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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군주국가 사우디에 ‘왕좌의 게임’ 피비린내가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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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절대군주국가 사우디에 ‘왕좌의 게임’ 피비린내가 솔솔

중앙일보 2018.11.06 01:15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주중앙포토]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주중앙포토]

1932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해온 알사우드 왕가에 ‘왕좌의 게임’이라는 거대한 모래 폭풍이 불어 닥칠 기세다.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가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 살해된 사건의 후폭풍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그동안 엄청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군사력과 강력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해왔던 사우디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까에 쏠린다. 카슈끄지 사건은 사우디에서 불어 닥칠 피비린내의 서곡일 뿐일까.  
 
살만 국왕(오른쪽)을 비롯한 사우디 왕가 왕자들이 9월 25일 이슬람 성지 메카와 홍해 항구 제다를 잇는 철도 기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살만 국왕(오른쪽)을 비롯한 사우디 왕가 왕자들이 9월 25일 이슬람 성지 메카와 홍해 항구 제다를 잇는 철도 기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면초가 신세가 된 사우디
카슈끄지 사건이 사우디에서 파견한 정보 요원들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사우디 왕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사우디 왕가가 그동안 거액의 무기를 사주며 ‘관리’해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10월 23일 이 사건에 대해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일”이라고 비난하고 “(사건의) 은폐는 은폐 역사상 최악의 하나”라고 말했다. 유럽의회는 10월 27일 사우디에 무기 수출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 주관으로 10월 23~25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 이니셔티브(FII)’ 행사는 서방 인사의 불참으로 파리를 날려 ‘사막의 다보스’라는 별명을 무색하게 했다. 겨우 중국과 러시아 인사 정도만 참석했을 뿐이다. 지난해 첫 행사 때 실질적으로 이 행사의 ‘주인’ 노릇을 한 무함마드 빈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33)가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AP=연합뉴스]

사우디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AP=연합뉴스]

언론탄압 에르도안이 사우디 공격 앞장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토막 살해설’ ‘기획 암살설’ 등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한 자극적인 정보나 첩보를 연일 내놓으며 사우디의 언론인 살해를 맹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에르도안 자신도 자유언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이다. 2016년 7월 불발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뒤 이를 빌미로 자신에게 반대했던 군인·정치인·공직자·법조인·교육자·지식인은 물론 반대 성향의 언론인까지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그 뒤 고분고분하지 않은 언론사를 대거 폐쇄하고 미디어에 재갈을 물려 ‘언론탄압’을 자행해왔다. 에르도안은 그런 다음 2017년 4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게 ‘제왕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대통령이 과거 의회에서 구성하던 각료를 마음대로 임명하고 조종할 수 있게 한 것은 물론 예산권도 장악하게 됐다. 판사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이 갖게 되면서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의 통제권도 한손에 쥐었다. 이처럼 에르도안은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은 나 몰라라 한 인물이다. 사우디 정보요원들이 카슈끄지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자 에르도안은 이를 빌미로 자신이 마치 ‘자유언론의 수호자’인양 행동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로니도 이런 아이로니가 없다.  
터키서 실종된 뒤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AP=연합뉴스]

터키서 실종된 뒤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AP=연합뉴스]

 
카슈끄지, 군주국가의 평민일뿐
그런데 카슈끄지는 사우디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은 인물이다. 사우디의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체제에 대놓고 타격을 주거나 도전할 정도의 중량급 인물이 아니다. 아무리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오피니언 지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전제군주 국가인 사우디에선 평민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를 제거한다고 국왕과 왕세자가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사우디 기업인이자 억만장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왕자. 그의 부친 탈랄 왕자는 자유왕자 운동에 앞장서다 현재는 자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우디 기업인이자 억만장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왕자. 그의 부친 탈랄 왕자는 자유왕자 운동에 앞장서다 현재는 자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우디 내부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   
그렇다면 카슈끄지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살인이나 절대왕정이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비판적 언론인의 입을 막으려고 제거한 수준을 넘어선다. 사건의 뒤에는 사우디 왕실 내부에서 벌어져온 거대한 음모와 원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카슈끄지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체제에 원한을 지난 왕실 야당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왕실 야당 인사들은 무함마드 빈 살만 때문에 왕위 계승 과정에서 밀려난 것은 물론 권력에서도 소외돼 왔다. 카슈끄지가 언론인과 정보기관장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모신 사우디 왕족들은 한결같이 왕실 내 야당 인사였다. 이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보인다.  
정보국장과 주미 재사를 지낸 사우디의 투르키 왕자. [AFP=연합뉴스]

