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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전두환 사기극’ 낙인 위에 추진되는 남북 물길 잇기

중앙일보 2018.11.01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금강산 관광 연계 꿈꾸는 평화의댐
평화의댐 전경. 최근 하류쪽 사면(斜面)을 시멘트로 바르는 보강 공사를 마친 뒤 관광용 초대형 벽화까지 그렸다. [사진 한국수자원공사]

평화의댐 전경. 최근 하류쪽 사면(斜面)을 시멘트로 바르는 보강 공사를 마친 뒤 관광용 초대형 벽화까지 그렸다. [사진 한국수자원공사]

과속 논란도 없지 않지만 남북경제협력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항로·해로·철도·도로연결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내륙 물길이라고 빠질 수 있을까. 특히 남북 사이에 8개 하천이 흐르는 강원도에서는 물길 개통과 함께 공유 하천 이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평화의댐과 금강산댐 사이 물길을 연결해 내금강 관광에 이용하자는 ‘평화 물길’ 사업 구상이 대표적이다. 남북 대치의 상징이었던 두 댐이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는 셈이다. ‘사기극’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세워진 평화의댐이 이 구상의 핵심을 맡고 있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강원도·화천군 ‘평화 물길’ 구상
"금강산댐까지 유람선 타고 이동”

YS 시절 ‘북 수공 위협 과장’ 딱지
DJ 땐 필요성 인정돼 증축 ‘반전’

하천 이용 남북 협력 기대 높지만
정치·안보·환경 등 난제 만만찮아

 
단풍이 무르익은 해산령 ‘아흔아홉 굽이’ 길을 지나자 거대한 댐이 나타났다. 길이 601m, 높이 125m. 댐 마루로 난 도로를 달리며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댐 아래쪽 아득히 파로호로 이어지는 북한강이 흘러간다. 왼쪽으로는 북한 금강산댐(북한명 임남댐)으로 이어진 물길이 보인다. 댐을 가득 채우면 충주호와 맞먹는 26억3000톤의 저수량이 되지만 수위는 바닥 수준이다. 혹시 모를 금강산댐(최대저수량 26억2000만톤)의 사고를 대비해서다.
 
평화의댐이 궁금해진 것은 두 개의 기사 때문이었다. 하나는 “13년 전 오늘, ‘대국민 사기’ 전두환표 평화의 댐 완공”. 2005년 10월 19일 평화의댐 2단계(증축) 공사 준공식을 ‘오늘의 역사’로 소개한 기사였다. 또 하나는 “평화의댐~북 내금강 평화물길 관광 개발”. 평화의댐에서 금강산댐까지 물길을 이어 금강산 내륙관광 루트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기사였다.
 
평화의댐 주변에서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족. [화천군청]

평화의댐 주변에서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족. [화천군청]

