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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놀면서 돈 벌수 있는 고부가가치 직업이죠"

중앙일보 2018.11.02 11:00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33)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목공전시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마추어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의 작품이 많았다. 늘어난 여가에 취미로 목공을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그 열기를 눈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숭그리당당’ 춤으로 유명한 개그맨 김정렬 씨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미 아마추어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데도 “목공은 평생 배워야 하는 것으로 지금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직장인이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취미로 배우다가 퇴직 후 직업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
 
목공전시회에 출품된 아마추어 목공인의 작품들. 아래 작품이 500년 된 주목으로 만든 콘솔로, 개그맨 김정렬 씨의 작품이다. [사진 박용환, 김정렬 제공]

목공전시회에 출품된 아마추어 목공인의 작품들. 아래 작품이 500년 된 주목으로 만든 콘솔로, 개그맨 김정렬 씨의 작품이다. [사진 박용환, 김정렬 제공]

 
전시회에 다녀온 후 목공에 관해 관심이 높아졌다. 책도 몇 권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관련 스토리를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목공 관련 다양한 취미생활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작게는 인테리어 소품 제작부터 크게는 집 짓기까지. 대부분 한목소리로 퇴직 이후엔 작게라도 공방 하나 꾸며 놓고 취미로든 직업으로든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지인과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사업 실패 후 목수가 되었다고 했다. 순간 ‘사업실패’와 ‘목수’라는 단어에 동정심이 일었다. 그러나 곧 강한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들려주는 근황과 보여주는 몇장의 사진 속에 행복감이 듬뿍 묻어나왔다.
 
그의 SNS 프로필에는 ‘행복한 하루를 산다면 행복한 인생이 된다’라는 문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5년 차 목수 김학도(43) 씨의 예사롭지 않은 변신 스토리를 들어봤다.
 
사업 실패 후 인생의 밑바닥에서 목수로 재기해 성공한 김학도 씨. '행복한 하루'의 중요성을 만끽하고 있단다. [사진 이상원]

사업 실패 후 인생의 밑바닥에서 목수로 재기해 성공한 김학도 씨. '행복한 하루'의 중요성을 만끽하고 있단다. [사진 이상원]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볼게요. 어떻게 목수가 된 거예요? 
생수 관련 사업을 벌이다 실패해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 인력시장을 통해 막노동했는데 고급주택 공사현장에서 인테리어 목수들이 일하는 걸 넋을 놓고 쳐다봤어요. 가슴이 뛰더라고요.

책임자처럼 보이는 분께 다가가 나도 이 일을 배워볼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연락처 남기고 가라고 하더군요. 6개월 후에 연락이 와 “나이가 많기는 한데 심부름부터 배워보겠냐”고 해 당장 하겠다고 했죠. 그분의 제자가 돼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어요.
 
목수들이 일하는 걸 보면서 왜 가슴이 뛴 거죠?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시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전문대학 기계과를 졸업하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고요. 지금도 자동차 한 대를 분해했다 조립했다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뭔가 내 손으로 만져서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목수가 일하는 현장의 소리, 냄새, 분위기 등이 다 좋더라고요. 처음 느껴 본 감정이었어요. 연락을 기다리면서 고민해 봤어요. 내 재능이 뭔지. 앞으로 뭘 해야 다시는 실패하지 않고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목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지요. 그런데 나름대로는 큰맘 먹고 결심은 했는데 막상 연락이 오지 않으니까 아주 힘들더라고요.

가구공장 같은 곳에서 일도 하고 그랬어요. 배워보겠냐는 연락을 받고 표현하기 힘들 만큼 기뻤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목수로 자리를 잡고 나니까 형이 그러더라고요. 할아버지께서 대목장(큰 건축일 및 그 일을 잘하는 목수)이셨다고요.
 
연락을 받고 나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목수가 된 거죠?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현장에 나가 심부름부터 하는 거였죠. 단순 심부름이지만 쉽지 않았어요. 용어도 모르지, 작업공정도 모르지. 엄청 헤맬 수밖에 없었어요. 혼나기도 많이 혼났죠. 그런데 신기한 건 아무리 혼나도 힘든 줄은 몰랐어요. 몸은 힘들지만 배우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게 일했어요.

학교 선생님처럼 누가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눈치껏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어요. 버티면 경험이 쌓일 것이라고 확신했죠. 20대 중반 정비공으로 일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생각해 보니 그때도 참 재미있고 행복하게 일을 했는데 가정 형편으로 돈이 필요해 그만두고 자동차 영업을 했죠.
 
