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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요리사의 일취월장

중앙선데이 2018.10.27 02:00 607호 28면 지면보기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61> 도곡동 미누씨(Minu.C)
즐거운 술자리에서 한 분이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우리 아들이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주말이면 가족들 식사를 직접 다 차리고, 최근에는 중학생 요리 경연대회에서 ‘조리 명장상’까지 탔는데, 요리 공부를 시켜야 하나? 고민이네.”  
 
문득 한 셰프의 얼굴이 롤 모델로 떠올랐다. 양재 전화국 사거리에서 양재천 방향으로 500m 쯤 걷다 보면 깔끔한 화이트 톤 외관에 파스텔 블루 계열의 지붕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건물이 나온다. 옥호는 미누씨(Minu.C). 이민우(33) 오너 셰프의 이름을 땄다.  
 
“저는 요리를 빨리 시작했어요. 중학교 클럽활동에서 제과제빵 수업을 들은 게 계기가 됐죠. 학교에서 종일 요리 책 보고 동영상만 봤어요. 강남 8학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입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고민하다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제가 학교에 있는 건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방해만 됩니다. 저는 평생 먹고 살 일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죠.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얘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니 그렇게 해주자’고 손을 들어주셨고, 2학년 때부터 출석 체크만 하고 바로 삼성동의 레스토랑으로 출근해 요리를 배웠어요.”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요리에 대한 열정, 배움의 갈증이 더욱 깊어졌다.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파리로 날아가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기 사부아(Guy Savoy)’에 취직해 일했고요. 입대를 위해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어요. CIA 요리학교에 입학해 공부하고,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뉴욕 더 모던(The modern)에서 3년간 일했어요. 일주일에 90시간 이상 레스토랑에서 살다시피 했죠.”  
 
한 마디로 청춘을 요리와 함께 보낸 셈이다. “힘들었지만 많은 걸 배웠어요. 신선한 재료, 재료의 특성을 살린 요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쳤고요. 특히 정교한 조리 과정을 통해 자유롭고 캐주얼한 음식을 풀어내는 바 룸(Bar Room)에 큰 매력을 느꼈는데, 한국에서 그런 컨셉트의 레스토랑을 오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의 계획을 앞당긴 건 어머니의 건강 악화 소식이었다. 2016년 귀국해 어머니의 치료를 도우며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맞는 요리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다. “좋지 않은 재료를 드시면 바로 탈이 났고, 저염식도 맛이 없으면 많이 드시질 않았어요. 자연스레 영양학 공부에 집중했고, 요리에 채소를 많이 이용하게 되었죠. 조미료를 줄이고 재료 자체의 자연 단맛·짠맛·감칠맛을 뽑아내는 방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작년에 세상을 떠나시고, 1년이 지나 제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8월 8일 도곡동에 오픈한 미누씨는 재료를 까다롭게 쓰기로 소문이 났다. 현대인들이 잘 먹지 않는 영양소가 풍부한 식 재료, 슈퍼푸드를 중점적으로 쓴다. 몸에 좋지 않은 MSG, 화학 방부제 등은 일절 넣지 않는다. 식사 메뉴에서 음료, 소스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 피클만 해도 토마토·콜라비·당근 등 7종 이상 만든다고.  
 
메뉴는 생각 외로 간소하다. 스몰 플레이트 7종과 라지 플레이트 4종이 있다. 셰프가 엄선한 내추럴 와인 12종, 가성비 좋은 레드, 화이트 와인, 맥주 등이 준비돼 있다.  
 
요리에 푹 빠진 꿈나무에게 영감을 줄 메뉴를 셰프에게 추천 받았다. 어른들을 위한 주류 페어링도 함께! 첫 요리는 전복. 제주산 전복을 쪄낸 뒤 튀겨냈다. 위에 라임 타르타르 소스를 올려 은은한 향을 입히고, 마늘 피클을 곁들여 냈다. 몰캉몰캉 입에서 전복이 부드럽게 춤출 정도로 식감이 좋다. 곁들인 와인은 라 피라미드 브륏(La Pyramide Brut).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인 피라미드가 황금빛 라벨에 담겨 있다.  
 
