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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증시 파란만장 사건사고 9

중앙일보 2018.10.27 06:48
중국 본토에는 상하이와 선전에 증권거래소가 있다. 흔히 말하는 A주는 중국인과 허가 받은 외국인만 위안화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다.  
 
경제 성장 둔화, 미중 무역전쟁 격화 등으로 상하이종합지수는 8월 초 기준 연초 대비 18% 하락했으며 이는 전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부진한 성적이다. 9월 26일 종가 기준 상하이지수는 2806.81를 기록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28년 간 중국 증시에 발생했던 각종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짚어봤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1. 상하이지수 하루만에 105% 폭등
1992년 5월 20일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장 마감 후 "이튿날 15개 상장사(이 종목이 전부였음)의 가격 변동 제한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상한가, 하한가가 없어진 다음날 5월 21일, 상하이종합지수는 105.27% 폭등했다. 이날 5개 종목이 새로 상장했는데 주가가 무려 2500~3000%나 올랐다. 이 사건은 후에 '선전 810 사건'을 낳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2. 선전 810 사건
1992년 8월 9일~10일, 선전증권거래소는 신주인수권 500만장을 집중 판매했다. 당첨율이 100%였다. 신주인주권 1장당 신주 1000주를 청약할 수 있었다.  
 
앞서 5월 상하이지수 폭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단 주식만 사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1992년 당시 선전 호적(호구)을 가진 인구가 80만명 정도 였는데, 벼락부자를 꿈꾸는 외지인 120만명이 선전으로 몰려들어 신주인수권 쟁탈전을 벌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0시간 넘게 줄을 섰다. 심지어 8월 9일 오후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거의 지옥이나 다름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문제는 일부 신주인수권 판매처에서 적법하지 않은 루트로 신주인수권을 구입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8월 10일 저녁, 며칠 밤을 샜지만 신주인수권을 얻지 못한 수천 명이 선전시청과 인민은행을 둘러싸고 불법 구매 행위에 대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놀란 선전시가 그날 밤 500만장의 신주청약교환권을 추가 발매하기로 결정하고서야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810 사건 이후 내부에서 빼돌린 신주인수권이 무려 10만 5399장, 관련 혐의가 있는 직원(간부급 포함)이 4180명에 달한다는 것이 수사로 밝혀졌다. 빼돌린 직원 4180명은 상응하는 처벌을 받았다.
 
신뢰도 타격으로 선전종합지수는 8월 10일 2918에서 11월 17일 1529까지 48% 떨어졌다. 더불어 810 이후 1년간 신주 발행이 금지됐으며 주식시장 감독기구인 중국증권감독위원관리회가 설립됐다.
[사진 동방재부CHOICE데이터]

[사진 동방재부CHOICE데이터]

신주인수권 [사진 동방재부CHOICE데이터]

신주인수권 [사진 동방재부CHOICE데이터]

 
3. 상하이지수 상한가
2008년 4월 23일 증권감독위원회는 이튿날인 4월 24일부터 증권거래인지세율을 3‰에서 1‰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2017년 10월 16일 6124에서 당시 3278까지 밀렸던 상하이지수는 4월 24일 장중 한때 모든 종목이 상한가를 쳤다. 당일 상하이지수는 전일 대비 9.26% 상승으로 마감했다. 이튿날인 4월 25일 자금광업(紫金矿业)이 상장했는데, 주당 1마오였던 주식 액면가가 한때 22위안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18일 상하이지수가 1802까지 추락하자 정부가 3대 호재를 뿌렸다. (1)이튿날인 9월 19일부터 인지세를 매도자부터로만 징수하고 (2)국유 투자회사 회금공사(汇金公司)가 공상은행, 중국은행, 건설은행 주식을 매입하고 (3)국자위(国资委)가 사상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국유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독려했다.  
 
이에 힘입어 9월 19일 당일 상하이지수는 개장하자마자 상한가를 쳤다.
2008-09-19 상하이종합지수 [사진 동방재부CHOICE데이터]

2008-09-19 상하이종합지수 [사진 동방재부CHOICE데이터]

 
4. 상하이지수 하한가
1996년 12월 11일 상하이지수는 512.83으로 시작해 145% 상승한 1258.68까지 올랐다. 이후 상승장이 계속될 줄로 알았지만 12월 12일 -5.44%, 12월 13일 -5.70%, 12월 16일 -9.91%, 12월 17일 -9.44%로 장을 마쳤다.  
 
