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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달려오는 차와 아찔한 동행, 이게 순례길인가

중앙일보 2018.10.31 1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5)
집 앞에 인도는 커녕 갓길도 없다. 자기 집 대문에 등을 딱 붙이고 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주민을 보고 나면 지나는 객은 감히 길이 없다고 불평할 수 없게 된다. [사진 박재희]

집 앞에 인도는 커녕 갓길도 없다. 자기 집 대문에 등을 딱 붙이고 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주민을 보고 나면 지나는 객은 감히 길이 없다고 불평할 수 없게 된다. [사진 박재희]

 
‘길이면 그냥 길인 거지 자동차 다니는 길, 사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야 해?’ 뭐 이런 식이다. 인도는커녕 갓길도 없는 엄연한 차도를 향해 순례길 표식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자동차 전용도로의 차선을 따라 걸으라니 서커스단 외줄 타기 훈련도 아니고 상상초월 까미노가 아닌가?
 
2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에 트롤리와 자동차가 질주하듯 다닌다. 갓길도 없는 차선이 순례길이다. [사진 박재희]

2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에 트롤리와 자동차가 질주하듯 다닌다. 갓길도 없는 차선이 순례길이다. [사진 박재희]

 
멀리서부터 차가 보일라치면 나는 워킹 스틱을 번쩍 들어 올려 항복 혹은 SOS 신호를 보내며 인사를 했다. 마을 운전자들은 속도를 늦춰주기도 하고 손을 들어 화답도 해주더니 산업도로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마치 오늘 생애 최고속도에 도전하는 사람들처럼 열정적이다. 경주하듯 달리겠다고 서약한 차량에만 통행을 허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통조림용 토마토를 재배하는 밭이 너르게 펼쳐진 길을 잠시 지났다. 토마토를 가득 실은 트럭은 유일하게 위협적이지 않은 큰 차라고 해야겠다. [사진 박재희]

통조림용 토마토를 재배하는 밭이 너르게 펼쳐진 길을 잠시 지났다. 토마토를 가득 실은 트럭은 유일하게 위협적이지 않은 큰 차라고 해야겠다. [사진 박재희]

 
물류센터와 시멘트 공장지대를 지나는 길이라 트롤리도 적지 않았다. 좁은 차도를 어째서 그리 질주하는 건지 큰 차들이 지나갈 때면 몸이 휘청거린다. 중심을 잃고 바퀴로 빨려 들어갈까 봐 아찔했다. 포르투갈 길에서는 중세시대 순례자 코스프레는커녕 로드킬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민첩한 보행자로 무장하지 않으면 객사를 면하기 힘들다.
 
자동차도로를 벗어났나 했더니 화살표가 기차역으로 향하며 철로 방향을 가리킨다. ‘뭐지? 설마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건 아닐 테고…’ 당황스러웠지만 고지식하게 화살표를 따라 철로를 엉금엉금 넘는데 날아드는 시선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전등만 하게 커진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곳곳에서 예술성 높은 그라피티에 눈이 간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미술, 예술은 아줄레주(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가 아니라 감히 그라피티라고 말하게 된다. [사진 박재희]

포르투갈 곳곳에서 예술성 높은 그라피티에 눈이 간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미술, 예술은 아줄레주(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가 아니라 감히 그라피티라고 말하게 된다. [사진 박재희]

 
“까민호 데 산티아고(Caminh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 중이라고 말하며 엉거주춤 멈춰선 나를 향해 몇몇 사람들이 커다란 무지개를 그리듯 팔을 젓는다. ‘아… 저건 또 무슨 뜻이란 말이냐.’ 난감했는데 어제 만난 필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희야, 저쪽에 계단이 있어. 위험하게 철로를 넘어가면 어떻게 해?” 지금 무모하고 한심하다고 혀를 차는 그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내 행동은 순례자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였음을 밝혀두려 한다. 내가 배운 것은 가장 정확한 이정표는 화살표이므로 순례자라면 의심하지 말고 화살표를 따르라는 원칙이었다.
 
엄연한 사실이었건만 믿음은 그날 깨졌다. 그날 이후로도 여러 번 기차 길로 향하라는 표식을 만났다. 화살표 방향을 따라 계단은커녕 때로는 길도 없었기에 번번이 길을 잃거나 헤매야 했다. 포르투갈 루트의 화살표는 방향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때때로 상상력과 추리를 해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는 기대마저 어긋나고 말았다.
 
솔직히 이번에는 가볍게 즐기면서 편하게 걸어보려 계획했었다. 처음 순례길을 걸으며 제일 절실했던 교훈은 ‘짐은 그냥 짐일 뿐’이라는 것이다. ‘버려야 하느니라, 버려야 사느니라’를 외치며 배낭 무게를 줄였던 생생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을 꼼꼼히 챙겨서 꽤 무거운 배낭을 꾸려온 데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
 
순례자 여권을 지닌 순례자에게는 15유로에 세탁서비스를 해 주는 숙소였다. 2층 침대가 아니며, 일반 수건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순례자의 자격이다. [사진 박재희]

순례자 여권을 지닌 순례자에게는 15유로에 세탁서비스를 해 주는 숙소였다. 2층 침대가 아니며, 일반 수건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순례자의 자격이다. [사진 박재희]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숙소에서 숙소로 배낭을 옮겨주는데 4-5유로 정도만 내면 가능했다. 프랑스길 까미노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번에는 나도 적당한 숙소를 예약해두고 배낭은 배달시키면서 가벼운 ‘걷기 여행’을 내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포르투갈 까미노 마을에 은행이 별로 없을 거라기에 평생 가장 많은 여행비용을 환전하여 두둑하게 현금 부자로 길을 시작한 이유였다. 얄궂은 운명이 포르투갈 도착 20시간 만에 나를 알거지로 만들고, 도난 크레딧 카드가 등록되었던 예약사이트를 이용할 수도 없게 만들 줄은 몰랐다.
 
