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 마을 술 친구들

중앙선데이 2018.10.27 02:00 607호 34면 지면보기
김하나의 만다꼬
아파트 옆 라인에 사는 친구 김민철(남자 이름 같지만 여자다)이 출근길에, 시부모님이 농사 지은 감자와 양파를 많이 보내셨다며 ‘엘베택배’로 올려줬다. ‘엘베택배’란 김민철네와 우리 집 사이에 물건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사람 없이 물건만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내는 시스템이다. 빌려갔던 책이며 과일, 와인, 반찬 등이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린다. 지금 올라간다는 문자를 받은 뒤 “땡!” 하고 우리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감자와 양파가 잔뜩 든 비닐봉지가 놓여 있다. 김민철의 부탁은 이것을 동네 술집 ‘바르셀로나’에 갖다주라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사장은 황영주로서 나의 20년차 친구다. 술집을 열기 전부터 내가 김민철에게 소개해서 이들도 십수 년차 친구가 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감자와 양파를 배달하고 나서 이틀 뒤 황영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걸로 카레를 엄청나게 끓였으니 와서 먹으라는 거였다. 김민철의 시부모님이 보내신 감자와 양파는 황영주의 카레라이스가 되어 동네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김민철 부부뿐 아니라 또 다른 친구 부부도 산다. 우리 집 두 층 아래에 사는 이아리 부부다. 이아리는 서촌에 살 적에 오가다 만나서 친해진 사이인데 어떻게 이곳 망원동에서도 동네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이아리는 김민철이 다니는 광고 회사에서 인턴을 했던 적이 있어 김민철과도 아는 사이였다. 나와 동거인이 여행을 간다든가 해서 집을 여러 날 비울 때면 이아리가 두 층을 올라와 우리 고양이 네 마리를 돌봐준다. 이아리네에도 고양이 둘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고, 집이 가까우니 부담이 덜하다. 거꾸로 이아리 부부가 집을 비울 때면 우리가 가서 고양이들을 돌봐준다. 이아리 부부의 사무실은 술집 ‘바르셀로나’가 있는 건물에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면 그 건물주가 나의 선배이고 우리 모두는 술친구라서 서로 알기 때문이다. 술친구들은 내 친구, 네 친구를 딱히 구분하지 않는다. 황영주의 카레라이스를 먹으러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도 이아리 부부가 일행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김민철의 남편이 출장을 갔다기에 나와 동거인은 저녁 혼자 먹지 말고 우리와 함께 먹자며 꼬셨다. 셋이서 동네를 휘적휘적 걸어가서 만두전골을 먹은 뒤 ‘바르셀로나’로 갔다. 그날 내게 기분 좋은 일이 있어 와인을 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너도나도 돌아가며 와인을 사는 바람에 늘 그렇듯 자리가 길어졌다. 밤이 깊어지자 일을 마친 이아리 부부가 슥 나타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해서 술을 마셨다. 새벽 한 시쯤 술자리가 파한 뒤 황영주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한 아파트에 사는 우리 다섯은 걸어서 이삼십 분쯤 걸리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참으로 날씨 좋은 가을 밤이었고,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채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니 기분이 참 좋았다. 택시 태워 보내지 않고 정말로 집 앞에서 헤어지는 사이라니, 한 마을에 사는 옛날 사람들처럼 정다웠다. 시골에서 올라온 감자와 양파는 카레가 되어 동네에서 나눠 먹고, 한 주의 일을 끝낸 동네 사람들은 자연스레 만나 서로의 등을 두드려 준다. 인생의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김민철의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땅콩을 까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브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