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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병사는 출혈이…" 영화 보고 치료법 찾는 이 직업

중앙일보 2018.11.05 09:01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6) 
영화 '고지전' 스틸컷. 전쟁 영화에는 다친 병사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다친 병사들이 내 앞에 있다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중앙포토]

영화 '고지전' 스틸컷. 전쟁 영화에는 다친 병사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다친 병사들이 내 앞에 있다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중앙포토]

 
전쟁 영화에는 다친 사람이 많이 나온다. 총에 맞거나 건물에 깔리거나 하는.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상상을 하곤 한다. 다친 병사들이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이다. ‘저 병사는 어디 어디를 다친 거 같고, 이런 처치를 하면 살릴 수 있을 거 같은데’ 혹은 ‘아, 이건 이미 치명상이니 손대도 별수 없겠네.’ 화면을 보며 이런 식으로 환자 평가를 해보곤 한다. 응급의학과 의사의 직업병이라고 보면 된다.
 
전쟁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병사가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잠시 후 심장이 멎는다. 주인공은 친구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을 터트린다. 관객 대부분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해서 눈물을 흘릴 때, 뚱딴지처럼 나는 머릿속으로 엉뚱한 견적서를 뽑기 시작한다.
 

‘일단 피나는 부위를 압박 지혈하고, 심폐소생술을 해야겠다. 출혈량이 얼마쯤 될 테니 대량수혈을 시작하고. 엑스레이랑 초음파도 하고. 저렇게 울기만 하면서 허무하게 환자를 잃을 수는 없지.’

 
상상 속의 처치다 보니, 당연히 행복 회로가 굴러간다. 아예 목이 두 동강 난 사람만 아니면 누구든 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저 친구를 살려내면 주인공도 행복해하겠지? 잘생긴 연예인이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예쁜 여자 연예인을 소개해 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응급실에서 환자를 볼 때, 우리는 포기를 모른다. 전장이 아닌 병원이었다면, 저들 중 많은 수가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여 심장이 멎으면 심폐소생술을 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치료를 끝까지 받아보았으니, 죽더라도 여한 없이 눈을 감을 것이다.
 
물론 보통의 현실 얘기다. 전장은 상황이 다르다. 비단 전장뿐이 아니다. 사고나 재해가 일어난 상황에서의 재난 의료는 평소와는 달라야 한다. 백화점이 붕괴하고 다리가 무너지면 사상자가 한꺼번에 무더기로 발생한다. 당장 손쓰지 않으면 죽을 환자가 동시에 여럿 생긴다. 총에 맞은 병사가 동시에 1000명이 생기면, 의사 10명이 모두를 치료할 수는 없다.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생각해야만 한다. 즉, 살 수 있는 환자들에게만 손을 쓰게 된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의 모습. 응급실은 전장의 축소판이다. 재난 의료는 일반적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한정된 응급실에 너무 많은 환자가 들어왔을 땐 전장과 똑같은 재난 프로토콜이 발동된다. [중앙포토]

서울대병원 응급실의 모습. 응급실은 전장의 축소판이다. 재난 의료는 일반적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한정된 응급실에 너무 많은 환자가 들어왔을 땐 전장과 똑같은 재난 프로토콜이 발동된다. [중앙포토]

 
재난 의료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일단 큰 소리로 외친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여기로 모이세요!” 환자들은 치료받을 거란 기대로 모여들겠지만, 실상은 반대다. 모여든 환자는 그대로 병원까지 걸어가라고 내버려 두게 된다. 걸을 수 있는 정도의 환자는 치료대상이 아니니까.
 
그들보단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중요하다. 급히 뛰어가서 신속하게 상태를 살핀다. 그 와중에 어차피 손 써도 틀렸다 싶은 환자는 일단 포기한다. 심폐소생술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손상이 심해도 의료진 여럿이 매달리면 살릴 수 있을 거 같은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가 응급실에 온다면 당연히 치료의 최우선순위를 받게 된다. 생명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응급실은 이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니까. 
 
하지만 재난 현장은 다르다. 의료 자원이 부족하고 환자가 많다면, 즉 이 환자에 투입할 의료진을 다른 환자로 돌리는 게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저 환자는 안타깝지만 산 채로 죽음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라도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환자는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다. 애초에 재난 상황이 가지고 있는 비극이다. 모든 환자가 모든 상황에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다. 전장에서 총상 입은 환자들이 신음 흘리며 죽어 갈 때, 주인공이 괜히 전우를 버리는 게 아니다. 고통을 줄여준다며 오히려 머리에 총을 쏴주기도 하는데 그게 나쁜 짓이 아니다. 전쟁은 그리고 재난은 원래 비극이다.
 
대한민국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항구적인 재난 상태다. 모든 사람이 최선의 진료를 끝까지 받기 위해서라도 중환자를 위해 응급실은 비워둘 필요가 있다. [사진 Pearson Lloyd]

대한민국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항구적인 재난 상태다. 모든 사람이 최선의 진료를 끝까지 받기 위해서라도 중환자를 위해 응급실은 비워둘 필요가 있다. [사진 Pearson Lloyd]

 
이제 다시 현실이다. 응급실은 전장의 축소판이다. 우린 어떤 환자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렇지만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응급실에도 재난 상황이 펼쳐지는 일이 있다. 한정된 응급실에 너무 많은 환자가 들어왔을 때다. 이럴 때는 즉시 전장과 똑같은 재난 프로토콜이 발동된다. 환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안 될 거 같은 환자는 빨리 포기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항구적인 재난 상태다. 너나 할 거 없이 응급실로 밀고 들어오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경증환자, 만성환자로 이미 침상이 빼곡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응급실은 중환자를 위해 비워둘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최선의 진료를 끝까지 받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경증 환자가 많아져 응급실에 재난 상황이 펼쳐지면, 주인공은 당신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 어쩌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를 당신을 두고.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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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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