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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용세습 의혹, 공공기관 개혁의 마중물 삼아야

중앙일보 2018.11.08 00:25 종합 29면 지면보기
임무송 한국산업기술교육대 초빙교수

임무송 한국산업기술교육대 초빙교수

실업자 113만 명, 청년 체감 실업률 22.7%.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지표다. 이 와중에 서울교통공사를 필두로 정부 정책에 편승한 신종 고용세습 의혹이 불거졌다. 그것도 차별 해소와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부여받은 공공기관에서 내부자들이 연루돼 일어났다. 100만 청년 구직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이고, 공정한 경쟁시스템을 무너뜨린 행위다. 청년들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로남불’로 덮을 일이 아니다.
 
물론 친인척이 함께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을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중의 분노에 편승한 처벌 위주의 대증요법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어서다. 구조적인 비리 유발 요인을 찾아내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우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특혜가 있었는지다. 공공기관은 서류와 필기 전형, 인성검사, 개별 프리젠테이션(PT), 집단면접 같은 과정을 거치는 직무능력을 기반으로 한 공개경쟁을 원칙으로 한다. 정규직 전환 과정이 신입 공채에 비해 느슨했다면 이미 특혜 소지가 있는 셈이다. 또 서울교통공사 인사규정 제16조는 “임직원의 가족·친척 등을 대상으로 하는 우대채용은 금지”하고 있다. 내부자 정보 이용이나 친인척 끼워 넣기는 명백한 인사규정 위반이다. 기간제→무기직→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전환 경로의 각 단계에서 부당한 꽂아 넣기가 없었는지 밝혀야 하는 이유다. 블라인드 채용이 깜깜이 채용이 안 되려면 ‘고용세습 방지법’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아직도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 단체협약에 명시된 가족우대채용 조항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채용비리 의혹이 정부의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한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은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다. 그래서 틈만 나면 조직을 키우려는 속성이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민간 일자리가 줄었다. 공공기관은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을 명분 삼아 인력을 충원한다. 일자리를 줄인 잘못된 정책이 공공부문 증원 명분이 되는 셈이다.
 
시론 11/08

시론 11/08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기간제, 파견·용역 등 15만7196명이 정규직이 됐다. 정원 관리를 해야 하는 공공부문의 특성상 그만큼 청년의 취업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급한 밀어붙이기와 정치적 포퓰리즘의 결합에 따른 부작용이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화된 근로자이고, 사내 하도급 근로자는 협력회사의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 아니다. 그런데도 전환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일이나 역할과 관계없이 똑같은 임금체계에 편입하는 게 차별 해소인양 여긴 획일적 평등주의 함정에 빠진 결과다. 단일 호봉제의 폐단이다.
 
능력과 성과에 상관없이 해만 바뀌면 일률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는 공정한 임금체계가 아니다. 최신 직무능력을 갖추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입사한 청년세대나 전문직 입장에서 보면 능력을 무시하는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다. 성과가 없어도 임금이 오르니 혁신이 일어날 리 없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공기업과 중소협력업체 직원 간 임금 격차를 확대한다.
 
채용은 직무 중심인데 임금은 근속 중심이고, 하는 일이 달라도 같은 임금을 받는 호봉직의 증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 흐름에 반한다. 임금체계 개편과 같은 개혁이 결여된 정규직화는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비효율만 키울 뿐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물론 중앙 공공기관도 2017년 기준 338개소(31만2320명)의 절반가량이 호봉제다. 서울교통공사는 단순 노무 등 채용에 신축성이 필요한 업무까지 일반직으로 전환해 강화된 호봉제를 적용받게 했다. 상시·지속적 업무라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공공기관은 이내 비대한 공룡이 되고 만다.
 
다행히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보수·인사·평가 등 공공기관 관리체계의 전면 개편 방침을 밝혔다. 기관별 특성을 고려해 업무 특성과 직무 가치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뤄지도록 바꾼다는 얘기다. 노동계는 평가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독일 금속노조 사례를 보면 직무·역할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고용 안정과 상호 존중의 노사문화에 기여한다.
 
청년들이 묻고 있다. 공공기관 취업 과정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가. 밝힐 것은 밝히고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상실의 시대를 사는 청춘들에게 ‘공공 알바’로 빙하기를 견디라고만 할 수는 없다.
 
임무송 한국산업기술교육대 초빙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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