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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술공장 가느냐던 어머니가 "아름답다" 감탄한 이 곳

중앙일보 2018.10.30 13: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
일본 가고시마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효도관광. 중년여성 최적화 관광프로그램을 짰지만,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일정을 하나 추가했다. 올해 4월, 일반인에 시설을 공개한 카노스케(嘉之助, KANOSUKE) 증류소 견학이다. 4월에 같은 가고시마 현에 있는 츠누키(津貫, TSUNUKI) 증류소를 견학 갔을 때, 아직 일반공개 전이라 들르지 못한 아쉬움의 해소였다.
 
여행 출발 전, 여행 상세스케줄 발표에 고개를 끄덕이던 어머니가 증류소 견학에 눈살을 찌푸렸다.
"일본까지 가서 술 공장을?"
 
하지만 증류소 견학을 마치고 어머니와 작은어머니 모두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들려줬다. 카노스케 증류소의 어떤 점이 위스키 문외한 중년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큰 나무 테이블 위에 줄지어 놓인 카노스케 증류소 위스키 스피릿. [사진 김대영]

큰 나무 테이블 위에 줄지어 놓인 카노스케 증류소 위스키 스피릿. [사진 김대영]

 
차에서 내려 방문자 센터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위스키 스피릿이 반긴다. 위스키 스피릿은 맥아즙을 증류한 것으로, 아직 오크통에 숙성되기 전의 액체다. 큼직한 나무 테이블 위에 줄지어 놓인 50여 개의 투명한 병. 그 자체만으로 깨끗한 인상을 줬다. 예약 확인을 하고 잠시 기다리자 증류소 소장이 나와 안내를 시작했다. 방문자센터 바로 위층에 위스키 생산시설이 있어 그곳으로 이동했다.
 
카노스케 증류소 위스키 스피릿. 이래뵈도 59도다. 이 액체가 오크통에 담겨 숙성되면서 다양한 풍미를 가진 위스키가 된다. [사진 김대영]

카노스케 증류소 위스키 스피릿. 이래뵈도 59도다. 이 액체가 오크통에 담겨 숙성되면서 다양한 풍미를 가진 위스키가 된다. [사진 김대영]

 
생산시설에 들어가기 전에 카노스케 증류소의 역사를 배웠다. 1957년, 위스키를 벤치마킹해 오크통 숙성 소주를 개발한 코마사(小正)주조 2대 사장, 코마사 카노스케(小正嘉之助). 그 후 오크통 숙성 소주는 세계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았지만, 위스키나 브랜디와 다른 범주에 속해 늘 낯선 동양의 술로 남았다. 그래서 위스키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소주 생산으로 갈고 닦은 증류 기술과 오크통 숙성 노하우라면, 세계에서 통하는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2018년 1월부터 위스키 증류소를 가동. 처음 소주를 오크통에 숙성시킨 2대 사장의 이름을 가져와 ‘카노스케 증류소’라 지었다.
 
코마사(小正)주조 2대 사장, 코마사 카노스케의 초상화(좌)와 그가 만든 오크통 숙성 소주, 멜로 코즈루(Mellowed Kozuru)(우). [사진 김대영]

코마사(小正)주조 2대 사장, 코마사 카노스케의 초상화(좌)와 그가 만든 오크통 숙성 소주, 멜로 코즈루(Mellowed Kozuru)(우). [사진 김대영]

 
역사 공부를 마치고 생산시설로 들어가면, 맥아가 발효되면서 나는 냄새가 진동한다. 한쪽에는 맥아를 분쇄하는 기계가 있고, 분쇄된 맥아는 ‘매시 턴(Mash Tun)’이라 불리는 당화조에서 뜨거운 물을 만나 맥아즙으로 변한다. 이 맥아즙을 발효조에 넣어 발효를 시킨다.
 
물어보니 72시간 동안 발효를 한다고. 일본의 다른 소규모 증류소도 72시간 발효를 하는 곳이 많은데, 이렇게 길게 발효하면 위스키 맛에 유산균이 더 많은 기여를 해, 과일 맛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짧게 발효하면 몰트의 곡물 맛이 더 강조된다.
 
