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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실리외교로 가는 출발점

중앙일보 2018.11.01 00:2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지난달 22~25일(현지시간) 중국의 왕치산 국가 부주석이 이스라엘을 찾았다. 2000년 장쩌민 주석 이후 18년 만의 중국 지도자 방문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친분이 깊고, 이스라엘은 중국과 악화일로인 미국의 사실상 동맹이다.  
 
이런 두 나라가 최근 부쩍 가까워졌다. 이유는 경제다. 중국은 ‘중동의 실리콘밸리’인 이스라엘이 가진 첨단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동행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적의 동맹과도 친구가 되는 현실을 분명히 보여준 대목이다.  
 
지난달 25~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중은 실리외교의 정점이다. 역사·영토·군사 문제를 두고 으르렁대던 두 나라가 미국의 공세 앞에 손을 잡았다. 바야흐로 세계는 ‘실리’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우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우리 외교는 이런 트렌드에서 좀 떨어져 있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방문한 나라들에 가장 우선적으로 북한 제재 완화를 요청했다.  
 
마치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식이 정학 처분을 받자 “우리 애가 지금껏 잘못도 했지만 이제는 잘하겠다고 하니 학교에 복귀시켜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학부모 같다. 대북 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일은 한국엔 명분일 뿐 아니라 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조차 문 대통령의 면전에서 ‘노’를 외쳤다. 최근 한국을 찾은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보의 행보는 “앞서 나가는 우리 정부에 ‘미국에 보조를 맞추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맹들조차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주장에서 물러섬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가 실리는 물론 명분도 챙기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지금껏 북한에 취해 오던 방향을 급선회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출발점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결국은 우리 편을 늘려가는 것밖에 없다. 현재 북핵 위협에서 우리와 이해가 일치하는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양국 관계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투 트랙’이 지금이야말로 절실히 필요하다.  
 
이원덕(국민대) 교수의 “미국과 중국은 우리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강대국이다. 일본은 북핵을 느끼는 불안, 북핵이 없어질 경우 누리는 경제적 혜택 면에서 우리와 이해가 일치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외교 공간이 가장 넓은 나라는 일본”이라는 말을 되새겨 볼 때다.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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