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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복은 맞고, 퓨전 한복은 틀린 걸까

중앙선데이 2018.10.27 02:00 607호 29면 지면보기
지난 20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 하얀 런웨이가 깔렸다. 무슨 패션쇼가 열리나 했더니, 한복 패션쇼였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가 개최한 ‘한복디자인 프로젝트’ 최종 심사라고 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한복의 산업화ㆍ세계화ㆍ대중화를 위해 한복 요소를 활용한 다양한 한복 스타일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5년째 열리는 이 한복 패션쇼의 화두는 ‘변화’였다. 숨가쁘게 바뀌는 사회 트렌드와 패션 시장의 흐름을 한복에도 반영해보자는 것. 한 해 두 번씩 열리는 기성 패션쇼만큼은 아닐지라도, 패션 장르로서 한복을 바라보겠다는 취지다.  
 
런웨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이 있었다. 무채색 옷을 입은 관중 사이를 오가는 모델들이 만화 주인공처럼 보이게 하는 한복이었다. 옷의 테두리가 만화 테두리처럼 검고, 그 안에는 원색들이 알록달록 조합돼 있었다. ‘ㅎㅏㄴㅂㅗㄱ’이라며 한복 글자를 해체해 그래픽 요소로 쓰기도 했다. 노란색ㆍ파란색 스타킹을 신은 모델이 짧은 치마의 한복을 입고, 동그란 선글라스를 끼고 런웨이를 오가는 모습이 유쾌했다. 97년생 신가영씨의 작품이었다. 강렬한 인상이 내내 지워지지 않더니, 대상을 수상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배래와 저고리 등 한복 특유의 곡선 라인을 살리되 팝아트의 강렬한 색감과 패브릭을 콜라보레이션 함으로써 동서양의 절묘한 매력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긴 치마도 없고, 은은한 빛깔의 비단 같은 전통적 옷감도 쓰지 않았다. 동정도 옷고름도 없다. 서양 드레스를 본 떠 리본을 매단다고 지적받고 있는 퓨전 한복과 비슷하게 리본 대신 벨트를 채우기도 했다. 종로구청이 문화재청에 ‘퓨전 한복 고궁 무료입장 폐지’를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는 요즘, 한복 특유의 곡선 라인만 남은 신가영씨의 ‘팝아트 한복’은 과연 무슨 옷이라고 불러야 할까.  
 
“전통 한복이 왜곡되고 있으니 고궁에서는 전통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랜만에 거리에 나선 한복을 다시 옷장 속에 집어 넣자는 소리나 다름 없다. 왜 고궁에서는 꼭 전통 한복을 입어야 하는 걸까. 21세기 대한민국의 런웨이 위에서는 ‘팝아트 한복’이 대상을 받는데, 옛 장소와 옛 옷을 묶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마뜩치 않다. 달라진 시대의 일상복으로써 한복을 바라봐야 한복 생태계가 더 발전할 수 있다.  
 
‘왜곡’이라는 표현도 불편하다.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한다는 건데, 이런 측면에서라면 ‘한복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다양한 한복 스타일은 그야말로 전통 한복을 왜곡하는 행위 아닌가.  
 
정작 한복 짓는 사람들은 젊은 세대와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놀이처럼 자리 잡은 한복 입기 문화가 “그저 반갑다”고 한다. 한복이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느냐는 목소리다. 전통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옳고 그르다는 식의 잣대로만 적용해서는 안 될 터다. 그래야 ‘팝아트 한복’도 나올 수 있고, 한복도 ‘패션’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한복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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