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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어차피 태극기 부대 따라올텐데···전원책 전략 오류"

중앙일보 2018.11.07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보수통합론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고 있나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딜레마’에 빠졌다.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태극기 부대’ 입당이 급증하면서 합리적 보수 노선으로 당을 재정비하려던 김병준 비대위의 고민이 커진 것이다. 전당대회 투표권 있는 책임당원이 불과 두 달 만에 1만 명 이상 늘었는데 당에선 대부분이 태극기 부대로 추정한다. 대체로 황교안 전 총리나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진태 의원 등 친박 인사를 지지하는 그룹이다. 당내에선 “어차피 태극기 부대 입당을 막을 수도 없는 마당에 일단 흡수해서 세력을 키우자”는 주장이 많다. 조강특위를 사실상 이끄는 전원책 변호사가 이런 입장을 폈지만 통합 대상인 바른미래당 등에선 비난이 터져 나왔다. 야권 재편 움직임에 걸림돌이 될듯한 모양새다. 실제로 그런 것인가.
 
야권 재편 논의

야권 재편 논의

#1.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장.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연단에 섰다. 한국당이 의뢰한 ‘자유한국당 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 원인 분석’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강경한 대북 안보 프레임을 버리고 총체적 난국의 실질적 원인이 되었던 인물을 바꿔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100명 가까이 참석했던 의원 중 절반은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떴다. 남은 의원 중엔 꾸벅꾸벅 조는 의원이 많았다. 질문자는 없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충고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용역 보고서는 당론이 아니라 참고 자료”라고 못박았다.
 
#2. 같은 날 저녁 충남 덕산의 한 스파 콘도.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충남도당 핵심 당직자 200여 명과 당의 진로를 놓고 비공개 토론회를 벌였다. 김 위원장이 설명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적 청산을 요구하는데 몇 사람 책임지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해찬·최재성 의원을 잘랐지만 다시 국회로 돌아오지 않았느냐. 당의 비전과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분임 토의 땐 ‘당이 혁신과 단일대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데 인적 쇄신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토론회에선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3. 촛불 2주년을 앞둔 지난달 27일 한낮의 덕수궁 대한문 앞. 도로는 집회 차량, 인도는 꽉 들어찬 태극기 중장년층으로 인산인해였다. ‘문재인 탄핵’ ‘박근혜 석방’의 구호가 가득한 가운데 ‘국가 해체, 경제 파탄, 영토 포기, 국군 무장 해제’란 구호가 뒤섞였다. 거리 곳곳엔 ‘태극기가 심판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서울역에서 87차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이동한 태극기 부대엔 2년 만에 젊은 층까지 가세했다. 집회에 참석한 2030들은 ‘문재인 퇴진’을 외쳤다. 동화면세점 앞에선 젊은 보수들의 ‘전국대학 트루스포럼’이 열렸다.
 
 
“반문재인, 반김정은으로 목표 바뀌었다”
 
보수 재편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한국당은 지금 얼굴이 세 개다. 당의 저변에선 인적 쇄신에 대한 갈증이 크지만 지도부와 의원들은 “뿌리부터 바꾸겠다”에서 “반문연대 단일대오가 급하다”는 쪽으로 급속하게 선회 중이다.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태극기 부대는 그런 지도부를 반대 방향에서 ‘위장 보수’라고 공격한다. 한국당이 보수와 야당의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도 비박이 당권을 장악하면 보수는 물론 나라가 망한다는 입장이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 물었다.
 
내년 초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출마하나.
“그럴 생각이 있다.”
 
가능성 있을까.
“여론조사론 어려울지 모르지만 책임당원 성격을 놓고 보면 가능성 있다.”
 
태극기 부대의 입당 러시가 도움이 된다는 뜻인가.
“한국당 책임 당원은 33만 명이다. 최근 2~3만 태극기가 입당했다고 하는데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 다만 한국당의 오래된 당원들은 태극기보다 훨씬 더 입장이 강한 분들이다.”
 
태극기 부대의 총 규모는 얼마나 되나.
“지난달 27일 집회가 가장 컸는데 참석자가 2~3만 명이었다. 최대한 모으면 10만 명 집회도 가능하다.”
 
전원책 변호사의 태극기 포용 발언 이후 바른미래당에선 비난이 나왔는데.
“태극기는 대한민국 보수의 주류고 뼈대다. 바른미래당이 들어오는 건 좋은데 태극기를 빼라는 건 망언이다.”
 
