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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시시각각] 원희룡이 비겁하다

중앙일보 2018.11.06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스토리텔링이 화려하다. 1982학년도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법대 수석, 92년 사법고시 수석. 화려한 스토리는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개혁적 소장파’를 내세워 서울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고, 2014년엔 ‘제주의 아들’을 기치로 도백(道伯)이 됐다. 6·13 지방선거 전략도 절묘했다. 녹지국제병원 반대 여론이 일자 개원 승인 여부를 선거 뒤 공론화로 미뤘다. 그러곤 ‘무소속’ 용단으로 제주 바람보다 더 거세다던 ‘친문’ 돌풍을 잠재웠다.
 
그런 원 지사의 정치 인생이 시험대에 올랐다. 국내 첫 투자개방형병원(일명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허가 문제다. 원 지사는 좌고우면한다. 녹지병원 공론조사 결과(10월 4일, 개설 반대 우세)가 나온 지 한 달째다. 공론화가 애초 선거 전략용이었는데 막상 불허하자니 뒷감당이 두려운 것이다.
 
나는 원 지사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따져 보자. 첫째, 투자병원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한 16년간의 성과물이다. 박근혜 정부 때 사업 승인을 받은 중국 녹지그룹이 778억원을 들여 지난해 7월 서귀포에 47병상의 성형·미용 전문병원을 완공했다. 의사·간호사 등 134명도 채용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시민단체가 공공의료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자 원 지사가 덜컥 겁을 냈다. “외국인 병원 1번 타자가 돼야 한다” “의료휴양시설이어서 건강보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투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던 소신을 팽개쳤다. 그리고 공론 뒤에 숨었다.
 
둘째, 공론화 자체가 부적절했다. 신고리원전과 대입 개편과는 달리 중앙정부가 승인해 건물까지 지은 사업을 공론에 붙인 건 행정권 남용 아닌가. 공론화위원장을 맡았던 허용진 변호사조차 “애를 낳았는데 다시 집어넣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셋째, 투자병원에 ‘영리 악마’ 프레임을 씌워도 눈을 감았다. 세상에 영리를 취하지 않는 병원이 어디 있나. 동네 의원과 개인 병원, 강남의 성형병원도 다 영리병원이다. 턱뼈 깎고, 코 높여 주고 떼돈을 번다. 일부는 국내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을 수 없자 일본으로 달려간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그랬다. 비영리를 표방한 학교·의료·사회복지법인 병원은 어떤가. 환자가 인스턴트 식품도 아닌데 3분 진료와 과잉 검사가 허다하다. 다 영리를 위해서다.
 
넷째, 47병상짜리 병원 하나가 공공의료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지난 6월 직접 둘러본 소감도 그랬다. 럭셔리했고 풍광도 멋졌다. 가만있어도 병이 나을 것 같았다. 급여 항목은 기존 병원처럼 똑같이 수가 규제를 받고, 비급여 항목만 자율이다. 뭍의 성형병원과 다를 바 없다. 원 지사가 모를 리 없다.
 
다섯째, 녹지그룹에 꽃놀이패를 선사하는 격이다. 정부 승인 사업을 원 지사가 불허한다면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될 게 뻔하다. 녹지 측이 유리하다. 그 돈 누가 물어주나.
 
연인원 1250만 명의 제주 관광객 중 외국인은 10%도 안 된다. 의료와 휴양을 겸비한 매력적인 섬을 만들어 더 많이 오게 해야 한다. 그래야 고급 일자리가 생기고 도민 살림이 나아진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러시아조차 투자병원이 즐비한데 왜 겁내나.
 
최종 결정권자인 원 지사가 ‘개원’ 용단을 내려야 한다. ‘영리병원=원희룡’ 꼬리표가 붙을 걸 걱정한다면 원희룡 스토리는 더 진화하기 어렵다. “리더가 결단력이 부족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존 F 케네디). 원 지사가 새겨야 할 말이다. 안락한 방관(Comfortable inaction)으로 제주 도백에 머물 텐가, 정면 돌파해 중앙무대 리더 경쟁에 뛰어들 텐가.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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