위스키 생산 과정 중 증류 전에 맥아즙을 발효시키는 발효조. 시금털털한 맥주 향이 난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생산 과정 중 증류 전에 맥아즙을 발효시키는 발효조. 시금털털한 맥주 향이 난다. [사진 김대영]

 
이제 증류기를 살펴보자. 카노스케 증류소는 세 개의 증류기를 가지고 있다. 가장 왼쪽의 큰 워시 스틸로 첫 증류를 한다. 그리고 어떤 특징을 가진 스피릿을 만들지에 따라, 두 번째 증류에 쓰는 증류기가 달라진다. 1번 스피릿 스틸은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진 뒤에, 끝부분의 관이 아래로 80도 꺾여있다.
 
반면에 2번 스피릿 스틸은 가운데가 홀쭉하고, 끝부분의 관이 위로 100도 꺾어진다. 1번은 무게감 있는 주질의 스피릿을 만들 때 쓰고, 2번은 가벼운 주질의 스피릿을 만들 때 쓴다. 각기 다른 스피릿을 만들어냄으로써, 보다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위스키를 기대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증류기. 왼쪽부터 워시 스틸, 스피릿 스틸 1, 스피릿 스틸 2. 모두 일본에서 제작한 증류기다. 가장 일본다운 맛을 내기 위해 스코틀랜드산보다 비싼 일본산 증류기를 고집했다고. [사진 김대영]

서로 다른 모양의 증류기. 왼쪽부터 워시 스틸, 스피릿 스틸 1, 스피릿 스틸 2. 모두 일본에서 제작한 증류기다. 가장 일본다운 맛을 내기 위해 스코틀랜드산보다 비싼 일본산 증류기를 고집했다고. [사진 김대영]

 
다음은 숙성이 이뤄지는 숙성창고다. 이곳은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오크통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낯익은 버번과 쉐리 오크통은 물론이고, 소주를 담았던 오크통도 쓰고 있었다. 위스키에 소주 맛을 입히면 어떻게 될까. 당장 궁금해도 위스키가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위스키를 가득 담고 있는 오크통들. 숙성창고에 들어가면 오크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갖 향이 일품인데, 들어가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를 가득 담고 있는 오크통들. 숙성창고에 들어가면 오크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갖 향이 일품인데, 들어가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사진 김대영]

 
투어의 마지막은 시음이었다. 그런데 시음하는 공간인 ‘The Mellow Bar’가 너무 아름다워서, 들어서는 순간 감탄이 나왔다. 널찍한 바 테이블에 위스키가 놓여있고, 창 너머에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 모든 걸 잊고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었다.
 
언젠가 집에 ‘My bar’를 만들어 위스키를 즐기는 게 꿈인데, 꼭 이렇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함께 간 두 중년여성도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위스키 스피릿과 그것을 수개월 숙성한 것, 그리고 오크통 숙성 소주와 진을 맛봤다. 술보다는 공간에 취해 시간을 보냈다.
 
‘The Mellow Bar’에서 위스키를 시음하고 있는 어머니. 사진으로는 이 곳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다. [사진 김대영]

‘The Mellow Bar’에서 위스키를 시음하고 있는 어머니. 사진으로는 이 곳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증류소를 가면, 한 잔의 위스키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위스키를 잘 몰라도 커다란 증류기로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사람만 한 오크통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경외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도심의 회색빛을 벗어나 자연의 여러 가지 색을 볼 수 있다. 위스키는 깨끗한 물이 중요해서, 증류소 주변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왜 외국까지 가서 술 공장을 찾느냐는 가족들의 말에 주눅 들지 말고 증류소에 가자. 위스키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다.
 
<카노스케 증류소 찾아가는 법>
홈페이지(http://kanosuke.com)에서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투어프로그램은 인당 1,000엔.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JR 가고시마 본선 열차를 20분 정도 타고 ‘이주인(伊集院)’ 역에서 내린다. 역에서 택시로 15분 정도면 도착. (택시비 왕복 약 5000엔)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매체팀 대리 kim.d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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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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