게다가 믿었던 ‘가방배달 서비스’가 포르투갈 길에서는 되지 않는 구간이 더 많았고 있다 해도 수십 유로의 택시비용을 내야 했다. 프랑스 길보다 포르투갈 길의 순례자가 10분의 1도 되지 않으니 별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 나는 꼼짝없이 무거운 배낭을 그대로 짊어지고, 어디까지가 될지 모를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야 할 진짜 운명의 순례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늘은 ‘무작정 따라 걸으면 안 되는 화살표’ 마저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겠나?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인생처럼 마음먹은 대로 흘러주지 않는 것이 순례임을.
 
9월 중순의 열기로 녹을 듯했다. 순례자 마을 비야 프랑카 데 시라(Vila franca de xira). [사진 박재희]

9월 중순의 열기로 녹을 듯했다. 순례자 마을 비야 프랑카 데 시라(Vila franca de xira). [사진 박재희]

 
9월 중순이 가장 걷기 좋을 때라더니 이상기온으로 한낮은 36도가 넘었다. 2시부터는 살갗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온이라 마음먹고 서둘러 새벽에 숙소를 나왔다. 오늘은 점심때쯤 걷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해가 뜨기 전 하현달 꽁무니에 매달린 별을 바라보며 걸었다. 드디어 아찔하게 아름다운 일출이 시작되었다. 맑고 붉은 얼굴을 드러내며 해가 떠오르려는 순간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뭉클하기까지 했던 허전함, 그것은 일출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지!’ 헐레벌떡 시원한 기온이 무색하게 땀을 흘리며 뒤돌아 뛰어야 했다. 느림보가 새벽부터 허둥대며 서둘다가 신발장 옆에 워킹 스틱을 두고 나온 것이다. 몇 안 되는 순례자는 이미 모두 나간 듯했고 문은 닫혀있다. 열쇠는 반납했으니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크루아상과 에그타르트, 그리고 커피까지 2유로 40센트를 계산하고 나면 착하고 아름다운 가격에 번번이 감동하게 된다. [사진 박재희]

크루아상과 에그타르트, 그리고 커피까지 2유로 40센트를 계산하고 나면 착하고 아름다운 가격에 번번이 감동하게 된다. [사진 박재희]

 
“아무도 안 계세요? Anybody there?” 친절한 주인 여자 네테르시아를 떠올리며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내 텔레파시를 받은 이는 숙소 앞 카페 주인이었다. 문을 연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다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더 마셨을 때, 화장을 곱게 마친 네테르시아가 나타났다. 이미 해는 중천까지 떠올라 달구고 있었다.
 
다음은 짐작하시는 대로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열기에 살갗이 다 녹아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가끔 만져보며 걸었고 급기야 한 달 내내 비를 맞았던 프랑스길이 그리워 눈물이 났다. 쩔쩔 끓는 하늘을 이고 어마어마하게 지루한 산업지대를 건너는데 어디선가 헹크(Henk)가 나타났다. 그는 거짓말처럼 보냉통에 얼음물을 가지고 있다며 내게 건넸다. 잊고 있었다. 까미노에는 천사가 있다는 사실을!
 
맑고 붉은 해가 떠오르는데 그제야 뭉클하게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박재희]

맑고 붉은 해가 떠오르는데 그제야 뭉클하게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박재희]

 
까미노에는 천사가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헹크는 이번 까미노에서 처음 만난 천사다. 하루에 40km는 너끈히 걷는 헹크가 하필이면 오늘을 천천히 걷는 날로 정하고 내게 나타나 얼음물을 건네고 길동무가 되어주었으니.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만나고,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타나는 순례의 마법이 다시 떠올랐다. 식당은커녕 휴게소도 벤치도 하나 없는 길, 걷는 사람마저 없는 25km를 길가에서 와일드베리(wild berries)를 따서 건네주며 이끌어주는 헹크 덕에 죽지 않고 걸었다.
 
태어나서 가장 시원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람을 살리며, 울고 싶을 만큼 행복하게 해준 맥주를 마셨다. 38도가 넘는 열기에 갓길 없는 아스팔트 도로 25km를 걷고, 숙소를 찾아 다시 헤맨 후 마신 사그레스(Sagres)였다. 저녁으로 푸짐한 순례자 메뉴를 먹기 전에 맥주 두 병에 두 개의 에그타르트까지 해치우며 오늘 값진 교훈을 얻었음을 감사하기로 했다.
 
아침의 침착한 10분은 그날 10시간을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맥주는 죽도록 고생한 후에 마셔야 한다는 것.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고 나면 거의 시체였던 사람도 웃을 수 있다는 것. 관광객에게는 필요한 게 많지만 순례자에게는 무조건 감사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Tourist demands, Pilgrim thanks).
 
박재희 모모인컴퍼니 대표·『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저자 jaehee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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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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