정보국장과 주미 재사를 지낸 사우디의 투르키 왕자. [AFP=연합뉴스]

 
'카슈끄지의 피로 왕자들에 경고'   
그렇다면 카슈끄지 살해의 목적은 다른 데 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있다. ‘닭을 잡아 원숭이를 경계한다’는 뜻의 ‘살계경후(殺鷄儆猴)’가 그것이다. 곡예장의 원숭이가 제대로 재주를 부리지 않고 반항하자 눈앞에서 닭을 죽여 겁을 주면서 길들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닭이 카슈끄지라면 원숭이는 현재의 국왕과 왕세자 체제에 불만을 가진 왕실의 다른 일원들일 것이다. 카슈끄지를 과감하게 '해꼬지' 함으로써 알사우드 왕가 내 불만 세력의 결집과 행동을 막으려는 의도가 짐작된다는 이야기다.  

 
형제 상속으로 권력 줄서기 만연 
실제로 사우디에는 권좌에서 밀린 왕자가 한둘이 아니다. 알사우드 왕가에  이런 불화가 생긴 근원은 왕위 상속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1953년 세상을 떠난 뒤 사우디 왕실은 형제상속을 계속해왔다. 정치적 안정을 위한 선택이었다. 압둘아지즈는 22명의 부인과의 사이에 45명(성인까지 생존은 36명)의 아들을 뒀다. 왕위 상속자는 형식적으로 가족회의에서 선거로 결정하도록 했다. 대부분 나이순으로 이뤄졌다. 다만 ‘국왕직을 수행할 수 없거나 자격이 없는 사람은 제외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이 원칙이 화근이었다. 2대 사우드 국왕은 즉위 12년째인 63년 가족회의에서 형제들이 단합해 그를 끌어내렸다. 사우드 국왕의 자식처럼 왕위나 권력에서 소외된 왕족들은 기존 체제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 권력의 핵심인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 권력의 핵심인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장관 수십 년-공직의 이권화도 문제 
사우디는 고위 공직을 대부분 왕실에서 맡고 있는데 그 자체로 집안의 거대한 이권이 되기도 한다. 1969~2011년 42년간 국방장관을 지낸 술탄 빈 압둘아지즈(1924~2011년) 전 왕세제는 국방부를 바탕으로 세력을 유지했다. 술탄은 형인 압둘라 국왕이 자신보다 오래 사는 바람에 국왕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국방차관을 밭던 그의 아들 할레드 빈 술탄 왕자는 권력에서 밀려났다. 술탄의 자식들은 물론 그에게 줄을 섰던 사우디 인사들은 모두 권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주목할 점은 할레드가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권 최대 신문인 알하야트의 소유주라는 사실이다. 카슈끄지는 이 신문에서 8년간 일했다. 
1975~2012년 37년간 내무장관 지낸 나야프 빈 압둘아지즈(1934~2012년) 전 왕세제는 경찰력을 바탕으로 한 내무장관이 개인 권력의 보루였다. 형인 술탄에 이어 왕세제를 이어 받은 그도 형인 압둘라 국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국왕에 올라보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동생인 살만이 왕세제를 거쳐 2015년 1월 국왕에 올랐다. 
 
