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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협력이익공유제로 또 편가르기 하나

중앙일보 2018.11.08 00:26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병철 산업팀 기자

강병철 산업팀 기자

“세계 최초인지 확인해봤어. 보도자료에 있는 대로 기사를 쓰면 어떻게 해?”
 
기자 생활 초반 선배에게 혼나면서 들은 얘기다. 실제로 정부나 기업이 보도자료를 만들 때 ‘세계 최초’란 말을 자주 쓴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보다 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 입장에서 해당 내용이 세계 최초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제한된 시간에서 빠르게 기사를 써야 하는 일간지 기자로선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 세계 최초란 단어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 최초’를 애써 외면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6일 ‘대·중소기업이 함께 가는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직전 중소벤처기업부 공무원들이 정책을 설명하면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는 전례가 없는 거 같은데 세계 최초 아닌가요?”(기자)
 
“한국의 산업 구조가 다른 나라와 달라서 그런 건데 언급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중기부 공무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세계 최초’의 정책을 내놨는데 하루 만에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상임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단계에서만 협의가 이뤄진 것이라며 애써 그 파장을 축소하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입법은커녕 여당 내 당론 채택 가능성까지 쉽지 않은듯하다.
 
이 제도가 일으킨 가장 큰 논란은 헌법 제119조 제1항에 있는 시장경제 원리를 위배하고, 재산권이라 할 수 있는 이익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기업에서 발생한 이익은 주주의 몫으로 주주 동의가 없이 누구에게 줘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편가르기다. 재계 관계자는 “참여 대기업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를 주고, 미참여 기업에 대해서는 시장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제도”라며 “정부는 기업 자율 시행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적 제도”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정신과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정부다. 아무리 그래도 반성은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가 지나친 편가르기로 꼽히기 때문이다. 협력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과 달리 이 제도 역시 참여하는 대기업과 그렇지 않은 대기업으로, 혜택받는 중소기업과 못 받는 중소기업으로 편을 가를 것이다. 부작용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정책을 강행하는 청와대와 홍종학 중기부 장관에게 책임이 크다. 협력이익공유제가 편가르기의 또 다른 사례를 만들까 걱정된다.
 
강병철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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