후엔 박근혜 청와대와 차별화 목적으로 특활비를 다소 줄였다. 그러나 1년 지나고 보니 특활비 쓰는 맛이 워낙 달콤하거든. 그러니 ‘배째라’ 식으로 가는 거다.”
 
국회는 특활비를 63억원에서 10억원으로 줄였다. 요즘 국회 상임위원장들은 산하 단체 행사장에 화환조차 못 보낸다. “표로 먹고사는 국회는 유권자가 요구하면 제살깎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데 정부(청와대 포함)는 선거가 없어선지 희생하는 모습이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왜 국회만 패는가. 화가 난다.” 민주당 출신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의 한탄이다. 청와대에 들렸으면 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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