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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서빙의 기술

중앙일보 2018.11.03 13:00
[더,오래] 이효찬의 서빙신공(7)
우리가 많이 만나는 사람은 가족, 함께 일하는 동료, 친구다. 아무래도 손님과 지내는 시간은 이들보다는 적다. 가족에게 사랑받고 동료에게 신뢰받는 사람은 고객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손님은 찰나의 접점이다. 그 순간 힘을 발휘하려면 가족과 동료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받아야 한다. 가족과 동료에게 사랑받는다면 손님에게도 사랑 못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와 지적장애인 부모의 손에 컸지만 그들의 사랑 덕분에 사람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오늘은 부모를 통해 배운 서빙의 기술을 공유하고자 한다.


부모 지갑 뒤지다 발견한 지적장애인 3급증
한글을 읽기 시작한 어느 날 부모 몰래 떡꼬치를 사 먹기 위해 부모의 지갑을 뒤지던 중 환하게 웃는 엄마의 사진이 들어간 지적장애인 3급증을 보게 되었다. [중앙포토]

한글을 읽기 시작한 어느 날 부모 몰래 떡꼬치를 사 먹기 위해 부모의 지갑을 뒤지던 중 환하게 웃는 엄마의 사진이 들어간 지적장애인 3급증을 보게 되었다. [중앙포토]

 
한글을 읽기 시작한 어느 날 TV를 보던 부모 몰래 떡꼬치를 사 먹기 위해 부모의 지갑을 뒤진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엄마의 사진이 들어간 지적장애인 3급증을 보게 되었다. 
 
아빠의 지갑도 열어보니 똑같은 게 있었다. 학교 친구들이 흔히 놀리던 장애인, 이 단어에 나의 부모가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 못 했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날 때부터 부모는 순수했고 정상인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 단어를 본 순간부터 나의 부모는 사라지고, 10년 동안 장애인 2명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상처받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사랑스러운 부모로 바라보게 된 이후부터 나에게 진상손님이란 있을 수 없었다. 어떤 손님도 나의 머리카락을 빠질만하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손님은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한 끼만 달랑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회상해보니 10년 전의 부모나 지금의 부모는 늘 한결같았다. 변한 건 나였다. 결국 변화는 상대방, 손님, 가족이 아니라 나에게 오는 것이다. 부모는 주민등록번호를 외우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내가 외워서 관공서에 이야기해주는 게 훨씬 빨랐다.
 
마찬가지로 추운 겨울날 손님이 문을 닫지 않고 들어올 때 내가 닫으면 되는 거였다. 손님이 토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내가 치운다는 자세로 서빙했다. 이런 것들이 변한 나의 모습이다. 스트레스라는 것이 내가 정의하고 내가 느끼는 거라면 그 통제권도 나에게 있었다.
 
초등학생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친구들 앞에서 엄마를 울린 적이 있었다. 어른을 놀릴 수 있다는 영웅 심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우쭐함과 철없음이 오래갈 순 없었다. 왜냐하면 그해 운동회가 열린 날 점심시간에 돗자리를 깔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엄마는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는 울며 운동장 밖으로 나가다 교문 돌계단에서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친구들 앞에서 엄마를 울린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내가 했던 그대로 엄마를 놀렸다. 내가 엄마를 울렸지만 친구들이 엄마를 울리는 건 싫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친구들 앞에서 엄마를 울린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내가 했던 그대로 엄마를 놀렸다. 내가 엄마를 울렸지만 친구들이 엄마를 울리는 건 싫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알고 보니 예전에 내가 엄마를 놀린 걸 봤던 친구들이 내가 했던 그대로 엄마를 놀렸던 것이다. 내가 엄마를 울렸지만 친구들이 엄마를 울리는 것은 싫었다. 부모가 놀림감이 됐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된 건 순전히 내 탓이라는 것을 어렸음에도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다짐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식이나 아내 앞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제지하거나 자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부모의 말을 자르면 자식도 그리할 테고, 내가 행동을 무시한다면 아내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부모를 존경하며 발과 손을 어루만진다면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내 직업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이것은 비단 부모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직업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보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말임에도 목소리와 태도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오듯이 세상의 모든 빛나는 것은 그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누군가의 행동과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원래부터 가치 있는 것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세상을 더 윤택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거라 믿는다.
 
식사 후 “잘 먹었습니다”하고 자리를 뜨는 손님의 테이블이 손도 안 댄 음식이 남아 있다면 그 잘 먹었습니다는 그냥 인사치레일 것이다. 하지만 인사를 안 해도 그릇을 싹싹 비우고 간다면 식당의 주인은 인사보다 더 큰 인사를 받는 셈이 된다.
 
스타서버 이효찬 starserving@eunha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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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찬 이효찬 스타서버 필진

[이효찬의 서빙신공] 사람들은 서빙을 가볍게 여긴다. 프랑스어 사전에서는 서빙을 ‘남을 돕다, 추진하다, 봉사하다’와 같은 긍정적인 정의가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음식점이나 카페 따위에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서빙신공’을 만들었다. 이 서빙신공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팁 문화도 생기길 바란다. 동료의 마음을 얻으면 진짜 파트너가 되어 주고, 손님의 마음을 얻으면 단골이 된다. 마음을 훔치는 진짜 서빙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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