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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 망자와 가까울수록 거친 삼베 쓴 이유

중앙일보 2018.10.27 13: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34)
상복(喪服). 부모 등이 세상을 떠나 상중에 있는 사람이 입는 옷이다. 지난 19일 대구가톨릭대에서 열린 한국전통상례문화 국제학술대회에는 지금은 사라진 조선 후기 사대부가 입던 상복이 재현돼 눈길을 끌었다. 성균관대 의상학과 겸임교수인 박민재 한복문화사업단 대표는 경북 경산의 나라얼연구소(소장 황영례)가 의뢰해 고증을 거쳐 만든 전통 유교식 남자 상복 5벌을 이날 공개하고 착용법을 시연했다. 이른바 오복(五服)제도에 따른 상례 복식이다.
 
박민재 한복문화사업단 대표(맨 오른쪽)가 고증을 거쳐 재현한 전통 유교식 남자 상복. 오른쪽부터 차례로 참최·재최·대공·소공·시마. 망자(亡者)와 관계가 가까울수록 거친 옷을 입었다. [사진 송의호]

박민재 한복문화사업단 대표(맨 오른쪽)가 고증을 거쳐 재현한 전통 유교식 남자 상복. 오른쪽부터 차례로 참최·재최·대공·소공·시마. 망자(亡者)와 관계가 가까울수록 거친 옷을 입었다. [사진 송의호]

 
이들 예복은 장례식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옷이다. 박민재 대표는 오복을 재현하면서 『사례편람(四禮便覽)』을 기준으로 삼았다. 『사례편람』은 조선 후기 문신 이재(李縡‧1680∼1746)가 편찬한 예서다. 이재는 이이-김장생-송시열-김창협으로 이어지는 노론(老論) 계열 학자다.
 
우리 전통 복식은 예(禮)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재현된 오복은 참최(斬衰)와 재최(齋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緦麻) 등 다섯 단계로 구분되는 상복이다. 전통 상복은 살아 있는 사람과 망자(亡者)의 친소 등 관계에 따라 슬픔의 크기를 상정해 형태와 재질을 달리했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 방법이 상복의 천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슬픔이 가장 큰 사람이 입는 참최부터 다섯 번째인 시마까지 삼베의 실을 차등화해 상복을 만들었다. 슬픔이 클수록 삼베의 올이 굵고 거칠었으며 관계가 멀수록 고운 삼베를 썼다.
 
전통 상복을 입을 때 신던 짚신.

전통 상복을 입을 때 신던 짚신.

 
예서의 근원인 『예기(禮記)』에는 상복의 등급에 따라 삼베가 구분돼 있다. 참최는 3승(升)이다. 1승은 삼베를 짤 때 베틀에 실 80올을 건다는 뜻이다. 3승이면 240올이어서 아주 성글다. 마지막 시마는 15승이다. 15승은 참최와 비교하면 올이 5배 더 촘촘해 훨씬 부드러운 삼베가 된다. 박 대표는 그러나 이번 작업에서 참최와 재최‧대공은 삼베를 사용했으나 소공과 시마는 고운 삼베가 너무 비싸 모시로 대체했다고 한다.
 
상복을 만들면서 치수도 과제였다. 『사례편람』에 적힌 치수가 척촌(尺寸)으로 표시돼 현대식 미터법 환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1척을 23㎝로 정했다. 상복 이외에 머리에 쓰는 최관(衰冠)과 수질(首絰), 요질(腰絰), 혁대에 해당하는 교대(絞帶), 행전(行纏), 상장, 짚신도 등장했다.
 
박 대표는 “사라진 전통 상복 재현을 통해 조선 시대 사대부가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가치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복의 재질 속에 효(孝)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편리함을 내세워 어디에 근거를 두었는지 알 수 없는 오늘날 획일화된 검은 양복은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상엿집에 해당하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마차상엿집(오른쪽). 영국 셰필드대학 제임스 H. 그레이슨 교수가 현장 답사를 통해 고증했다. [사진 나라얼연구소]

한국의 상엿집에 해당하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마차상엿집(오른쪽). 영국 셰필드대학 제임스 H. 그레이슨 교수가 현장 답사를 통해 고증했다. [사진 나라얼연구소]

 
한편 나라얼연구소가 주최‧주관해 올해로 제5회를 맞은 한국전통상례문화 국제학술대회에는 영국 셰필드대학 제임스 H. 그레이슨 교수의 ‘상엿집과 마차 상여’라는 흥미로운 연구도 발표됐다. 한국의 상엿집에 해당하는 영국‧미국 등 서양의 상엿집인 마차 상여 보관소가 확인을 거쳐 현장 사진 수십장으로 처음 보고된 것이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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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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