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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대법원장은 어디 있나

중앙일보 2018.10.29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해 “사법부가 국민의 희망에 응답할 역량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그러나 정말 그런 역량이 있는지, 아니면 그럴 의지가 있는지 미덥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사법부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적폐를 청산하는 일도, 미래를 설계하는 일도 모두 끌려다닌다. 대법원장은 보이지 않고 민정수석, 검찰총장, 국회의원만 보인다.
 
이날 문 대통령은 법원의 역할을 잘 정의했다. 그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이 법”이라며 “정의를 바라며 호소하는 곳이 법원”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현명한 관리의 표본으로 솔로몬을 꼽고 있다. 재판을 현명하게 잘했다는 이유다. 서로 옳다고 다투다가도 법원이 판결하면 최종 결정으로 받아들인다. 심판의 결정처럼 불만이 있어도 법원이 옳다고 믿는다. 지금도 그런가.
 
재판 거래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한 내용, 국민이 알고 있는 진상은 대법원조차 자기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념과 정책 방향에 맞춰 판결하는 것도 모자라 대법원장이 그것을 들고 대통령에게 생색을 내며 보고했다고 한다.
 
누가 이런 법원이 공정하게 판결해줄 것이라고 믿겠는가.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불신은 오히려 더 심해진다. 송사가 걸리면 판사가 누군지부터 먼저 알아본다고 한다. ‘판사’라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아무개라는 특정 판사의 성향이 판결 결과를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원 내부 사정에 문외한인 일반인이라면 판사들이 법리를 두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소속 단체에 따라 패거리를 지어 움직이리라고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것도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재판 실무에서….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들의 개인적 소신에 따라 우리 신체를 구속할 수도 풀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김진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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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제 국회가 나서서 판사를 지정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판사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담당 판사가 사건 당사자라면 그 재판을 맡는 건 당연히 피해야 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처럼 그런 제도는 이미 있다. 재배당, 회피, 기피, 제척….
 
박 의원은 “그런데도 법원이 스스로 하지 못하니 국회가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그런 문제를 법원은 해결할 능력이 없는 건가. 그럴 때마다 외부에서 재판 배당까지 해줘야 법원은 움직이는 건가.
 
법원은 재판 거래 의혹 이상으로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재판 거래 의혹이 전임 대법원장의 문제라면 이건 현 대법원장의 문제이자 전체 판사에 대한 불신이다. 그런데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구경만 할 처지인가.
 
문 대통령은 사법부 70주년 기념사에서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철저히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곱씹어보면 굳이 말로 보장해주어야 할 정도로 위태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판 거래가 사실이라면 법원이 먼저 정리하는 게 옳았다. 결국은 최종 판단해야 할 법원이 외부에 떠넘겨 수많은 논란을 자초했다. 이제 담당 재판부마저 외부에서 결정하게 했다. 그래도 김 대법원장은 말이 없다.
 
그동안 법원은 상처를 많이 받았다. 문 대통령은 재판 중인 사건 관계자들에게 사면·복권을 약속했다. 대통령 대변인은 재판 절차를 빨리 진행해달라고 재촉했다. 민정수석은 사법 개혁에 속도를 내라고 다그쳤다. 심지어 현직 부장판사와 페이스북으로 인신공격을 주고받았다. 국회는 ‘법원이 스스로 하지 못한다’며 간섭하겠다고 나섰다. 그래도 대법원장은 보이지 않는다.
 
김 대법원장은 7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나. 무엇을 반성했나. 박근혜 정부 당시 대법원장이 권력자의 비위를 맞췄다고 부끄러워하는 건가. 그래서 이제 얼마나 바로 서 있는가. 대통령과 민정수석의 지휘를 받는 법원, 재판 거래의 의심은 이제 털어내도 좋은 것인가.
 
아무리 삼권 분립이라 해도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판결이 달라지면 법치는 불안해진다. 대법원장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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