1996년 12월 16일은 특별한 날이다. 이때부터 상한가, 하한가를 치면 거래가 중지되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날 상하이, 선전 거래소 거래대금 합계는 21억위안에 불과했다. 전날은 350억위안이었다. 거래소에는 어떻게 하면 수중의 주식을 매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투자자들로 북적였다. 상한가, 하한가 제도 도입 뒤 상하이, 선전 증시는 각각 일주일 동안 38%, 32% 급락했다. 선전 모 상장사 대표는 회사 공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계속 하한가를 치자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5. 거래 0
2005년 12월 6일 금우차성(金宇车城)은 중국증시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날 4시간의 거래 시간 동안 아무도 이 종목을 사거나 팔지 않았다.  
 
6. 광다증권 주문실수
[사진 봉황망]

[사진 봉황망]

2013년 8월 16일 오전 11시 5분(중국시간) 갑자기 대량 매수주문이 몰리며 상하이종합지수가 크게 올랐다. 59개의 대형주가 상한가를 치면서 1분만에 상하이지수가 5% 넘게 급등했다.  
 
이날 오후 2시, 광다증권(光大证券)은 전략투자부의 차익거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공시했다. 광다증권은 5억 2300만위안(약 853억원)의 벌금을 물고 증권 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쉬하오밍 등 광다증권 간부들은 평생 주식 선물 시장에 종사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이날 광다증권이 대량으로 사들인 주식은 이후 거래 업무가 중단되면서 매도하지도 못했고 하필 약세장이 지속되면서 엄청난 손실을 봤다. 하지만 2015년 불마켓이 펼쳐지면서 모든 주식이 올랐고 광다증권은 결과적으로 이득을 봤다.  
 
7. 세계 최대 거래대금
2015년 4~6월, 상하이, 선전 두 증시의 일 거래대금이 연속으로 2조위안(약 324조원)을 돌파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액수의 거래대금으로 아직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2015년 6월 8일 상하이지수는 5131로 마감했는데, 이날 상하이증권거래소의 거래대금만 1조 3000억위안(약 212조원)에 육박했다. 세계 최고 기록이다. A주 양시장의 신용거래대주잔고는 한때 2조 2700억위안에 달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너도 나도 각종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그야말로 주식투자 광풍이 불었다. 하지만 이는 폭락장의 계기가 된다.
"투신하지 마세요. 반등을 기다립시다" [사진 황관쭈추]

"투신하지 마세요. 반등을 기다립시다" [사진 황관쭈추]

2015년 6~7월 중국증시는 고점 대비 30% 넘게 폭락했다. 연이은 주가 급락으로 당시 개인투자자 30여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거리에는 투신 자살을 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나붙을 정도였다.  
 
8. 주식 1000개 거래중지
1000개 종목이 상한가나 하한가를 치는 거는 많이 봤어도, 한꺼번에 거래중지가 되는 일은 평생 한 번 볼까말까한 희귀한 일이다. 2015년 7월 8일 1200개가 넘는 상장사가 거래중지됐다. 전체의 40%가 넘는 규모였다. 폭락장이 이어지던 시기여서 하한가를 치는 것을 막고자 일부러 거래중지를 시킨 것이다.
 
9. 서킷브레이커
[사진 중앙포토]

[사진 중앙포토]

2016년 1월 4일, 새해 첫 거래일이자 중국 주식시장 역사상 길이 남을 날이다. 이날은 A주에 서킷브레이커가 정식 도입된 날이다. 중국의 서킷브레이커는 장중 상하이선전300지수(CSI300)가 5% 변동 시 15분간 거래가 중지되고, 이후 7% 변동 시 당일 거래 자체가 중지된다.  
 
서킷브레이커는 처음 도입된 1월 4일과 7일에 총 4차례 발동됐다. 패닉 매도세가 이어졌고, 증감회 직원들은 밤 10시가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서킷브레이커는 결국 1월 8일, 도입 나흘만에 폐지됐다. 1월 4~7일 4거래일 동안 시가총액 5조 6000억위안(약 914조원)이 날아갔다.
 
차이나랩 이지연
참고 동방재부Choice데이터(东方财富Choice数据) - A주의 놀라운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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