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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선]박정희와 전태일은 '화해의 강'을 언제쯤 건널까

중앙일보 2018.10.29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정희(오른쪽)와 전태일은 각각 국가(자본)와 개인(노동)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인물이다. 갈등이 점철된 현대사를 반영하듯 '시대의 불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오른쪽)와 전태일은 각각 국가(자본)와 개인(노동)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인물이다. 갈등이 점철된 현대사를 반영하듯 '시대의 불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지난 27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 일대에서 '반갑다 전태일-2018 전태일 거리축제'가 열렸다. '전태일 다리'로 불리는 청계천 버들다리 위 보도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 주변이 무대였다. 전태일재단 주최로 밴드와 국악 그룹의 공연, 전태일 동화연극, 이소선 합창단의 공연도 있었다. 풀빵 나누기 이벤트가 열렸고, 파자마를 만드는 미싱(재봉틀) 체험도 했다. 하지만 이날 거리축제는 안타깝게도 노동계를 비롯해 진보 진영의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27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 옆에서 열린 '2018 전태일 거리축제' 현장에서 공연이 진행중이다. 장세정 기자

27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 옆에서 열린 '2018 전태일 거리축제' 현장에서 공연이 진행중이다. 장세정 기자

 하루 전인 지난 26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일대에서 '39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진보 진영 출신으로는 처음 당선한 장세용(더불어민주당) 구미시장이 참석해 전례에 따라 초헌관(제례에서 첫 술잔을 올리는 사람)을 맡으려 했으나 열흘 전에 불참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전태일 거리축제와 박정희 추도식 반쪽 행사로 치러
권력과 노동의 야합 아닌 진짜 화해·통합 노력 절실

26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39주기 추도식 장면.    구미=김정석기자

26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39주기 추도식 장면. 구미=김정석기자

 장 시장이 지난 7월 취임 직후 박정희 생가를 방문해 묵념하자 같은 진보 진영에서 트집 잡은 것이 영향을 줬다. 장 시장은 2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추도식 행사에 너무 큰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부담이 돼서 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 시장은 소형 조화를 행사장에 보냈다. 결국 보수 출신의 이철우(자유한국당) 경북도지사가 초헌관을 맡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정희 생가 앞에서 '박정희 지우기'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정희 생가 앞에서 '박정희 지우기'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차분하게 치러야 할 추도식 주변은 어수선했다. 보수 진영 인사들은 '박정희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 새마을 폐지 반대'라는 피켓을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우려는 자들은 경부고속도로에 발도 들여놓지 마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내걸었다. 반면 진보 진영은 그동안 "김관용·남유진 두 전직 구미시장 시절 추진한 박정희 우상화를 중단하라"고 촉구해왔다. 결국 이날 추도식도 진보 측의 반발 속에 보수 진영의 반쪽 행사로 끝났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버들다리 위 보도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 이 일대에서 27일 거리축제가 열렸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버들다리 위 보도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 이 일대에서 27일 거리축제가 열렸다.

 이처럼 전태일과 박정희는 진보와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강한 상징성 때문인지 지금도 화해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알고 보면 박정희와 전태일)은 사실상 동시대인이다. 박정희(1917~79)가 31년 먼저 태어났고, 전태일(1948~70)이 9년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다른 각도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박정희와 전태일은 지독한 가난과 싸웠다는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좀 더 단순화하면 박정희는 국가권력과 자본을 대변했고, 전태일은 개인의 자유와 노동 인권을 대표했다. 공교롭게도 전태일이 노동자 권리를 외치며 분신한 날(11월 13일) 하루 뒤(11월 14일)가 날짜상으로 박정희의 생일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묘하게 얽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앞에 박 대통령 부부의 실물 크기 사진이 세워져 있다.  구미=장세정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앞에 박 대통령 부부의 실물 크기 사진이 세워져 있다. 구미=장세정 기자

 전태일이 떠난 지 49년이 지났고 박정희가 최측근이던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지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 교과서 속 과거의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이 추구했던 가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불편하게’ 충돌하고 있다. '시대의 불화'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과 개인 자유의 대립, 자본과 노동의 갈등, 그리고 진영 간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그만큼 두 사람이 대한민국에 남긴 족적과 영향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 권리를 외치며 분신했다.  장세정 기자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 권리를 외치며 분신했다. 장세정 기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스물두 살 젊은 육신에 불을 댕겼다. 경제 발전을 앞세워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눌렀던 박정희 정권의 엄혹한 독재 체제에서 숨죽이던 노동자의 권익을 용기 있게 부르짖은 항거였다. 전태일이 던진 한 알의 불씨를 계기로 노동조합이 들불처럼 번졌고 노동자의 권익 신장으로 이어졌다. 아직도 풀어야 할 노동 문제가 많지만, 전태일 이후의 노동계는 혁명적 변화를 경험했다.
평화시장 앞 전태일거리에 노회찬 전의원 보좌관 일동이 만든 동판에 '대통령 전태일'

평화시장 앞 전태일거리에 노회찬 전의원 보좌관 일동이 만든 동판에 '대통령 전태일'

 평화시장 앞길에 조성된 전태일 거리에 가면 보도블록에 수많은 노동자의 염원을 새긴 동판들이 놓여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동판은 '노회찬 의원 보좌관 일동' 명의로 만든 '대통령 전태일'이다. '촛불 혁명' 이후 대한민국의 권력은 사실상 민노총을 위시한 노동계가 장악했다. 전태일이 외쳤던 노동자의 권익이 권력으로 커져 호령하는 세상이다.
 민주화를 통해 독재 정권은 사라졌지만,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선거 독재'라는 말이 나오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우려할 정도로 독선적 정권이 계속 등장한다. 특히 노동과 국가 권력의 결합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최저임금을 단기간에 급격하게 인상하고,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주 52시간제 졸속 도입이 도리어 노동자의 권익을 해친다. 포퓰리스트 권력자와 '귀족노조'로 대변되는 노동권력의 야합이 국가 경제를 망가뜨리고, 70년대 전태일과 다를 바 없는 열악한 노동자들의 권익까지 해친다면 심각한 역설이다. 박정희도 전태일도 이런 결과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명환(왼쪽 셋째)워원장 등 민노총 지도부를 만났다. [사진 청와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명환(왼쪽 셋째)워원장 등 민노총 지도부를 만났다. [사진 청와대]

 반쪽으로 치러진 '전태일 거리 축제'와 '박정희 추도식'을 보려니 착잡하다. 두 장면은 수많은 박정희들과 전태일들, 보수와 진보, 국가와 노동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이 한국사회에 그만큼 절실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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