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나와 재첩 주워야 하나···정부 일자리 정책은 미친 짓"

중앙일보 2018.10.29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이 간다  
 
“실업자 되라고 졸업장 줬나 …이건 정부와 대학의 사기극”      

청년 실업률 19년 만의 최악 9.4%
실낱 희망 찾아 일자리센터 몰려
"백수 5년, 결혼 엄두 못 내는데
고용세습이라니, 우릴 또 죽이나"
규제 확 풀고 소득주도 정책 바꿔
절망하는 청년에 양질 일자리를

취준생의 용광로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의 용광로인 낙서판. "공기업 갈꺼야 "알바 말고 정규직으로"등 취준생들의 간절한 취업 소망이 적혀 있다. 양영유 기자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의 용광로인 낙서판. "공기업 갈꺼야 "알바 말고 정규직으로"등 취준생들의 간절한 취업 소망이 적혀 있다. 양영유 기자

 
본격적인 가을 채용 시즌이다. 바늘구멍 취업 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애간장이 탄다. 그렇지만 '고용 참사'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올 3분기 청년(15~29세) 실업률은 9.4%까지 치솟았다. 1999년 10.4%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다. 정부가 공공 단기일자리를 만들고, 일부 기업이 채용 인원을 찔끔 늘린다고 컴컴한 터널을 벗어나기 힘들다. 소득주도 성장 실패와 설비투자 부진, 미・중 무역 갈등, 유가 상승 등 국내외 악조건이 겹쳐 경기 침체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서울교통공사발(發) 고용세습 의혹이 터졌다. 의혹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청년들은 분노한다. 취준생들의 용광로인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와 일자리 카페에서 청년들을 만나봤다.    
 
 연인원 7만여 명이 찾은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취준생들이 취업 특강을 듣고 있다. [사진 서울시]

연인원 7만여 명이 찾은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취준생들이 취업 특강을 듣고 있다. [사진 서울시]

 
서울시 중구 삼일대로에 있는 서울고용노동청 건물 1층에 들어서면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가 나온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 청년 실업자와 취준생에게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려 마련한 공간이다. 센터 안은 아늑하다. 취업정보와 구직활동 상담 코너, 1·2인실과 다인용 스터디룸, 공용 스터디룸, 취업 멘토링 세미나실, 취업 설명회가 열리는 다목적 홀을 갖추고 있다. 세미나실 옆에 붙은 낙서판은 용광로다. “나도 공기업 갈 거야” "비정규직 말고 정규직으로" “너랑 나랑 같이 합격하자” "경력만 뽑으면 난 언제 신입?" 등 취업 소망 글이 빼곡하다. 일자리센터 최영숙 책임상담사는 “취준생들이 답답함을 토로하며 낙서를 한다”며 “내용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청년실업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청년일자리센터에는 10여 명의 상담사가 상주하며 무료 맞춤형 컨설팅을 해준다.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15개의 스터디룸은 3주 전 예약이 끝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삼삼오오 팀을 이뤄 입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요령을 상담받는다.  

 
세미니나실에선 메이크업과 업종별 면접요령 등 무료 강의가 진행된다. 양영유 기자

세미니나실에선 메이크업과 업종별 면접요령 등 무료 강의가 진행된다. 양영유 기자

 
 ‘피어라 청년의 삶’ ‘웃어라 청년의 꿈’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세미나실에선 메이크업 실습이 한창이다. 이승연 강사가 "면접 때 화장기술을 평가받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예의"라며 실연을 한다. 메이크업을 한 취준생들은 곧바로 이력서용 사진도 무료로 촬영한다. 그때 다목적 홀에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100명이 넘었다. 주제는 상황행동면접. "상사가 자기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면" 등 케이스 면접에 취준생들이 빨려들었다. 이런 맞춤형 특강은 매주 열린다. 서울시 김혜정 일자리정책담당관은 “센터 이용자가 하루 평균 200명, 총 7만3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 취직할까"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에서 특강이 끝난 뒤 한 청년이 남아있다. 양영유 기자

"나는 언제 취직할까"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에서 특강이 끝난 뒤 한 청년이 남아있다. 양영유 기자

 
 하지만 용을 써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니 청년의 고통은 심하다. 박민수(28)씨는 “이공계열을 나왔지만 원하는 곳에 취업을 못 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54조원을 일자리에 퍼부었다는 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에도 역대 최대인 23조5000억원을 일자리 예산에 투입한다. 졸업 후 2년간 취업하지 못한 청년 10만 명에게 1인당 월 50만원씩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을 지원한다. 그래도 약발이 들지 않을 것 같자 지난 24일엔 공공 단기일자리 5만9000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 공용 스터디룸 모습. 40대 구직자들도 청년들과 함께 공부한다. 양영유 기자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 공용 스터디룸 모습. 40대 구직자들도 청년들과 함께 공부한다. 양영유 기자

