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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만 따지다 질 나쁜 건축물 짓는 게 요즘 건축"

중앙선데이 2018.11.03 02:00 608호 20면 지면보기
숭실대 석좌 강좌차 방한한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스티븐 홀
스티븐 홀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은 건축물 ‘대양 역사관’. 건물 대다수 공간을 연못 아래 지하에 둔 것이 특징이다.

스티븐 홀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은 건축물 ‘대양 역사관’. 건물 대다수 공간을 연못 아래 지하에 둔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1일 숭실대 한경직기념관 앞은 아이돌 그룹 공연장을 방불케했다.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Steven Holl·71)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때문이었다. “2000명이 넘게 와서 다른 강의실에서 스크린으로 강연을 들을 수 있게 했다”고 대학 측은 전했다. ‘스티븐 홀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6회 석좌 강좌였다. ‘미국 최고의 건축가’(2001년 타임지)라는 수식어는 화려한 그의 수상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다. ‘뉴욕 건축 명예상’(2002년 미국 건축가 협회), ‘AIA 골드 메달’(2012년 미국 건축가 협회) 등을 수상하고 현재 콜럼비아대에서 종신교수로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티븐 홀의 건물은 형태가 강하다. 육각형ㆍ원뿔 같은 도형들이 마구 중첩된 모양새다. 공간 안에 들어섰을 때의 감성 전달이 그의 주특기다. “건축은 체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현상학적 건축론’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윈스턴 처칠이 오래전에 이야기했듯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며 “기쁨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건축물을 지어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 다음날 중앙SUNDAY S매거진이 서울 성북동에서 그를 만났다.
 
대양 역사관의 지상 공간. 스티븐 홀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가구·소품도 함께 디자인하거나 직접 골랐다. 사진 속 카페트 역시 그의 작품이다.

대양 역사관의 지상 공간. 스티븐 홀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가구·소품도 함께 디자인하거나 직접 골랐다. 사진 속 카페트 역시 그의 작품이다.

성북동에는 스티븐 홀이 지은 국내 유일의 건축물이 있다. 2012년 완공한, 대양상선이 회사 역사관 겸 아트홀로 쓰고 있는 ‘대양 역사관’이다. 물이 파랗게 차 있는 연못 위로 붉은 동판 건물 세 채가 뚫고 나와 있다. 대지는 넓지만(1760㎡), 건물은 작다. 물의 공간과 함께 잘 자란 잔디가 눈에 더 들어온다. 건물의 대다수 공간을 연못 아래, 즉 지하에 뒀다. 건축주인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은 “밖은 평화롭고 한가해 보이지만 모든 기능적인 공간은 지하에 들어가 있다”며 “지하가 암반이어서 깨는데만 6개월 걸렸고, 하도 어마어마하게 파니까 동네에서 지하에 아방궁을 짓는다고 고발도 당했었다”며 웃었다.  
 
대양 역사관의 지상 공간. 스티븐 홀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가구·소품도 함께 디자인하거나 직접 골랐다. 사진 속 카페트 역시 그의 작품이다.

대양 역사관의 지상 공간. 스티븐 홀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가구·소품도 함께 디자인하거나 직접 골랐다. 사진 속 카페트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존 케이지의 책 『악보들(Notations)』중 작곡가 이스트반 안홀트의 악보 ‘심포니 오브 모듈스(Symphony of Modules)’에서 힌트를 얻었다. 너무 난해해서 한 번도 연주된 적 없다는 악보의 모양새를 건축물로 구현했다. 형태와 직관을 중시하는 스티븐 홀다운 건축작법이었다.  
 
“DMZ, 자연경관 보존하고 난개발 막아야”
건물을 짓고 6년 만에 방한했다.  
“비행기 안에서 굉장히 조마조마했다. 공항에 도착해 성북동으로 오면서 내내 걱정했다. 혹시 건물이 엉망이 되지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장식과 화분 같은 것들이 마구 놓여 있으면 어떡하지, 하다못해 연못에 수경재배를 한다고 뭔가 가득 심어 놨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행복하다. 그대로다. 오히려 세월과 함께 더 좋아졌다(옆에 앉아 있던 건축주는 “주변 사람들한테  집주인은 스티븐 홀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늘 일만 하다 완공식 때 축하 인사 하러 와서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비행기 타고 돌아가는 게 건축가의 일상이다. 건축물을 지어 놓고 찬찬히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어제 아침에 혼자 이곳에서 3시간을 보냈다. 건물의 디테일이 멋지지 않나. 이곳은 내게 유토피아다.”  
 