왕위 후계자 연속 교체의 후폭풍  
그 뒤 사우디에는 살만 국왕의 후계자를 놓고 ‘왕좌의 게임’이 본격화했다. 살만의 배다른 동생으로 2015년 1월 왕세자에 오른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72)는 그해 4월에 자리에서 밀려나고 가택연금을 당했다. 살만 국왕은 무크린 대신 동복 동생인 나예프의 아들, 즉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59)를 왕세질에 임명했다. 하지만 그도 2017년 6월 살만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으로 교체되고 가택연금을 당했다. 왕좌를 눈앞에 두고 무너져야 했던 무크린이나 무함마드 빈 나예프의 원한이 클 수밖에 없다. 무함마드 빈 살만이 미래 권력에 다가갈수록 알사우드 왕가 왕자들의 원한이 쌓여갔다. 이들에게 줄을 섰던 숱한 사우디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카슈끄지, 사우디 왕가 '야당'과 가까워 
1975~2001년 26년간 정보국장을 지내며 사우디의 모든 정보를 한손에 쥐었던 투르키 빈 파이살(73) 왕자도 왕가 내 권력에서 밀려난 경우다. 2005~2007년 짧게 미국대사 맡은 뒤 공직에서 물러났다. 투르키는 파이살(1906~1975년, 재위 1964~1975년) 전 국왕의 아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투르키가 정보국장과 미국 대사 시절 카슈끄지를 보좌관으로 기용했다는 사실이다. 카슈끄지의 경력에서 언론인이 아닌 직업에 종사한 독특한 경우다. 카슈끄지는 결국 투르키에 줄을 섰다가 물을 먹은 경우로 볼 수 있다.  

젊어서 레바논 여성과 결혼하면서 왕위 계승에서 탈락한 탈랄 빈 압둘아지즈(87) 왕자는 불만의 온상이다. 그는 ‘자유왕자 운동’을 벌이며 입헙군주제를 주장하며 이집트에 망명까지 했다가 돌아와 근신해왔다. 그런 탈랄의 아들인 알왈리드 빈 탈랄 반 압둘아지즈(63) 왕자는 사우디 왕가에서 드물게 자수성가한 세계적인 사업가다. 알왈리드는 카슈끄지를 기용해 ‘아랍뉴스’라는 방송국을 만들었다가 하루 만에 폐쇄당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의 일부 왕자와 장관들을 호텔에 연금할 당시 5성급 호텔에 잠시 감금된 적도 있다.  
카슈끄지는 살만 국왕이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반대할 수 있는 여러 왕자와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이 사실이다. 그가 직접 모셨던 할레드 빈 술탄과 투르키 빈 파이살, 그리고 알왈리드 빈 탈랄은 무함마드 빈 살만 세력에 대한 잠재적인 도전자로 볼 수 있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 내 야당 인사 간 교류 네트워크의 연결고리 구실을 해온 셈이다.  
 
'왕가의 게임' 이제 시작 
게다가 사우디에는 여러 이유로 왕위 계승에서 탈락하거나 줄을 잘못 선 왕족과 관료들이 숱하게 있다. 이들은 왕위 계승에서만 탈락한 게 아니라 집안의 어른이 오랫동안 맡으면서 사권력의 도구가 됐던 국방부, 내무부, 정보부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중에 한자리를 얻으려고 줄을 섰던 숱한 사람도 같은 운명을 맡게 됐을 것이다. 이들이 세력을 모으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카슈끄지를 죽인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카슈끄지는 무함마드 빈 살만에 대한 ‘잠재적 견제 세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다 시 범 케이스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알사우드 왕실에서 벌어질 ‘왕가의 게임’은 이제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  
 
아라비아 사막에 어떤 바람 불까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발각되면서 사면초가가 된 사우디의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체제가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하는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해온 예멘 내전 참전, 대이란 강경책, 대이스라엘 접근 등 다양한 정책의 미래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석유를 깔고 앉은 사우디에 피바람이 불지, 모래 폭풍이 불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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