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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창업가를 범죄자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날개 꺾인 세계 첫 크립토펀드

창업가를 범죄자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날개 꺾인 세계 첫 크립토펀드

중앙일보 2018.10.30 18:29
“금융위원회에서 연락 안 왔어요? 이래도 괜찮아요?”

“연락 못 받았는데요? 법률 자문받았는데 괜찮다고…. 연락 없는 거 보면 괜찮은가 보죠.”

 
지난달 13일, 한ㆍ중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에서 보도자료를 하나 보내왔다. 세계 최초의 펀드형 거래소 토큰 ‘ZXG 크립토펀드 1호’의 공모를 시작한단다.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해 보이지만, 해당 펀드를 기초로 발행된 토큰은 현금처럼 기능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이다. 암호화폐도 인정하지 않는 금융당국인데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펀드라니…. 금융당국이 곱게 볼 리 없을 것 같았다.  
 
지닉스의 홍보 담당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인드인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되레 공모를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투자자들 문의가 줄을 잇는다며 흥분했다. 1호 크립토 펀드는 1000이더(ETH)를 모았는데 12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1호 성공에 힘입어 지닉스 측은 지난 2일, 이달 말 2호 펀드 공모에 나선다고 밝혔다. 1호 기반으로 발행된 ZXG 토큰은 공모 당시보다 이날 현재 이더 기준으로 10배 가까이 상승했다. 흥행이나 성적 면에서 나무랄 게 없는 금융상품이다. 이렇게 금융 후진국인 이 땅에서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금융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암호화폐 펀드가 ‘메이드 인 코리아’ 태그를 달고 탄생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지난 18일 금융당국으로부터 소식이 들렸다. 유(有)소식은 나쁜 소식이었다. 금융당국이 지닉스에 대해 내부적으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암호화폐에 대해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고, 중개 역할을 하는 거래소가 직접 토큰을 제공하는 건 유사수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24일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가상통화 관련 투자자 유의사항’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가상통화펀드는 금감원에 등록된 사실이 없고, 투자설명서도 금감원 심사를 받은 사실이 없으며, 펀드 운용사ㆍ판매사 등도 금융위 인가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는 만큼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알렸다.

 
그리고 29일, 지닉스는 회사 홈페이지에 “금융당국이 위법의 여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암호화폐 상품 출시는 투자자들의 혼선과 규제당국의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ZXG 2호 상품 출시를 취소한다는 공지사항을 올렸다. 사실상 암호화폐 펀드 사업을 포기한 셈이다.

 
최경준 지닉스 대표. 출처: 지닉스

최경준 지닉스 대표. 출처: 지닉스

지닉스는 암호화폐 시장 후발 거래소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규제에 가상계좌 발급도 못 받았다. 원화 거래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거래소다. 암호화폐 펀드라는 ‘필살기’를 꺼냈지만 규제에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했다. 30일 최경준 지닉스 대표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거래소 오픈 당시 열의 넘쳤던 창업가의 패기는 사라지고 지친 듯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이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암호화폐) 거래소가 실명인증 및 자금세탁방지 장치를 갖추었다면 신규계좌 발급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한 언론사 주최 세미나에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만큼은 엄격히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법원은 은행이 금융위 가이드라인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의 입금을 막는 행위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원래 말랐다(웃음). 사실 힘들다. 직원이 30명쯤 된다. 나라도 ‘멘탈’ 잡고 있어야지. 웃지만 웃는 게 아니다. 내가 불안해 하면 다른 직원들은 어떻겠나.”

 
주말 중국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펀드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나. 무슨 얘기를 나눴나.
“투자자도 만나고 펀드 운용사도 만나고. 운용사 사람이 그러더라.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 줄 알고 한국서 펀드 출시한 건데 이런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서 할 걸, 하고.”

 
정부 규제가 없는 몰타 같은 곳으로 회사(지닉스)를 옮기면 다시 펀드를 출시할 수 있나.
“이미 (지닉스는) 찍혔다. 우리가 몰타로 옮긴들 한국에서 영업한다면 정부의 무언의 압박은 괘씸죄로 더 심해지지 않겠나.”