‘평화의댐 사기극’은 익히 알던 바다. “1986년 10월, 북한이 금강산댐 착공을 발표했다. 최대 저수량은 소양호의 7배 가까운 200억톤으로 추정됐다. 북한의 수공(水攻) 가능성이 대두했다. TV와 방송은 서울의 3분의 1이 잠기고, 63빌딩 허리까지 물이 차는 ‘충격적 그래픽’을 내보냈다. 국민 성금 모금 운동이 전개됐고, 세금까지 투입돼 88년 5월 1단계 대응 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93년 김영삼 정부 감사원은 ‘수공 위협은 과장됐으며, 시국 안정과 국면 전환을 위해 전두환 정부가 주도한 사기극’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이야기 뒤에는 반전이 있다. 1996년과 99년 경기·강원 지역 집중 호우가 쏟아졌을 때 평화의댐은 제대로 역할을 했다. 2002년 1월에는 혹시나 하는 일이 진짜 벌어졌다. 금강산댐에서 19일 동안 3억4000만톤의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해보니 금강산댐 본댐에 두 군데 함몰이 확인됐다. 댐 붕괴를 우려한 북한이 수압을 낮출 목적으로 물을 빼낸 것으로 추측됐다. 의도적 수공은 아니었지만, 북한의 토목 기술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되고, 결국 평화의댐 증축이 결정됐다. 1단계 공사로 80m를 쌓은 채 ‘사기극’ 오명을 쓰고 방치돼 있던 댐을 125m로 높이기로 했다. 공사비는 1단계 공사비의 1.6배가량인 2489억원. 김대중 정부 시절 일이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평화의댐에 이번에는 ‘평화 물길’ 구상이 무르익고 있다. 평화의댐에서 금강산댐까지 36㎞ 물길을 유람선으로 이동한 뒤 내금강까지 45㎞를 육로로 이동하는 루트다. 내금강 관광을 마친 뒤에는 육로를 이용해 양구 쪽으로 내려오면서 DMZ 생태 관광과 연계하겠다는 것이 강원도가 밝힌 구상이다. 화천군의 기대는 더욱 크다. 출발지를 아예 파로호로 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물길 중간에 평화의댐으로 배를 올리는 과정이 난제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게 화천군의 생각이다. 현장에서 만난 신광태 화천군 관광정책과장은 “군사시설과 수자원 보호 관련 규제로 꽁꽁 묶인 화천군에 새로운 명물 관광 루트가 생기면 지역 경제에 큰 활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와 화천군은 각각 3억원과 2억원의 용역비를 들여 사업성 검토에 들어갔다. 강원도의 최문순 지사와 화천군의 최문순 군수(공교롭게 이름이 같다)는 소속당은 다르지만 이 문제만큼은 긴밀히 협조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평화 물길의 효과는 관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북한은 2003년 금강산댐 완공 후 물을 남쪽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북쪽으로 되돌리고 있다. 길이 45㎞의 터널을 통해 동해안 원산 쪽으로 물을 흘려보내 수력 발전에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연간 17억톤가량 줄어들면서 북한강 상류 수질이 나빠지고 수력 발전에도 차질이 생겼다. 화천 토박이인 신광태 과장은 “어릴 적 파로호에는 모래무지와 민물새우가 흔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강을 따라 연이어 있는 5개의 발전용 댐 전력 생산도 19%가량 줄었다. 북한이 물을 흘려보내 주면, 현재 물막이에 그치는 평화의댐을 다목적댐으로 개조해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북쪽에 보내준다는 기본 구상이다.
 
북한의 수공 위협이 과장된 배경에는 금강산댐 저수량 추정 오류가 있었다. 북한이 밝힌 금강산댐 전력 생산 목표 80만㎾를 근거로 한 국토부 공무원이 급하게 역산해보니 200억톤이 나왔다는 일화다. 비현실적으로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5공 정부는 대국민 선전에 그대로 이용했다. 댐 관리 정보가 공유되면 이런 해프닝은 없어질 것이란 희망도 있다.
 
그러나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은 해산령 아흔아홉 굽이만큼 많다. 우선 물길을 트려면 평화의댐에 물을 채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안보 용도가 사라져 버린다. 보수 진영에서 반발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강원도와 화천군의 짝사랑에 그치고 만다. 평화의댐에 물을 채우면 북한 지역에 대형 수몰 지역이 생긴다. 이 지역에 밀집한 북한 군부대를 옮겨야 하는 문제가 있다. DMZ 내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남북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요원한 사업이다. 평화의댐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 화천권지사 김수근 지사장은 “평화의댐을 다목적댐으로 개조하는 일 자체는 기술적으로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라고 말했다.
 
평화의댐은 ‘산천어 축제’와 함께 화천군의 주요 관광자원이다. 한해 20만명이 찾는다. 댐 주변엔 비목공원, 평화의 종 공원 등이 조성돼 있고, 주변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나 자전거 코스로도 인기 있다. 댐은 지금도 정비 중이다. 큰 홍수로 댐에 물이 넘칠 때 하류 쪽 사면(斜面)이 쓸려나가지 않도록 시멘트로 덮는 공사가 최근 마무리됐다. 현장을 안내한 수자원공사 박주범 차장은 “관광객 중에는 주변 경관에 감탄하다가도 ‘왜 이런 곳에 쓸데없는 댐을 만들었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고 말했다. 김수근 지사장은 “세간의 5공 평가와 겹쳐지면서 평화의댐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이 불식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두환 사기극’과 ‘평화 물길’은 얼핏 아이러니다. 역사는 가끔 이런 아이러니 위에서 펼쳐진다. 어디, 평화의댐만 그러겠는가.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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