보수대통합이 가능할까.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으로 정치 흐름이 가파르게 바뀌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사이엔 골이 깊지만 ‘반문재인, 반김정은 연대’란 더 큰 목표로 급속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야권 재편, 실질적으론 바른미래당 일부 복당
 
한국당 비대위가 추진 중인 보수통합의 길은 세 가지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해체한 다음 보수 빅텐트로 결집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난망한 일이다. 그러자면 안철수 현상을 만든 제2의 안철수 혜성이 필요하다. 시기적으로도 2020년 총선이 가까워져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오직 당선 가능성만을 보면서 서로 뛰쳐나오고 이합집산이 이뤄져야 한다.
 
두 번째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당 대 당 통합을 하는 중통합이다. 이 역시 전망은 회의적이다. 그렇게 되면 호남 의원들이 다음 총선에 출마할 명분이 사라진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자유한국당이 쇄신도 없이 바른미래당과 통합하자는 건 웃기는 얘기”라며 “우리 당에서 갈 사람이 있으면 가라”고 못박았다. 한국당으로 향할 의원 수는 많아야 서너 명에 불과할 거란 자신감이다.
 
셋째는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 한국당에 합류하는 소통합이다. 유승민 전 대표를 비롯해 구 바른정당계 인사들, 새누리당 탈당파들이 동참하느냐가 핵심이다. 중·대 선거구제로의 개편이 아닌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가 확정되면 바른미래당은 존폐 기로에 서고 탈당 러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호남당인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선거구제 개편에 당연히 소극적이다.
 
 
“한국당을 반문연대 플랫폼으로 만들 것”
 
바른미래당은 지금 바른정당 출신과 국민의당 출신들이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충분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새누리당 탈당파가 보수대통합 움직임에 동참할 여건은 충분하다. 문제는 태극기 부대 입당이 이런 움직임에 걸림돌이 될 거냐는 점이다. 바른미래당에선 당장 ‘도로 박근혜당’이라고 태극기 부대 입당에 부정적 시각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태극기 부대 역시 탄핵 찬성파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거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비박계, 즉 바른미래당과 통합하려면 최소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대로면 보수 통합은 제대로 추진조차 해보기도 전에 파장 분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전원책 변호사가 굳이 이슈화시킨 이유는 뭘까.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보수가 분열돼 있으니 뭉치자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태호 전 경기지사를 만나서도 반문연대 아래 합치자고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반문 단일대오론이 접점이다. 태극기 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탄핵을 반대한 친박 단체로 시작했다. 선거에서 보수 후보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처음엔 ‘박근혜 석방’에 주력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재인 퇴진’으로 강조점을 옮기고 있다.
 
김용태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의 결집 문제”라고 주장했다. “태극기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다. 후자에 집중하면 된다. 한국당이 반문연대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비판만 하는 건 정신의 승리가 될지 모르지만 현실의 승리는 아니다. 현실에서 이겨야 한다.”
 
 
바른미래당서도 “태극기 포용은 당연한 일”
 
바른미래당은 어떨까. 유승민 전 대표와 가까운 이혜훈 의원이나 안철수 전 대표 쪽인 이태규 의원 모두 태극기가 야권 재편의 걸림돌은 아니라고 봤다.
 
“태극기가 보수의 간판이 되는 건 확장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태극기를 껴안는 것 자체야 당연한 일이다. 보수가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어렵다.”(이혜훈 의원)
 
“걸림돌이라기보다 야권 재편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보수 통합이라는 새로운 시작보다 그저 흩어진 사람을 모은다는 느낌을 준다면 국민 감동을 만들기 어렵다”(이태규 의원)
 
그럼에도 이슈가 된 건 ‘전원책 변호사의 시행착오’라고 해석했다.
 
“한국당이 보수를 큰 저수지에 한 통으로 가두지 않고 인적 청산을 시작하면 밖의 세력과 규합해 자꾸 분열하니 일단 모두 모은 뒤 쇄신하겠다는 얘기를 한 것 같다. 태극기가 보수의 가장 큰 세력이니 가장 먼저 태극기부터 들어오란 뜻을 전한 것 같은데 우선순위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이혜훈 의원)
 
“야권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큰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큰 그림이 먼저다. 보수 통합으로 가면 태극기 부대는 어차피 따라올 세력인데 굳이 논쟁 대상으로 만든 건 정치와 평론을 구분하지 못한 전 변호사의 전략적 오류다”(이태규 의원)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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