프로젝트마다 이런 디테일의 완성도를 갖추기 어렵지 않나.  
“아주 세심하게 신경쓰고 집중하고 열정을 더해야 디테일을 완성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함께해야 건축이 완성된다. 파인 레스토랑과 비슷하다. 재료를 잘 골라야 하고, 음식 담을 그릇도 신경써야 하고, 좋은 레시피는 기본이고, 요리사의 경험도 중요하다.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종합예술로서의 건축물이 없는 것 같다. 경제적인 것, 비용만 따지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비싼 건축물을 짓는 것은 소수만이 할 수 있지 않나.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싸면 나쁜 건축이 지어지고, 비싸야 좋은 건축이 지어진다는 것 정말 오해다. 더 나은 건축물을 고민하지 못하게 하는 편견 중 하나다. 내 프로젝트 중 서울의 형편없이 지어진 건물과 공사비가 비슷한 건물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다. 무작정 비용만 따지다가는 질 나쁜 빌딩이 지어지기 십상이다.”
 
한국의 건축환경은 어떤가.  
“한ㆍ중ㆍ일을 놓고 보면, 한국과 일본에는 장인도 있고 장인 정신도 있다. 그런데 중국은 찾기 힘들다. 중국에서 이 건물을 지었다면 이렇게 짓지 못했을 거다. 장인 정신과 장인들은 한국 건축의 잠재력이다. 특히 한국은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가장 통일에 근접한, 긍정적인 순간에 와 있는 것 같다. 통일이 된다면 DMZ의 환상적이면서 거대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놀라운 야생의 공간을 금광 개발하듯 덤비는 개발자들한테 내줘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짓더라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존중한 건축물이어야 하고, 마스터플랜을 반드시 짜야 한다.”  
 
미국 MIT의 기숙사 ‘시몬스홀’.

미국 MIT의 기숙사 ‘시몬스홀’.

통일 이슈와 함께 DMZ 접경지들의 땅값이 이미 치솟았다.
“DMZ의 경관 보존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만큼은 정치와 분리시켰으면 좋겠다. 다닥다닥 붙은 고층건물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로에 그림자가 져서 보행 환경을 망친다. 뉴욕의 현재가 그렇다. 웃기고, 슬픈 일이고, 한마디로 비극이다. 휴먼 스케일을 살린 도시 환경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성북동의 환경도 좋다. 높은 건물이 없고 빛ㆍ바람이 잘 통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미국 MIT의 기숙사 ‘시몬스홀’.

미국 MIT의 기숙사 ‘시몬스홀’.

늘 스케치북 들고 다녀 지금까지 4만장 넘게 아이디어 스케치  
스티븐 홀은 ‘비밀 무기’라 불리는 스케치북을 늘 들고 다닌다. 가로 7인치, 세로 5인치짜리 작은 스케치북에는 지어지고 있는 혹은 계획 중인 프로젝트 관련 그림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미국 플로리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세계 곳곳의 건축 프로젝트가 담겼다. 같은 프로젝트라도 스케치북을 넘기면 매번 다른 그림이 나왔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스케치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다. 휴대용 팔레트 안에는 수채 물감과 작은 붓이 들어있다.
 
특이한 것은 건축물뿐 아니라 가구와 카펫같은 소품도 그렸다는 것. 대양 역사관에도 그가 디자인하거나 고른 가구가 배치됐다. 카페트의 경우 전부 디자인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 이동할 때도 휙휙 그립니다. 쉬지 않죠. 이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고, 지금까지 4만 장 이상의 스케치를 했습니다. 누군가 ‘지금까지 한 프로젝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이 스케치북 안에 있다’고 답합니다. 이 안에서 뭐든 그릴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죠. 하하하.”  
 
스케치를 토대로 만드는 스티븐 홀 건축의 조형성은 정평이 나 있다. 핀란드 헬싱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의 경우 직사각형과 원뿔 같은 곡선 공간을 겹쳐놨다. 내부에서 직선과 곡선의 공간이 얽히는 모습이 극적이다. 미국 MIT 기숙사 ‘시몬스 홀’은 기하학적인 사각형 건물에 허파같이 동그란 개구부 5개를 뚫어 실내로 빛이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걸어다니면서 빛이 가득한 곡선의 공용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공간에서 움직일 때 느껴지는 감각, 신체적인 경험 그 모든 것이 건축이고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스티븐 홀 아키텍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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