공사현장에서 목공 작업 중인 김학도 씨. 현장의 나무 냄새, 소리, 분위기 모든 게 좋다고 하니 뒤늦게 찾은 천직이다. [사진 이상원]

공사현장에서 목공 작업 중인 김학도 씨. 현장의 나무 냄새, 소리, 분위기 모든 게 좋다고 하니 뒤늦게 찾은 천직이다. [사진 이상원]

 
보수는 어떤가요. 아무리 재미있어도 일은 일이니까 대우도 중요하잖아요. 나이도 있고.
처음에는 일당 8만원을 받고 일했습니다. 삼십 대 후반 나이에 많은 보수는 아니지만 돈 받고 일을 배운다는 것에 의의를 뒀지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주택 인테리어 목공 일은 한 번 공사 시작하면 몇 개월씩은 안정적으로 일이 보장되니까요.

그래도 빚도 갚아야 하고 먹고도 살아야 해서 새벽에 골프연습장에서 공 치우는 일을 함께했습니다. 하루 3~4시간 자면서 투잡을 3년 넘게 했네요. 지금은 연봉으로 치면 5000만~6000만 원 정도 받습니다. 팀을 짜서 책임지고 공사를 리드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연 1억 원은 훌쩍 넘는 정도가 됩니다.
 
경제적인 면 외에 목수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은 또 뭐가 있나요?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하면 오후 5시에 퇴근합니다. 이후는 모두 내 자유 시간이죠. 나는 집 근처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 목공과 가죽공예 작품활동을 합니다. 인테리어 소품부터 생필품까지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고는 합니다. 받고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또 하나의 보람이지요.

나중에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판매도 할 생각입니다. 수공예품 판매가 아주 고부가가치 사업이 될 수 있거든요. 한 마디로 목수일은 저에게 재미있는 놀이에요. 재미있게 놀고 일하면서 돈도 버는 일이죠.
 
김학도 씨가 완성한 인테리어 작품. [사진 이상원]

김학도 씨가 완성한 인테리어 작품. [사진 이상원]

 
요즘 목공이라는 취미에 혹은 목수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입문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도움이 될 만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렇죠. 직업전문학교가 한두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교 나왔다고 현장에서 바로 인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맨땅에 헤딩할 각오는 해야지요. 의외로 많은 사람이 쉽게 도전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처음에는 돈도 괜찮게 벌 수 있는 전문직이라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막상 해 보니 몸은 힘들고 일은 없고 일당도 적으니까요.

최소한 3년 정도는 묵묵하게 기술·체력·정신력을 갖춰나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목수라는 직업 말고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최근에 목공이나 가죽공예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준비 중인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나는 누구를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어 도움이 될 만한 매뉴얼 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노력은 필요하지만 쓸데없는 헛고생은 줄이면 좋잖아요.
 
정비공, 영업, 사업을 거쳐 제2의 인생을 목수로 시작했는데요. 인생 환승을 준비 중인 중년에게 목수를 추천한다면 어떤 점이 가장 큰 장점일까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더라도 목공은 절대 없어질 수 없는 분야입니다. 나만 잘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있고요.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중년들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해 주고 싶은 일입니다.
 
앞으로 꿈은 뭔가요?
내 손으로 지은 집에서 평화롭게 살면서 작품활동 하고, 틈틈이 재능기부로 독거노인 집 고쳐주면서 살 겁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확실하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깨달았어요. 사업실패 전에는 미래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어요. 사업에 실패한 것도 미래를 향한 욕심 때문이었죠. 지금은 하루하루 행복한 삶, 자유롭고 평화로운 저녁의 행복을 위해 삽니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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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필진

[이상원의 소소리더십]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며 성공보다 성장이 행복의 열쇠임을 알았다. 소탈한 사람들의 소박한 성공 스토리 속에서 그들의 성장을 이끈 소소한 리더십을 발견해서 알리는 보람을 즐긴다. “애송이(이탈리아어로 ‘밤비노’)들의 성장을 돕는다”라는 비전으로 ‘밤비노컴퍼니’를 운영 중이다. ‘몸을 바꾸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뀐’ 성장스토리를 담은 『몸이 전부다』를 출간(2017년)했다. 학교, 군부대, 기업 등에서 ‘성장의 기회와 비결’에 대해 강연을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연습을 통한 실력축적과 함께 생각, 말, 행동 등의 좋은 습관으로 키워지는 셀프이미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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