 
어제 거래소가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 가상계좌로 현금 입금할 수 있게 하라는 건데, 본격적으로 법리로 다퉈볼 만 하지 않나.
“처음 우리가 펀드 출시 전 로펌에 문의했을 때, 그쪽에서도 ‘문제될 소지가 적다’고 했다. 내가 순진했다. 법에 어긋나지 않고 사업성이 있으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더라. 정부랑 척지고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막말로 일부 변호사들은 법원서 붙으면 지닉스가 이길 거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긴들 뭐하나. 그간 투자자들은 불안해서 빠져나갈 거고, 그거 이기려고 드는 소송 비용만 수십 억이다. 그간 벌어둔 돈이 있으면 모를까 소송 비용 자체가 부담이다. 그리고 사실, 걸리면 걸리는 것 아니냐.”

 
걸리면 걸리다니?
“코인네스트 대표가 집행유예 받았다. 검찰 수사의 발단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의심 거래를 하는 거래소 몇 군데를 통보하면서다. 그걸 바탕으로 검찰이 나선 거고. 그런데 FIU가 불법이라고 통보한 사건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가 났다. 나도 법을 지키면서 사업한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법을 어긴 일이 있을 수 있지 않겠나.”

 
“가두리 펌핑은 두면서…‘펀드’라는 용어가 심기 건드렸나”
이상한 건 한 달 전과 지금이 달라진 게 뭔지…. 1호 펀드 내놨을 때는 뭐라 않더니 왜 2호 펀드 공모한다니까 금융당국이 나선 거냐.
“모르겠다. 막말로 펀드 존재를 몰랐다가 2호 때 알게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펀드’라는 용어가 금융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 사실 ‘마이닝(채굴)’이나 ‘가두리 펌핑(암호화폐의 입출금을 막아버린 상태에서 일어나는 거래소 자체의 시세 조작)’ 이라면 금융당국이 자기들 영역이라고 생각 안 한다. 그래서 더한 불법 거래소도 버젓이 영업하는지 모르겠고. 그런데 불법을 저지르는 녀석들(암호화폐 거래소)이 감히 ‘펀드’라는 이름을 쓴다고 불편해 한 건 아닐까. 아니면 다음달 발표되는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가이드라인이 부정적이라 미리 우리 같은 곳(지닉스)을 손 본 것일 수도 있고. 모르겠다. 무슨 의도인지. 금융위에서 전화 한 통 받은 적 없다.”

출처: 지닉스

출처: 지닉스

 
암호화폐 펀드가 일종의 새로운 수익원이었을 텐데, 이 상태로 거래소가 유지가 되나.
“솔직히 어렵다. 금융당국이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것 같다. 1월에 난리가 났을 때, 2월이면 가상계좌가 발급될 걸로 봤다. 그리고 2월 되면 3월, 3월 되면 4월엔 될 줄 알았다. 그러다 10월이 다 가고 있다. 원화 입금이 안 되니 돈을 못 번다. 올해 해외에서 투자금을 받으려 했는데 국내 송금이 안 돼 무산됐다.”

 
국내 거래소가 해외 송금 못 하게 하는 건 일견 이해가 간다. 해외로 돈이 나가는 거니. 그런데 이 경우엔 해외서 국내로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냐. 왜 못 하게 하냐.
“평소 친분이 있는 모 은행의 본부장님께 이 상황을 얘기했더니 본인이 알아보신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최 대표, 이건 안 되겠다’고 하더라. 만약 거래소와 관련해 해외 송금을 받으면 그 이후 그 거래소와 관련해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은 은행 본점이 아니라 해당 영업점의 대리ㆍ과장ㆍ지점장이 책임을 지는 구조라고 한다. 어떤 은행원이 그런 리스크 지고 우리랑 거래하겠나.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내 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이라도 그런 거래는 안 터 줄 것 같다. 그 어디에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없는데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면 안 되는 게 지금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선 정직하게 장사하는 곳만 죽어난다. 협회에 가입한 거래소는 규제를 지키려고 한 곳인데, 협회 명단이 은행으로 넘어가 되레 블랙리스트가 돼 버린다.”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나.  
“후회하지 않는다. 상황은 힘들지만 이 시장은 분명히 간다. 난 블록체인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혁명을 일으킬 거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토큰이다. 모든 자산을 토큰을 통해 유동화할 수 있다. 금이 7000조 규모이고, 주식ㆍ채권이 몇십 경 되는 시장이다. 이게 모두 토큰의 형태로 바뀔 거다. 거대한 금융혁신이다.”

