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석좌 강좌차 방한한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스티븐 홀

스티븐 홀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은 건축물 ‘대양 역사관’. 건물 대다수 공간을 연못 아래 지하에 둔 것이 특징이다.

대양 역사관의 지상 공간. 스티븐 홀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가구·소품도 함께 디자인하거나 직접 골랐다. 사진 속 카페트 역시 그의 작품이다.

대양 역사관의 지상 공간. 스티븐 홀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가구·소품도 함께 디자인하거나 직접 골랐다. 사진 속 카페트 역시 그의 작품이다.
“DMZ, 자연경관 보존하고 난개발 막아야”

- 건물을 짓고 6년 만에 방한했다.
- “비행기 안에서 굉장히 조마조마했다. 공항에 도착해 성북동으로 오면서 내내 걱정했다. 혹시 건물이 엉망이 되지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장식과 화분 같은 것들이 마구 놓여 있으면 어떡하지, 하다못해 연못에 수경재배를 한다고 뭔가 가득 심어 놨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행복하다. 그대로다. 오히려 세월과 함께 더 좋아졌다(옆에 앉아 있던 건축주는 “주변 사람들한테 집주인은 스티븐 홀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늘 일만 하다 완공식 때 축하 인사 하러 와서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비행기 타고 돌아가는 게 건축가의 일상이다. 건축물을 지어 놓고 찬찬히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어제 아침에 혼자 이곳에서 3시간을 보냈다. 건물의 디테일이 멋지지 않나. 이곳은 내게 유토피아다.”

- 프로젝트마다 이런 디테일의 완성도를 갖추기 어렵지 않나.
- “아주 세심하게 신경쓰고 집중하고 열정을 더해야 디테일을 완성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함께해야 건축이 완성된다. 파인 레스토랑과 비슷하다. 재료를 잘 골라야 하고, 음식 담을 그릇도 신경써야 하고, 좋은 레시피는 기본이고, 요리사의 경험도 중요하다.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종합예술로서의 건축물이 없는 것 같다. 경제적인 것, 비용만 따지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 비싼 건축물을 짓는 것은 소수만이 할 수 있지 않나.
-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싸면 나쁜 건축이 지어지고, 비싸야 좋은 건축이 지어진다는 것 정말 오해다. 더 나은 건축물을 고민하지 못하게 하는 편견 중 하나다. 내 프로젝트 중 서울의 형편없이 지어진 건물과 공사비가 비슷한 건물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다. 무작정 비용만 따지다가는 질 나쁜 빌딩이 지어지기 십상이다.”
- 한국의 건축환경은 어떤가.
- “한ㆍ중ㆍ일을 놓고 보면, 한국과 일본에는 장인도 있고 장인 정신도 있다. 그런데 중국은 찾기 힘들다. 중국에서 이 건물을 지었다면 이렇게 짓지 못했을 거다. 장인 정신과 장인들은 한국 건축의 잠재력이다. 특히 한국은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가장 통일에 근접한, 긍정적인 순간에 와 있는 것 같다. 통일이 된다면 DMZ의 환상적이면서 거대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놀라운 야생의 공간을 금광 개발하듯 덤비는 개발자들한테 내줘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짓더라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존중한 건축물이어야 하고, 마스터플랜을 반드시 짜야 한다.”

미국 MIT의 기숙사 ‘시몬스홀’.
- 통일 이슈와 함께 DMZ 접경지들의 땅값이 이미 치솟았다.
- “DMZ의 경관 보존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만큼은 정치와 분리시켰으면 좋겠다. 다닥다닥 붙은 고층건물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로에 그림자가 져서 보행 환경을 망친다. 뉴욕의 현재가 그렇다. 웃기고, 슬픈 일이고, 한마디로 비극이다. 휴먼 스케일을 살린 도시 환경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성북동의 환경도 좋다. 높은 건물이 없고 빛ㆍ바람이 잘 통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미국 MIT의 기숙사 ‘시몬스홀’.
늘 스케치북 들고 다녀 지금까지 4만장 넘게 아이디어 스케치

특이한 것은 건축물뿐 아니라 가구와 카펫같은 소품도 그렸다는 것. 대양 역사관에도 그가 디자인하거나 고른 가구가 배치됐다. 카페트의 경우 전부 디자인했다.

스케치를 토대로 만드는 스티븐 홀 건축의 조형성은 정평이 나 있다. 핀란드 헬싱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의 경우 직사각형과 원뿔 같은 곡선 공간을 겹쳐놨다. 내부에서 직선과 곡선의 공간이 얽히는 모습이 극적이다. 미국 MIT 기숙사 ‘시몬스 홀’은 기하학적인 사각형 건물에 허파같이 동그란 개구부 5개를 뚫어 실내로 빛이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걸어다니면서 빛이 가득한 곡선의 공용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공간에서 움직일 때 느껴지는 감각, 신체적인 경험 그 모든 것이 건축이고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스티븐 홀 아키텍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