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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어택] 조국과 민족을 판 건 누군가

중앙일보 2018.10.29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가 생긴 건 2002년이다. 아시아 각국 프로리그 챔피언이 출전하는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와 각국 축구협회(FA)컵 대회 우승팀이 겨루는 아시아컵위너스컵대회를 통합해 만들었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국가대항전인 아시안컵과 함께 AFC의 양대 메이저 대회지만, 국내에선 국가대항전보다 관심이 적다. 그래도 지금까지 전북 현대,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현 성남FC), 울산 현대 등이 우승했다.
 
AFC 챔피언스리그가 올해처럼 주목받은 때가 또 있었을까. 관심이 수원 삼성과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의 4강전에 국한됐고, 그 배경도 외부 요인에 있었지만 말이다.
 
홈앤드어웨이 방식인 4강전의 1차전은 지난 4일 일본 가시마에서 열렸다. 경기 도중 가시마 골키퍼 권순태와 수원 미드필더 임상협 간에 신경전이 있었다. 가시마 문전에서 혼전 중 두 선수가 엉켰다. 권순태는 임상협을 이마로 받을 듯 도발했다가 비신사적 행위로 경고를 받았다. 사실 얼굴을 감쌌던 임상협의 행동도 시뮬레이션(일명 할리우드 액션)이었다.
 
일이 커진 건 경기 후 권순태가 일본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한국 팀이라 더 이기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그는 순식간에 ‘이완용급’ 민족의 반역자가 됐다. 관련 인터넷 기사에는 원색적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그를 나카무라 순타이라 불렀다. 그의 소셜미디어에도 악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일부 인터넷 언론은 그의 가족사진을 내려받아 ‘권순태 아내 얼마나 예쁘길래…’ ‘권순태 아들 사랑 보니…’ 등 ‘실검(실시간 검색어) 장사’에 나섰다. 4강전 2차전(24일)을 위해 수원에 온 권순태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 취재진에게 했던 대답이 앞뒤 잘리고 나가면서 발언 배경과 맥락이 달라졌다”고 해명했다. 그래도 악성 댓글은 멈추지 않았다.
 
짚을 건 짚어야 한다. 나카무라 순타이도, 조국을 막은 일도 없다. 권순태는 K리그(전북)에서처럼 J리그에서도 소속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열정이 좀 지나쳤을 뿐이다.
 
미디어와 여론이 ‘조국’과 ‘민족’을 팔아 배신자를 만드는 사례가 낯설지 않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81㎏ 이하급에서 추성훈이 한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따자 한 스포츠 신문이 ‘조국을 메쳤다’고 역사에 길이 남을 제목을 붙였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안현수가 3관왕에 오르자 “조국을 제쳤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참으로 써먹기 좋은 ‘조국’과 ‘민족’이다.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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