다음은 오븐에 구운 후 스팀, 프라이까지 세 단계를 거친 컬리플라워. 비타민과 항산화물질이 풍부한 컬리플라워에 로스트한 견과류, 할라피뇨와 사워크림, 다진 허브 등을 넣었다. 직접 만든 랜치소스가 더해져 건강에도 좋고 식사대용으로도 좋다. 매운 맛을 뺀 겨자씨가 톡톡 씹히는 포인트 역할을 한다. 추천 받은 내추럴 와인 벨로티 비앙코(Bellotti Bianco)와도 잘 어울렸지만, 맥주 안주로도 손색 없다.  
 
이어서 나온 연어 그라브락스(Gravlax). 연어 한 마리를 통째로 들여와 직접 숙성과정을 거친 뒤 홀스레디쉬, 향긋한 딜과 오렌지 마멀레이드 껍질을 올려 낸다. 직접 만든 사워크림을 곁들여 먹으면 되는데, 간이 약한 편이라 연어 자체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씹히는 질감이 아주 부드러워 탄산감 있는 맥주를 곁들이면 딱이다. 추천 맥주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발리(Barley) 브루어리의 맥주 자가라(Zagara). 섬에서 자라는 오렌지 나무의 꽃에서 추출한 꿀로 만든 맥주. 은은한 오렌지향과 함께 쌉사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대표 메뉴는 양 배갈비 찜과 우거지 크림. 우선 조리 과정이 길다. 양고기를 하루 동안 재우고 염장한 뒤 온갖 향신료와 함께 다시 몇 시간 동안 푹 찐다. “양의 배갈비는 고기 안에 근막이 형성되어 있고, 중간중간 힘줄이 많아서 구우면 엄청 질겨집니다. 염장과 숙성 과정을 통해 이 근막을 천천히 녹여내고, 뼈가 쑥 뽑힐 정도로 야들야들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이죠. 여기에 크림 스피니치(시금치) 대신 끓인 우거지와 당근 피클, 고수를 올려냈습니다.”  
 
맛을 보니 “고기를 혀로 씹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에서 살살 녹고, 우거지의 달보드레한 맛과 당근 피클의 상큼함이 삼중주를 이룬다. ‘고수’라는 악센트까지 가미되니 더할 나위 없다. 레드와인을 곁들이기 좋은데 테누타 산 귀도 레 디페제, 니비오 등을 추천한다.  
 
마무리는 닭모래집을 넣어 만든 할라피뇨 파스타. 튀긴 마늘을 풍성하게 올려내 마늘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고추절임이 은근하게 매운맛을 더하는데, 묘하게 소주가 생각난다. 이 파스타로 해장하는 손님이 많다고! ‘급하게 하는 음식은 우러 나오는 게 없다’는 셰프의 철학과 설명은 중학생 아이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밑 작업에 소스 준비 등으로 일요일과 월요일은 쉰다는 말은 모두는 한번 더 놀랐다. 부디 이 만남을 통해 아이가 멋진 셰프로 자라나길.  
 
▶ 미누씨(minu.c)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
서울 강남구 논현로26길 4, 02-6083-8482  
영업시간_화요일~토요일 11:30 - 22:00, (오후3~6시 브레이크 타임)  
월요일, 일요일 휴무(별도의 룸이 마련되어 있어 소규모 행사 진행 가능.  
예약을 통한 전체 대관도 가능)
 
추천 메뉴_제주산 전복(3pcs) 1만 9800원 / 세 가지 방식으로 익힌 컬리플라워 1만 9800원  / 연어 그라브락스 1만 9800원 / 양 배갈비 찜과 우거지 크림 3만 2800원 / (해장 파스타) 닭모래집 할라페뇨 파스타 2만 5800원
 
추천 와인_라 피라미드 브륏 5만 3000원 /  벨로티 비앙코(내추럴 와인) 7만원 / 테누타 산 귀도 레 디페제 7만 9000원   / 니비오(내추럴 와인) 12만 7000원  
 
추천 맥주_자가라(ZAGARA), 투비투비(TUVITUVI) 각 4만원(이탈리아 아르티장 브루어리 맥주)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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