 
“블록체인보다 토큰...‘DO NO HARM’ 원칙으로 싹 밟지 말기를”
소위 ‘증권형 토큰’을 말하는 것이냐.
“에셋(asset) 토큰이라고 하면 더 쉽게 와 닿겠다. 이제는 작은 자산도 토큰을 통해 유동화하고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10억 짜리 그림이 있다고 치자. 작가들이 자기 그림 팔기 싫어하는데 그건 내 새끼 같은 작품이 누구 손을 거쳐서 어느 부잣집 방구석에 처박힐 까봐 하는 두려움이 있어서다. 돈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작품을 누구의 전유물로 만들기 싫은 거지. 그림의 토큰화를 시도하는 팀이 이미 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곳(경매회사)과 협약을 맺고, 그림의 토큰화를 진행한다. 10억 짜리 그림을 1000개의 토큰으로 나눠, 작가가 100만 원짜리 토큰을 300개 갖고, 나머지 700개를 시장에 파는 거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100만원 단위로 그 토큰을 살 수 있다. 작품 전시를 통해 받는 대여료는 토큰 보유자들이 배당 개념으로 나눠 갖는다. 작품 전시와 관련해서도 토큰 보유자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토큰화(tokenization)는 모든 자산이 하나의 회사처럼 돌아가는 자본시장의 혁명이다.”

 
하지만, 규제가 있다.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국가가 통제하려들 텐데.
“전세계에 조세피난처가 있다고 보면 된다. 구글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세운다. 미국은 싫어하겠지만 그 조세피난처 국가들은 그걸로 먹고 산다. 마찬가지로 증권형 토큰을 우리가 상장 못 하게 해도, 그걸 상장하는 나라가 전세계 어딘가에는 있을 거다. 그런 나라에 상장하면 되니 증권형 토큰이 대세가 되는 세상은 반드시 온다. 전세계가 똘똘 뭉쳐 증권형 토큰을 상장 못 하게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발표하는 최경준 대표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최경준 지닉스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중 합작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Zeniex) 기자간담회'에서 블록체인 기반 자산 토큰화 등 중장기 기업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2018.5.29   jin9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발표하는 최경준 대표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최경준 지닉스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중 합작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Zeniex) 기자간담회'에서 블록체인 기반 자산 토큰화 등 중장기 기업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2018.5.29 jin9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래서 정부에 원하는 게 뭐냐.
“언제까지 이 시장을 회색 지대(gray zone)로 둘 거냐다. 빨리 규제를 해서 울타리를 쳐 달라.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Do No Harm)’는 원칙에 따라 정부가 혁신의 시도는 놔두고 불법만 뽑아냈으면 좋겠다. 사실 이런 규제가 정부 입장에선 귀찮을 거다. 하나하나 들여다 봐야 하니.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간 정상적인 업체만 말려 죽게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사업 계속할 수 있겠나.
“얼마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멀쩡한 회계법인 다니다 꾀어 데려온 후배인 임원이 사석에서 술 먹고 한탄하더라. 자기는 정말 잘 살았는데 왜 은행에만 가면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사업 시작할 때는 망하면 다시 취직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반드시 된다. 내가 너무 앞서 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투자하겠다는 곳이 있으면 투자금 받아서 규제 문제가 풀릴 때까지 버틸 거다. 다만,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면 사업성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보고 경영하겠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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