 
 취준생 10여 명과 인터뷰해보니 반응이 싸늘했다. 실명이 알려지면 취업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익명을 원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일자리센터에 왜 오나. 
"4년 전 졸업했는데 백수라 일반 도서관과 카페는 돈이 없어 못 간다. 공부하며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일요일도 열었으면 좋겠다."(30세 남성 취준생)
용돈이 궁할 것 같다.
"하루 1만원으로 버틴다. 교통비 3000원을 빼면 점심과 저녁 식사를 7000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원두커피는 엄두도 못 낸다. 학원비 35만원을 합치면 월 70만원 든다. 부모님께 너무 죄송한데 백수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고용세습이라니…."(29세 여성 취준생)  
취준생 분위기가 어떤가.
"박원순 시장이 일자리센터를 만들어 준 건 너무 고맙다. 하지만 고용세습이 사실이면 그건 위선이다. 겉으론 청년수당 50만원, 속으론 불공정.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29세 여성 취준생)  
정부 일자리 정책을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강의실 불끄기와 재첩 줍기가 일자리인가. 2년 전 졸업할 때는 '꿀 알바' 자리가 흔했다. 지금은 씨가 말랐다. 두세 시간 쪼개기만 나온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주 52시간 근무제 탓 아닌가. 청와대의 눈과 귀가 이상하다."(30세 남성 취준생)    
 
 통계청에 따르면 1주일 근무시간이 17시간이 안 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10년 전 85만 명에서 현재 180만 명으로 늘었다. 1982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다. 전체 취업자 대비 7%나 된다. 청년들의 말이 넋두리가 아니다.    

 
청년일자리센터와 연계한 일자리카페 키오스크. 서울시내 채용 정보가 담겨 있다. 양영유 기자

청년일자리센터와 연계한 일자리카페 키오스크. 서울시내 채용 정보가 담겨 있다. 양영유 기자

 청년일자리센터와 연계한 일자리카페 70여 곳도 취준생에겐 오아시스였다. 대학·학원가 등 청년 밀집지역 카페에 무료 스터디룸과 키오스크, 취업상담 코너를 구비했다. 음료를 사 먹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다. 종로구 파고다어학원 카페와 광진구 랭스터디카페에 들어가 보니 일반 카페 같은데 스터디룸이 있다. 1팀(4명)당 하루 3시간 무료다. 일반 스터디룸은 1시간에 1인당 1500원이니 무료 룸의 인기는 상한가다. 윤병찬 파고다어학원 매니저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자리 경쟁하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취준생들의 좌절은 상당했다. 5년 전 대학을 졸업했다는 30세 여성의 말. “알아줄 만한 ‘인 서울’ 대학 나왔다. 죽어라 도전해도 취업이 안 된다. ‘이러려고 대학 나왔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차라리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할 걸 그랬다. 정부와 대학이 사기 치고 있다. 실업자 되라고 졸업장 주는 건가.”
 
곁에 있던 친구가 울컥했다. "돈이 없어 친구 만나는 것도 겁난다. 40명 동기생 중 결혼은 5명밖에 못 했다. 청년실업이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 아닌가. 선진국은 일자리가 넘치는데 대체 정부는 뭐하나.”  

 
청년일자리센터의 내부 모습. 평일은 오전 9시~오후 9시,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양영유 기자

청년일자리센터의 내부 모습. 평일은 오전 9시~오후 9시,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양영유 기자

 
 그의 말대로 미국·일본·유럽은 고용이 넘쳐난다. 미국은 완전 고용을 넘어 일손이 부족할 정도이고, 일본은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63개다. 반면 우리는 청년 열 명 중 두 명 이상이 실업자다. 25~34세 대졸 실업자가 34만 명이고 청년 확장실업률이 23%다.    

 
 중소기업을 3년 다니다 최저임금 여파로 두 달 전 실직했다는 박모(33)씨의 말이 비수 같았다. 그는 “4년제 대졸자가 연간 44만명 쏟아져 나오는데 연봉 3000만원이 넘는 일자리는 20만 개도 안 된다. 중소기업이든, 해외든 취업 경로를 넓혀줘야 할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신입 연봉은 대기업이 4060만원, 중소기업은 2730만원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대기업·공기업이다. 박씨는 "대통령이 암행해서라도 현장의 고통을 보시길 바란다”고 했다. 동감이 갔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허상을 떨쳐내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청년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청년일자리센터 스터디룸. 보통 3주 전에 예약이 끝난다. 이 청년의 잠재력은 어디일까. 양영유 기자

청년일자리센터 스터디룸. 보통 3주 전에 예약이 끝난다. 이 청년의 잠재력은 어디일까. 양영유 기자

 
밤 8시 40분. 취준생이 일자리센터를 나서다 벽의 글귀를 바라본다. “끝이 어디일까, 너의 잠재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